그들의 딸 이슬아는 성실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그것은 루머 같은 소문에 가까웠지만 소문은 사람을 꽤나 바꿔놓는 법이다. 이슬아는 과대평가받음으로써 강제로 조금씩 더 부지런해졌다. - P20

시간이 흐르고, 이슬이는 글을 쓴다. 자정이 다가올수록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쓴다. 그것은 이슬아가 쓰는 글이라기보다는마감이 쓰는 글이다.
고통의 밤을 지나 원고를 발송하고 난 뒤, 이슬아는 의기양양하게 안방으로 들어가서 말한다.
"모부들아, 난 다 썼다."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던 모부는 건성으로 박수를 치며 말한다.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러고선 자기들끼리 중얼거린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이 대사는 그들 사이의 유행어다. 부지런함을 뽐내며 거들먹거리는 이슬아를 비아냥거릴 때 주로 쓰는 대사다. 이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거들먹거린다. 글을 다 쓴 뒤엔 유능감에 취해 있기 때문이다. 마감을 마친 작가에게는 아드레날린이돈다. 출판계에서는 그것을 마드레날린이라고 한다. 슬아는 마드레날린으로 약간 흥분해 있다. 그는 모부에게 시건방진 말투로 묻는다.
"당신들도 성공하고 싶어? 그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가를해."
그러자 복희가 대답한다. "아니. 우리는 성공 같은 건 하기 싫어." - P21

이들에겐 좋은 것만을 반복하려는 의지가 있다.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반복하지 않을 힘도 있다. - P41

몇 시간 후 오른팔에는 청소기를, 왼팔에는 대걸레를 새긴 웅이가 집에 돌아온다.
웅이가 즐거운 얼굴로 양팔을 내밀자 복희가 화들짝 놀란다.
"자기야! 너무..…..."
복희는 고민하며 할말을 고른다.
"너무....… 성실해 보인다!"
가녀장이 서재에서 내려온다. 웅이를 발견하고 한마디한다.
"섹시하네."
복희가 묻는다.
"섹시해?"
슬아가 대답한다.
"이런 타투 새긴 젊은이 있으면 나는 바로 청혼했어."
웅이는 다시 청소를 하러 간다. 청소기와 대걸레가 새겨진 양팔을 흔들며 걷는다. 치울 거리는 날마다 생겨나기 마련이다. 웅이는 하루치 체력이 아침해와 함께 차오르는 것을 안다. 복권에당첨되기 전까지 그의 노동도 계속될 것이다. - P47

"장군보다는 내가 낫지 않아?"
웅이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한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
슬아에게도 장군 못지않은 고유한 지랄성이 있기 때문이다.
룸미러에 비친 슬아의 얼굴이 무섭지는 않지만 슬아는 슬아 나름대로 몹시 예민하다. 하지만 사성장군을 모셔본 경력은 슬아의 운전기사로 일하는 내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다. 웅이는 지난 세월의 모든 노동이 이렇게 귀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결국 딸을 잘 모시려고 그 모든 일을 해온 것만 같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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