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지고 있던 삶의 빚을 말이다. 어떻게?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것으로, 읍내 은행과 보건소 직원이 되는 것으로, 일찍 결혼하는 것으로, 작은 슈퍼마켓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집안의 입을 덜고 스스로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갚았다. 한 세대? 두 세대? 거듭해서 계속, 계속. - P10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헛된길을 걸어간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술, 담배, 학업중단, 가출. 그러니까 엇나간 아이들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모든 것. 해인 마을 아이들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부모가 고생한다는 것을알았고,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적당히 성실하게 십대를 보냈고, 어느 시기가 오면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그렇게 그들 중 일부는, 아니 대부분은 부모에게 빚을 갚았다. - P9

이건 진짜다. 진짜 소설이다. 이후 『이명』은 영화로 제작되면서 더 화제가 되었다. 여기서부터 균열이 일어났던 것 같다. 김지우는 폭력을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작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감당할 수 없는 관심과 기대, 실망과 비난이 스물세 살의 여성에게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연히 고통스러워했는데, 그중에서도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김지우가 어떤 사람인지 확언하는‘ 평가들이었다. 사람들은 김지우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읽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그녀의 인성과 사고, 삶을 파악하려 들었다. 그녀는 마조히스트였고, 사디스트였고, 집착이 강한 인간이었고, 거짓말쟁이였고, 나약한 여자였고, 사연 있는 사람이었고, 폭력적인 인간이었고……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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