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복사한 오늘, 오늘을 붙여넣기 한 내일은 지루해. 수학 문제를 풀어 뭐 해, 꿈을 보는데. 작문숙제를 할 때가 아니야, 두억시니랑 싸워야지. 지금 사회 교과서가 눈에 들어오겠냐고. 아니, 도대체 두억시니는 왜 안 나타나는 거야? 밥도 안 먹나? - P127

"얘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보인단 말이야."
엄마가 구시렁거렸다.
"내가 기분 좋으면 엄마는 싫어?"
설이의 말에 엄마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검은자위가 요동친 쪽은 엄마였다.
"그럴 리가 있겠니?"
"근데 왜 내가 기분 좋은 걸 걱정해?"
"엄마야 항상 걱정이지. 좋아도 걱정, 안 좋아도 걱정. 엄마니까, 그게 엄마 일이야." - P128

"왜, 아빠 얼굴에 뭐 묻었냐?"
기타를 치던 젊은 아빠의 꿈이, 이제는 머리가 희해지고 주름이 잡혀 가는 아빠의 얼굴에 겹쳐 보였다.
질량 보존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꿈 보존의 법칙- 꿈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꾸어 피부에, 속눈썹 아래에, 입술 사이에 남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혹은 백 가지의 얼굴을 갖는 건 아닐까. 그걸 밤의 어둠과 무의식 아래 숨겨 놓고, 아침이면 시치미를 떼며 식탁 앞에 앉는 건 아닐까. - P128

맛도 모른 채 씹던 밥알에서 희미하게 꿈의 감각이 느껴지면 누가 눈치라도 챌까 화들짝 놀라 얼른 삼켜 버리는 건 아닐까.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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