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이비는 겨우 소리 내어 그를 불렀다. 처음 부르는 그의 진짜 이름이었다. 시안이라고 불리던 그를 진짜 이름으로 부른다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비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영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비는 플라스마 건을 쏘려던 결심이 철저히 무너졌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우리 그냥 도망가면 안 될까?"
이비는 상상력의 대가였다. 괴상한 것이든 훌륭한 것이든 닥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런 이비가 꺼낸 우리의 미래가 고작 도망이라니. 영은 이비가 대단히 멍청하고, 여전히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상상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이 아이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다 없었던 일인 셈 치고 홀연히 떠나 버린다면. 어둠 속에서 웃었던 그때의 바다로 숨어 버린다면. 영은 이비의 말이 너무나 유혹적이라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비가 되고 싶어 흔들렸던 매 순간을 잊기란 불가능했다. - P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