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구멍에서 신경질이 솟구쳤다.
그냥 신경질이 아니었다. 이십몇 년 어치의 신경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신경질을 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제대로 신경질을 내 본 적이.
나의 무겁고 둥근 몸, 그런 몸을 가지고 신경질을내면 모두 꼴사납다 여겼으므로,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아이가 신경질을 내면, 부모가 키우지 않는아이가 신경질을 내면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으므로………… 내가 먼저 구기고 숨기고 모른 척했던 신경질이었다. 화를 낸 적은 있었어도 신경질을 낸 적은 없었다. - P64
그때의 나처럼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안쪽으로는 살아가는 일의 비참함에 이를 악문 이가 어딘가에 아직은 무른살로 걷고 있을 텐데. 물밑에서 걸어나온 끔찍한 몰골의 도깨비에 등돌리지 않고, 샅바도 없이 밤새 씨름을 할 스스로의 단단함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가.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