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계집 짓거리야."
지경이 바닥까지 밀렸다. 남자들이 달려 내려갔다. 오지는 뒤돌아 올라갔다. 계단 꼭대기에서 아래를 보았을 때, 남자들의 머리통에 가려 지경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오지는 그 보이지 않는 얼굴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이래도 될까?‘ 아래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구지경에게 다 뒤집어씌워도 될까?‘ 가느다란 윤곽들이 가물가물 이어지려 하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전체를, 실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지쳤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지는 눈 딱 감고 생각을 확 놔버렸다. - P55

그게 최악이었다.
남은 자로서 남편이 마지막 말을 앗아가는 것. - P70

어쨌든 우리는 비웃음을 샀다. 조롱을 당했고 스스로 혼란에 빠졌다. 우리는 글만 읽고 없는 피해에 눈물 흘렸으며 없는 피해자와 연대했고 없는 가해자를 처벌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렸다. 글만으로는 내 편을 알아볼 수 없다는 무력감과 글이 발산하는 강렬함이 진정함의 징표가 되지는 못한다는 당혹감이, 진짜에, 글과 글쓴이의 심장이 하나인지에 더욱 집착하게 했다. 그 와중에 초롱의 글이 유출된 것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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