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관해서만은 여전히 ‘의지의 문제‘ 혹은 ‘도덕성의 문제‘로 보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약물중독 환자에 대한 낙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중독만큼 뇌의 기전이 잘 밝혀진정신 질환은 드물다. 중독 정신과 펠로우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면 가장먼저 숨 참기 연습을 한다. "숨을 최대한 참아보세요. 10초, 20초, 30초…." 숨을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아본 후, 참는 동안 어떤생각을 했는지를 물으면 다양한 대답이 쏟아진다. "이러다 죽겠다 생각했어요."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산소, 산소가 필요해요." 숨을 끝까지 참을 때 느끼는 기분은 중독환자가 약물금단 현상을 겪을 때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다. - P162
우리가 머릿속에서 외쳤던 ‘산소‘가 중독환자들에겐 ‘약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흔히 마약을 ‘뽕‘이라는 은어로 부르는데, 이는 아마 ‘취함‘ 혹은 ‘기분 좋은 느낌‘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숨을 참았다가 산소를 다시 얻었을때 누구도 산소에 ‘취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하게 힘들던 시간을 벗어나 겨우 ‘정상에 가깝게 돌아갔다‘고 느낄 것이다. 물질에 중독된 환자도 ‘뽕에 취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약물에 중독된 뇌와 몸은 약물이 없으면 지독한 고통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중독환자는 흔한 편견과는 달리 ‘기분을 고양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한다. - P163
한국 언론은 자살 보도를 할 때 흔히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제는 거의 자살과 동의어가 된 이 구절은, 일상생활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조합한 것이라 더 눈에 띈다.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 입장에서는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삶과 죽음의 선택지에서 죽음을 ‘택한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그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수없이 많을 테니까. 사랑하는 가족, 아끼는 친구들, 성공적인 커리어까지. 하지만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 P168
자살 생존자들에게 시도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질문하면, 십중팔구는 자살 생각에 너무나 강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마치 자살을 명령하는 환청을 들은것 같다고 답하는 환자도 있다. 이처럼 자살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힌 순간에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이성적 사고가 마비되고, 우울감과 불안감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며, 극도의 정서적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대부분 살아 있음에 안도한다. - P169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는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감정은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로막는다. 결국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탈출하고 고통을 멈추는 유일한 길은 죽음 뿐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그 순간만은 그들에게 자살은 선택지가 아닌, 현실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 P170
선택지가 없다고 느낀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한가? 사람들은 흔히 자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자살을 선택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편견을 강화시킬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이기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스스로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내가 사라지면 짐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P171
마지막으로, 자살을 선택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고인은 물론 자살 유가족들까지 낙인 찍는 일이다. 실제로 자살 유가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 바로 "고인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묻는 것"이라고 한다.유가족 중에는 낙인으로 인한 수치심과 죄책감 때문에 다른 사람과 교류하기를 꺼리고 고립되는 경우도 많다. 죄책감, 수치심, 고립 그리고 애도 과정이 합쳐질 경우 극심한 정신적 통증(psychache)을 느끼게 된다. 이 정신적 통중이 때로는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자살 생각을 호소하는 유가족도 흔하다. - P172
자살 유가족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죽음들과 달리, 자살만은 ‘죽음‘이 망자의 ‘삶‘을 압도해버린다고. 가령 누군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뿐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떠올리며 삶 전반을 기린다. 아마 대부분의 죽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유독 자살로 사망할 경우 그 사람의 삶 자체보다는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하는 이를 자살로 잃은 슬픔만으로도 벅찬 유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지양해야 한다. 아마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인구의 20퍼센트에 가까운 사람이 평생에 걸쳐 주변의누군가(가족, 친구, 지인 등)를 자살로 잃는다고 한다. 자살률이 미국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한국에서는 아마 이보다 더 흔하지 않을까. - P174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나라임에도 이 중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하기보다는 덮기 급급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도어 찌 보면 자살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우회하려는 자세가 반영된 신조어일지 모른다. 이제는 자살에 관해 떳떳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자살을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반복되는 자살은 우리 정신 건강의 현주소다.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 P174
2016년, SNS에서 하루에 팔굽혀펴기 22개를 하는 챌린지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이는 자살로 목숨을 잃는미국 전역 군인의 수가 하루에 22명이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 그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사회 운동이었다. 미국 전역 군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7.5명에 이른다. 이는 2018년 미국 전체 인구 대비 평균 자살률(10만 명당 14.2명)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같은해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6.6명이었다. 미국에서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집단의 자살률과 한국전체 인구의 자살률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은, 한국의 자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방증한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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