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느끼는 감정은 공기를 타고 고스란히 정신과 의사에게 전해진다. 회복을 향한 강한 의지를 품은 환자를 만난 후에는 희망에 부풀어, 절망감에 가득 찬 환자를 만나면 심연의 슬픔을 안고 병실을 나온다. 그래서 환자를 진료할 때 의사가 느끼는 감정은 환자의 현재 감정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 P92
보통 우울증 환자는 과거의 ‘선택‘을 자주 반추한다. 가령 특정한 진로를 선택한 후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든가, 어떤 사람을 만나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하는 등 다른 선택을 했다면 현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 P106
영문으로 동정(sympathy)과 공감(empathy)은 매우 유사해보이지만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큰 차이가 있다. 동정은 그리스어인 ‘sun(‘함께‘라는 뜻)‘과 ‘pathos(감정)‘를 합친 데서 연유한다. 즉 동정은 어떤 사람의 바깥에서 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 - P118
반면에 공감은 그리스어의 ‘em(‘안‘이라는 뜻)‘과 ‘pathos‘를 합친 말에서 왔다. 타인의 감정을 그의 안에 들어가서, 마치 그 사람의 거죽을 입고 느끼듯이 이해하는 것이다. 동정심은 고통을 겪고 있는 주체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철저히 타자화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을 연민하지만 그 아픔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동정심은 나와 고통을 느끼는 주체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반면, 공감은 고통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본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느낌으로써 비로소 그 고통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덜어낼 수 있다. 진심 어린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준다. 심리 치료에서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보이는 요인이 바로 치료자의 공감 능력이다. - P119
흔히 여성을 차별하는 일은 여성에게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앞선 사례처럼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여성을 차별하는 일이 남성에게, 남성을 차별 하는 일이 여성에게 도미노처럼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P124
실제로 공감 전문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윌리엄 밀러 박사는 그의 저서인 《경청하기: 공감적 이해라는 예술》에서 공감의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짚었다. 첫째,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둘째, 내가 모든 관심의 중심이 되지 않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공감이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중심적인 세상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는 일, 즉 자신의 스위치를 잠시 꺼두는 일이다. 공감은 그렇게 타인을 향한 진심 어린 관심과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특히 나와 많이 다른 사람들일수록 더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를 가치 있게 여기는 과정이 바로 공감이다. - P127
공감의 기저에는 더 높은 수준의 ‘컴패션‘이 존재한다. 이는 타인을 향한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 이상의 가치이며 타인이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욕구와 헌신에서 비롯된다. 타인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할수록 그 고통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을 것이다. 또 타인의 말에 더 열심히 귀 기울일수록 우리 각자가 겉으로는 달라보이지만 실은 얼마나 비슷하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 P128
편견 어린 시선과 사회적 낙인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중증 정신 질환자는 때로 그 낙인을 체화하는데 이를 내재화한 낙인(internalized stigma) 혹은 자기 낙인 (self-stigma)이라 부른다. 정신질환자를 향한 대중의 편견(가령 ‘정신과 환자들은 위험하다‘)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게 되는 것이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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