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의 결말은 죽음이야.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 P13
"알아." 안다. 내가 아는 것은 이자도 알고, 이자가 아는 것은 나도 안다. ‘이자는 나다.‘ 나는 생각하며 흙을 손으로 쥐었다. 이끼와 작은 씨앗, 마른 이파리가 섞인 흙이 손가락 사이로 부스스 빠져나간다. 모래, 두 개의 산소 팔을 가진 규소, 열네 개의 전자가 회전하는 원자, 근원으로 내려가면 모두 같은 물질. 모두 나와 같은 물질. ‘이곳은 나다.‘ 내 중음(中陰)이다. 어떤 생에서는 죽음을 넘나들다가 여기까지는 왔다가기도 했다. 돌아가서는 사후 세계를 보고 왔노라 흥분해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보고 간 것은 언제나 내 중음뿐이었다. - P15
"가난, 불행, 결핍, 학대, 사랑받지 못한 삶, 모두가 사람을 타인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영적으로 타락시켜요. 세상이 자신과 같은 것인 줄 모르게 만듭니다." "……" "제 몸 하나만 건사하는 데에 정신을 다 잃게 만든다고요."
-하계 사람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아만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에요. 별개의 존재예요. 우리 마음대로 운명을 짜고 삶을 조정할 권리가 없어요.
나와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아이와 내가 똑같은 것이라고? 차이가 없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하계가 허상임을 가르치고자 했다. 그것이 오히려 하계의 삶에 집착을 가져왔다고? 우리의 분리를 가속화시켰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생각해 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나와 연결된 내 모체와 소통할 수가 없고, 남의 마음은커녕 내 마음도 다 들여다볼 재간이 없었다. - P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