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광기어린 이 마음을 자타공인 ‘윤상 덕후‘인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보다 우아하고 지적인 언어로 표현해주었다.

이런 ‘나‘는 내가 가장 덜 싫어하는 ‘나’들 중 하나다. 덕질, 즉 어떤 대상을 최선을 다해 사랑해 보는 이 드문 경험은 왜 귀한가.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우리가 자신의 전부를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 덕질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덕)을 준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선다. - P140

한번은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다다른 결론은 좀 요상하지만, 나는 최초로 송출되는 필름에서 남다른 생명력이랄까 현장성을 느끼는 것 같다.
당연히 생방송일 리 없는데도, 이미 과거 시점에서 몇 번이나 녹화되고 편집된, 근사한 조각 모음이라는걸 아는데도 마치 그 서사가 그 순간에 탄생해 그 시간에만 고유하게 존재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본방송이 괜히 ‘본(本)‘ 방송이 아닌 것이다). 이 같은 과몰입의 끝은 스스로를 그 서사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온에어가 켜져 있는 동안엔 그게 무엇이든, 나는 드라마의 일부가 되어감을 느낀다. 나는 몰입하고자하는 대상의 시작과 발전, 부침과 소멸을 ‘함께 겪는‘게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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