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서럽고 가장 외로운 순간에 나타나 준 그가 너무도 고마워, 마음이 몸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성숙해지기 위해 애쓰는사람들끼리 손을 맞잡고 인생이 주는 고통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고집부리며 떨쳐 내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찬란한 감정들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인간을 조롱하는 삶에 오히려 침을 뱉었다. - P118

그러고는 홀로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쌌다. 사랑을 절제하고 감정을 통제하기 위하여, 돈주머니를 흠모하고 부패를 숭배하기 위하여, 만일 자신 안에 영혼이란 것이 아우성치며 돌아다닌다면 그것을 깊은 바다에 내던지고 돌아오려고………… - P125

"조선의 여자로 태어난 게 한스러워. 저 무서운 가부장제 때문에 여자는 아무리 배워도 소용이 없어. 나보고 기가 세다느니 어쨌다느니 앞으로도 얼마나 말이 많을지 안 봐도 훤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무대에 서는 것도 두려워져. 그래서 혼자 있을 때면가끔 이렇게 중얼거린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디냐.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이 말이 한숨처럼 입에 붙어 버렸어." - P199

"기자들은 윤심덕이라는 한 여성을 집중 사냥함으로써 가난하고 희망 없는 대중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하는 거예요. 공부를많이 하고 성악을 해 봤자 여자는 여자일 뿐이라는, 저 한없이 고루해 빠진 민중의 심사에 영합해 보려구요. 그러나 그것은 민중을 편협한 마음으로 보려는 지식인들의 오만입니다. 민중을 언제나 토라져 있는 존재로만 보는 건 또 다른 우월주의예요. 일제가 대놓고 주입시켜 온 ‘조선인 열등주의‘에 암묵적으로 동조해 스스로 제 살을 깎아 먹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거지요…." - P249

함께 있어야 한다. 둘만의 보금자리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지만 살아있고 싶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끝없이 파고드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성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초조함, 그런 것들은 모두 잊을 것이다. 언젠가일본에서 우진과 처음 입맞춤을 했던 순간처럼 다시 또 그런 결심을 하고 있는 심덕이었다. - P252

보름 후에도 한 달 후에도, 언론은 결코 윤심덕을 절대 동정하지 않았다. 언론은 발정난 암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에 대해 분별없는 감상이니, 탕자의 교만이니, 낭만일 뿐인 공상이니, 세상에 떠도는 말을 다 갖다 붙이며 멸시했다. - P272

그러나 두 사람에게 있어 사랑은 성찬이었고, 위대했고, 간절했다. 사랑은 고통이지만 즐거움이었고, 슬프지만 치열했고, 위험했지만 탐스런 것이었다. - P273

심덕에게는 대응할 그 어떤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언젠가는 결백이 밝혀지겠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사후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제,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사랑도 노래도……………심덕은 송충이만도 못한 이 사람들의 곁을, 성숙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바닥을, 어서 빨리 벗어나는 것만이살 길이라 생각했다. 두려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옥임의 예감대로…………. - P290

남자에게서 버림받고 사회에서 외면당한 한 여자를 자신만큼 잘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참으로 모순된 상황이었다. 우진과의 애절한 사랑을이용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삶의 아픔을 모두감정선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 P309

영화는 며칠도 못 가 간판을 내렸다. 사실, 영화 하나로 인생의과오를 세탁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신문기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이전에 당했던 모멸감의 배가 되어 심덕을 더욱더 괴롭혔다.
이제 당신, 윤심덕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윤심덕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거대한 함성들이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환청으로 들렸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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