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죽지 않으면 뭐 하나. 이 섬에 매여 다른 이들의 뜻을 전하는 것 외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때가 되면 흘레붙은 가축처럼 원치 않는 새끼를 배고 죽을 힘을 다해 낳고 그아이가 자랄 때까지 병든 몸으로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말라 죽을 듯한 뜨거운 햇살 아래서 끊임없이 기원만 드려야 하나?
어두운 바닷속보다 더 깜깜한 미래를 떠올리자 팔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죽는 순간에라도 지긋지긋한 섬을 벗어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마지막으로 달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있는 힘을 다해 눈을 뜨니 은하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너울거리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아침에마주쳤던 얼굴이 어두운 바닷속에서 뜬 달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아침에는 어여쁘게 웃어 줬는데 지금은 다급하고 놀란 표정이었다. 웃어 주세요, 날보고 웃어 줘요. 행복하게 갈 수 있도록……
눈이 감겼다 - P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