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패배를 인정했다. 사람들이 달려와 숲지기의 발을 동여매려 했지만 숲지기는 거절했다.
"신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 머지않아 다 죽고 잊힐 거야. 왕국은 애초에 내 알바 아니었고."
그 말에 몇몇이 결국 무기를 뽑아들었다. 왕과 왕비가 소요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숲지기가 공주를 잡아끌었다. 뼈밖에 안 남은 발로도 성큼성큼 앞서갔다. 공주는 사랑하는 부모의 눈썹에 짧게 입을 맞춘 다음, 숲지기가 이끄는 대로 내려섰다. 분노한 사람들이 달려오기 직전, 숲지기는 그 이질적인 눈을 똑바로 뜬 채 공주에게 키스했고 내기에서 이긴 합당한 상대의 입술을 공주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다음 순간, 두 사람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야기 바깥으로 걸어갔다.
예언자들은 ‘이야기‘ 본인이 공주를 데려갔다고 했다. 요새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야기가 그렇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제 발로 걸어다니는 존재인지,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예언자들은 또 공주는 죽지 않았고 다만 어딘가 ‘바깥‘에 있다고 말했다. 간절히 마음을 모으면, 강인한 - P183

공주가 사악한 이야기를 죽이고 돌아올 거라고 했다.
왕과 왕비의 죽음이 가까이 오자, 요새 사람들은 ‘공주귀환준비회‘를 만들었다. 공주 다음으로 왕위 계승권을 가진 그 누구도 왕좌에 오르지 못했다. 요새 전체가 그들을 거부했다.
"우리는 공주님이 아닌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공주님이 돌아올 날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놀랍게도 준비회는 칠십 년 이상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존속되었다. 당시 평균수명으로 따지면 공주가 늙어 죽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준비회 구성원이 다섯 세대에 걸쳐 교체되고, 공주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 후에도 요새 사람들은 굳게 기다렸다. 이야기 바깥의 세계는 종종 시간이 달라, 아무렇지 않게 돌아올 수도 있다고 믿었다. 공주가 사라진 다음에 태어난 아이들이 가끔 헷갈려하긴 했다. 신도, 악마도, 요정도, 괴물도, 도적도 아닌 이야기가 그 유명한 공주를 데리고 갔다고? 한 번도 들어본 적없는 그런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공주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모두 깨닫게 된 다음에도, 사람들은 입 밖에 꺼내 말하지 않았다. 왕국이 서서히 해체되고 준비회가 그대로 집권 체제가 되었을 때조차도 - P184

공주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주변 어느 나라보다 민주적인 나라였다. 요새는 군사적 목적을 잃었고, 패배한 왕자들에게서 얻은 땅은 풍요로워 손이 많이 가는 견과류 채집이나 위험한 광산 운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옛 예언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영원히 사라진다던 것은 요새가 아니라 왕국이었구나, 공주의 저주는 정말 이뤄진 것이구나 하고.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더 공주를 사랑하게 되었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 P185

사소한 후회만이 떠올랐다. 마지막 키스를 갱신했어야 했는데, 용기였겠지. 용기였겠지만, 생생하게 갱신했어야 했는데. - P200

"절단면이 깨끗해야 다시 이어붙일 수 있어."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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