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헝클어져 있는 머리엔 어째선지 종종 나뭇잎이나 날벌레가 붙어 있었다. 어디 풀숲에라도 누워 있다 온 걸까 상상하게 되었다. 다른 애들은 머리에 벌레 붙었다고 놀리기 바빴는데, 내겐 왜 그 모습이 그렇게 예뻤을까.
어느 날, 그 애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무당벌레 한마리가 날아올랐고, 나는 그 애를 사랑한다고 느꼈다. - P104

호오

도트 무늬의 도트는 작고
사이는 멀며
일렬이 아니어야 해요
점들이 좀 일렁이며 흩어지면 좋겠어요

당신이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아 해서 좋아해요
지루해하고 시시해하는 표정이 좋아요
감동 같은 걸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전집을 버리고 잡지를 모으는 사람이라서

도시 전체가 정전된 꿈을 꾸었어요
꿈 이야기를 하면 반칙인가요
버스를 기다리는데 차창의 전광판도 꺼져서
몇 번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건 정전과는 상관없지 않나요

수조의 멍게가 너무 커서 심장처럼 보이네요
당신이 내 앞에서 상처를 열면
물의 냄새, 유리의 냄새
혹 내가 쥐고 있는 것이 날카로운가
손을 내려다봐요

우리 괜찮게 살다가 좋은 부고가 되자,
그렇게 말하곤 웃었지요
당신이 견디면서 삼키는 것들을
내가 대신 헤아리다 버릴 수 있다면,
유독하고도 흡족할 거예요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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