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집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있는 묘지를 골랐다. 언덕을 절반쯤 내려가다보면 나오는 철문이 있는 긴 담장으로둘러싸인 묘지였다. 아빠는 매장을 하는 것에 두려움이 좀 있다고 고백했다. 해충 구제업자로 몇 년을 일했으니 벌레들이 앙갚음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엄마의 재를 땅에 묻는 일은 나에게 중요했다. 꽃을 가져와 놓아둘 공간이 필요했다. 쓰러질 수 있는 땅이, 주저앉을 바닥이, 아무 철이고 와서 눈물을 흘릴 풀밭과 토양이 필요했다. 마치 은행이나 도서관에 찾아간 것처럼 진열장 앞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 P268

그토록 잘 아는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어려웠다. 고르고 고른 단어마다 초라하기 짝이 없고 허식만 가득했다. 오직 나만이 드러낼 수 있는 엄마의 특별한 부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엄마는 단순히 주부나 엄마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두 역할을 독선적인 태도로 얕잡아 보았다. 양육과 사랑을 택한 사람에게도, 돈을 벌고 창작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얻는 만큼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지모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곡 책 한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나란 존재가 엄마가 세상에 남기고 간 자신의한 조각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냥 겁이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 P269

엄마의 미술 선생님은 엄마가 돌아가셨단 걸 알면서도 엄마에게 편지를 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글이 아니라 영어로 쓴 까닭은 뭘까? 혹시 날 위해 번역을 한 걸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어찌어찌 내가 엄마를 흡수한 것처럼, 이제 엄마가 내 일부라도 된 양 느꼈고, 적어도 그렇게 되길 바랐다. 그런데 미술 선생님도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 말하자면 내가 자기 말을 들어줄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느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81

엄마가 가고 없기에 나는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엄마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재발견하기 위해 엄마의 소지품을 뒤졌고,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엄마의 자취를 되살리려 애썼다. 나는 몹시 슬퍼서 미미한 표지라도 의미심장한 단서로 삼아 분석해내려고 발버둥쳤다.
엄마의 그림을 손에 들고 엄마가 통증과 고통에 시달리기 전의 모습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손에 붓을 들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그려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술이 엄마를 조금은 치유해주었는지, 은미 이모의 죽음이몰고 온 실존적 두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궁금했다. 나의 창의성이 애초에 엄마에게서 온 건지, 다른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았다면 엄마도 예술가가 됐을지 궁금했다.
"이제 우리가 서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게 돼서 너무 좋지않아?"
대학생 때 언젠가 집에 와서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내가 10대이던 시절에 서로에게 입힌 어마어마한 상처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였다.
"좋아." 엄마가 말했다. "내가 뭘 깨달았는지 알아? 너 같은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야." - P284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낳아키우고 나와 18년을 한집에서 살았던, 내 반쪽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엄마 역시 여태 나를 이해하지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대와 문화와 언어가 갈라놓은 단층선 반대편에 각각 던져져 기준점도 없이 죽도록 헤매기만 했을 뿐 서로가 서로의 기대를 생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그러다 가장 풍성한 이해의 과실을 거둬들여야 했을 시간들이 그만 난폭하게 잘려나가고 말았고, 이제 나는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 혼자서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 P285

3월 말 스물여섯 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아빠가 피터와 나를 공항으로 바래다주었다. 우리는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서로 껴안으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애도의 첫 장을 갈무리하며 출발했고, 아빠와 나는 과연 남은 파편들을 하나하나 잘 주워 담아 새롭게 삶을 꾸려갈 수 있을지 서로를 걱정한만큼이나, 서로가 눈앞에서 사라져주어 동시에 안도하는 마음이었다. - P328

태어나서 머릿속에 언어체계가 잡히는 첫 1년 동안 나는영어보다 한국말을 훨씬 많이 들었을 것이다. 아빠는 일하러나가고 집에는 여자들만 한가득 있었는데, 그들이 "자장자장"
하면서 나를 재우고, "미셸아" "아이고 착해" 같은 정다운 한국말로 나를 다독였으니까. 텔레비전도 밤낮으로 틀어놓아 한국뉴스 만화며 드라마에서 쏟아져나오는 한국말이 온 방안을채웠다. 그리고 그 위로 할머니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할머니는 모음을 길게 끌면서 리드미컬한 소리를 내다가, 이내 고양이가 쉭쉭거리거나 가래 끓는 기침 소리처럼 목구멍 깊은 곳에서 특유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과장되게 내면서 리듬을 탁 끊었다.
내가 맨 처음 한 말은 엄마라는 한국말이었다. 아기 때부터엄마의 중요성을 느꼈나보다. 엄마는 내가 가장 많이 본 사람이었고 의식이란 게 생겨나면서부터 이미 엄마가 내 거리는걸 알았다. 사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입 밖에 낸 첫번째 말이자 두번째 말이었다. 처음엔 "엄마", 그다음엔 "맘mom". 나는 엄마를 두 가지 언어로 불렀다. 엄마만큼 날 사랑해줄 사람은 없을 거란 걸 그때부터 알고 있었으리라. - P330

"울지 마, 미셸."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자 이모가 말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았다.
"엄마가 항상 제 엄마가 죽었을 때나 우는 거라 했거든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도 노상 그렇게 말했어." 이모가 말했다. "너랑 네 엄마 똑같네."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항상 말도 못하게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토가, 엄마만의 독특한 양육법에서 나온 거라고 믿었다. 내가 울고불고 떼를 쓸 때마다, 무릎이 까지거나 발목을 접지를 때마다, 남자친구와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헤어지고 내게 온 기회를 놓치고 나의 평범함과 단점과 실패를 마주할 때마다 엄마는 그 좌우명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었다. 라이언 월시가 플라스틱 망치로 내 눈을 가격했을 때도, 전남자친구가 먼저 내게 이별을 고했을 때도, 우리밴드가 청중이 한 명도 없는 공연장에서 형편없는 연주를 했을 때도 엄마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소리를 꽥 지르고 싶었다. 제발 지금 내 기분을 그렇게 뭉개버리지 말아줘, 라고. - P337

나는 궁금해졌다. 만일 엄마를 가장 잘 아는 우리 세 사람, 그러니까 아빠와 나미 이모와 나에게 엄마가 남겨둔 10퍼센트의 부분이 제각각 다르다면, 우리가 같이 그 숨겨진 부분을 짜맞추어 엄마의 전모를 알아낼 수 있을지. 과연 내가 엄마의 모든 걸 알게 될 수 있을지, 엄마가 또 무슨 단서를 남겼을지도. - P338

나는 엄마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주야장천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너한테서 항상 김치 냄새가 날 거야. 그 냄새가 네 땀구멍으로 배어나올 테니까.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 P361

흙내음을 간직한 산채나물이 있던 곳에 온갖 반찬과 엄마가직접 담근 소중한 장이 있던 곳에, 오래된 가족사진 수백장이들어 있었다.
순서는 뒤죽박죽이고 사진을 찍은 시간도 장소도 제각각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부모님 사진도 있었다. 아빠는 눈조각상 앞에서 추위 때문에 몸을 웅크리고 손을 호주머니에넣은 채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검은 머리카락과 콧수염이 빽빽하게 나 있는 모습이었다. 후지컬러 HR 필름으로 찍은사진 색감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어릴 적 찍힌 사진들에서 나는 죄다 벌거벗은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앞마당에서 빨간 세발자전거 뒤에 서 있거나,
부엌 아일랜드 식탁 옆에 둔 스툴에 걸터앉아 있거나, 카펫 위에 색연필 통과 실로폰 채를 늘어놓고 문틀에 기대앉아 있었다. 잔디밭에 쭈그리고 앉아 플라스틱 치즈통에 손을 쑥 집어넣고 들개처럼 카메라를 바라보는 사진도 있었다.
카메라 렌즈 뒤에는 어김없이 엄마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를, 나의 단순한 즐거움을 내 안의 세계를 포착해 보존하려던 엄마가 한 사진에서는 내가 거실에 펼쳐놓은 작은 누비이불 위에 누워서 북쪽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쬐고 있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누비이불 위에 물건들을 쫙 펼쳐놓고는, - P368

소지품을 챙겨 튜브 보트를 타고 물위에 둥둥 떠 있는 상상을했던 일이. 멀리서 찍은 다른 사진도 있다. 차고 진입로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기가 하늘을 나는 마법의양탄자 위에 앉은 것처럼 홀로 수건 위에 앉아 있는 사진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엄마가 계단 위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눈에 대고, 현관문에서부터 아장아장 걸어오는 나를 쭉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아이용 흔들의자 앞에서, 엄마가 나를 살살 달래 노란 원피스를 입히고 숙녀처럼 인사해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만세" 하고 지시하는 소리도 그 자세로 나는 원피스목 부분에 머리를, 소매에 팔을 넣었다. 그런 뒤에 엄마는 무릎까지 오는 미키 마우스 양말을 가져와 내 발에 신겼다. 나를둘러싼 주변 풍경에서도 엄마를 찾아본다. 알록달록한 네덜란드 집과 발레리나 도자기 인형 세트와 크리스털 동물 장식품들에서,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엄마 앞에서 드러낸 모든 감정도 떠오른다. 엄마의 허락을 받으려 기를 쓰고, 엄마의물건을 망가뜨린 걸 그 자리에서 들켜 당황하고, 엄마가 준 선물에 신이 나 푹 빠져 있는 장면들이. - P369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이런 것들을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한낱 기록과 내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쌉싸름한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 P371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엄마가 신의 목이라도 졸라서 내게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게 틀림없다. 하필 우리 모녀 사이가 막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신이라면, 절대로 내몽상이 실현되게 할 리가 없을 테니까. - P388

이모는 내 손을 잡아 나를 화면 앞으로 끌고 가서 내 얼굴을 보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모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며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모음 소리라도 따라 내면서 멜로디를 좇아가려 애썼다. 저 깊은 곳에 존재했을 수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기억을, 혹은 어떻게든 내가 접했을 엄마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모가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 느껴졌다. 지난 한 주 동안 내가 이모에게서 찾으려 하던 것이었다. 이모가 나의 엄마도, 내가 이모의 동생도 아니었지만, 그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그 다음으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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