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느낌, 너무 그리웠어."
"당신이 그 명함의 주인인가요?"
그가 물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구나."
크게 실망한듯, 그녀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일렁였다. 나는대체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지? 왜 내 눈앞에 찾아와서 그런표정을 짓는 거야?
"우리가 대체 무슨 사이인 거죠?"
"그걸 지금부터 확인하려고."
여울이 그의 몸에 완전히 올라앉아 입술로 입술을 덮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그녀에게 진환은완전히 정복당하고 말았다. 그가 몸을 움직이려 할 때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억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가만 좀 있어. 네가 뭘 하려고 할 때마다 걔가 아니라 딴 사람처럼 느껴지니까."
그는 마치 장난감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그녀에게 전부를 맡겼다.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맞춰주고 있는지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술을 떼고 말했다.
"역시 느낌이 달라."
"뭐가 어떻게 다르단 겁니까?" - P166
"네가 좋은 선생님을 붙여줘서 말이지."
"그래? 좋겠어, 아주."
푹. 미진이 그의 가슴에 칼을 찔러넣었다. 익숙한 위치에서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익숙한 각도로 칼날을 비틀며 그에게 속삭였다.
"그거 알아? 지금까지 내가 널 몇 번이나 죽이고 살렸는지다 세지도 못한다는 거."
역시 너였구나.
칼날이 빠르게 미끄러지는 순간, 진환은 비로소 자신의 기억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사고 이전의 기억도, 사고 당시의 기억도 아니었다. 미진은 배양수조로 그를 살려내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분이 풀릴 때까지 그의 폐를 도려내고 또 도려냈다. 기억이 또렷이 새겨질 정도로, 찔린횟수와 위치마저 기억할 정도로.
도대체 나는 몇 번째 석진환이었을까.
"이 새끼 저녁 때까지 살려 놔. 다시 죽여버릴 거니까."
미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정장들이 쓰러진 그의 몸을검은색 시체 가방에 집어넣었다. 천천히 지퍼가 닫히고 시야가 어두워졌다.
전부 계획대로였다.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