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 일상의 오류가 보이기 시작하는 과학적 사고 습관
데이비드 헬펀드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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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설적이게도 과학이 낳은 기술 때문에 세계가 그릇된 정보의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이제 그릇된 정보는 단지 성가신 정도를 넘어서 명백한 위험이 됐다. / 12


넘치는 정보 때문에 그 정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줄 알아야하는 정보분별력까지 요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오면서 댓글부대로 인한 정보 조작, 인터넷에서만 돌아다녔던 것이 진짜인냥 신문으로까지 발행되는 가짜 뉴스에 현혹이 되어 이게 옳은 것인지 아닌지 제대로 판단을 하지도 않고 거리에 내몰리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의 저자 데이비드 헬펀드는 진실을 왜곡하는 가짜 정보들을 '과학적 사고 습관'으로 접근해 일상의 오류를 바로잡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책을 읽다보면 '알쓸신잡'에 출연했던 정재승 교수님이 떠오른다. 그 프로그램에서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알기 쉽고 명쾌하게 얘기를 해주어서 유시민 작가님 때문에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정재승 교수님의 팬이 되어버릴 정도로 매회 놓치지 않고 보았다.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도 정재승 교수님의 입담과 비슷해서 '과학'이라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영역이라는 부담감을 벗고 읽을 수 있었다.




맥락이 없으면 수는 그릇된 정보가 된다. / 82


저자는 수를 무시할 경우 그릇된 정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며 그게 가늠하기 쉽지 않은 큰 수일수록 아무런 의미가 없을때가 있다고 말한다. 2012년 월마트가 앞으로 10년간 500억 달러치의 미국산 제품을 구입하겠다고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는데 저자의 계산에 따르면 10년 후인 2022년 월마트가 구입한 미국산 제품은 전 제품중의 1.5퍼센트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예로 오바마 대통령이 몬태나주 미줄러에 가서 부족들에게 기후변화 적응법을 교육하는데 1천만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이 1천만 달러는 미국정부에서 81초만에 쓰는 액수이며,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을 타고 미줄러로 갔다오는 비용은 약 250만 달러라고 한다. 위의 두가지 예만 보아도 수를 이용할 때 '맥락'을 살펴보지 않게되면 그럴듯한 사탕발림에 넘어가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216


얼마전 논란이 되었던 240번 버스 사건도 그렇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모자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추가적인 취재없이 퍼나르기식 언론보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르지 못한 판단을 내렸던가. 읽어주는걸 받아 적는데에 익숙해진 언론인이 질문을 해달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에도 그 아무도 질문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인슈타인의 명언대로 모두가 생각하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폐증'에 대해 예민해질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들 중에 백신을 맞아서 멀쩡했던 아이가 자폐증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친구도 그와 관련된 책을 읽고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꼬박꼬박 예방접종을 맞힌 나로서는 깜짝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고의적인 사기로 국가로부터 의사 면허를 박탈당한 사람의 작품이었다니! -_-;;


과학적인 증명도 없이 논란을 키운 웨이크필드와 공저자의 주장으로 인해 영국에서 1996년 92퍼센트의 백신 접종 비율이 2003년 초에 78.9퍼센트로 떨어졌고, 그 결과 볼거리 발생 횟수는 4,200건(2003년)에서 56,000건(2005년)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세상에! 내 친구에게 이 사실을 얼른 전해주고 싶다) 그의 논문의 연구가 틀렸고, 논문이 실린 저널이 그 논문을 철회했지만 '백신이 자폐아를 유발시킨다'는 것은 여전히 부모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주제가 되었다. 과학적이지 않은 사고가 개인과 사회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다.


저자의 사례를 통한 과학적인 풀이로 의외로(?) 읽기 쉬운 책이었으며, 놀라운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바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양쪽 귀를 귀담아 듣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과학은 단순히 지식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생각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거나 정부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잃었을 때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다시 미신과 암흑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지 모른다. - 칼 세이건 /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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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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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였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 26


칼에 베인듯 치명적인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위로한답시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치유가 될꺼라고, 사람에 의한 상처는 다른 사람으로 났는다고 하면, 그게 곧 위로가 될까. 사실 시간이 약이고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나아진다는게 한참 뒤에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깊게 베인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봄인줄 알았는데 가을이란걸 알아챘을때, 이제 막 개나리가 진 줄 알았는데 물에 젖은 낙엽이 신발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걸 목격했을 때, 그때의 마음을, 머리와 빗장뼈가 동시에 울릴 때 나는 그 진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40


정수와 헤어진지 일년이 지난 L항공 비행 승무원인 윤사강은 모두가 잠든 새벽, 접속한 트위터에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맨션을 보게 된다.



실연당했습니다.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제를 주최합니다.

실연 때문에 혼자 있기 싫은 분들은 저랑 아침 먹어주실래요? / 38


오래된 연인 현정과 헤어진 지훈은 옷장 속에 넣어 두었던 로모 카메라를 꺼낸다. 트위터에 올라온 '실연당'의 맨션 중에 '기념품을 내놓고 교환한다'는 내용에 충동적으로 참가의사 쪽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게 진짜 위로야. 무릎이 깨졌으면 당장 쓰리고 아프더라도 과산화수소를 퍼붓고 빨간약부터 발라주는게 위로라고 / 111


그리고 실연은 인생의 수많은 오답중의 하나일뿐이라고, 그래서 헤어져야 만나고 만나야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확신에 찬 정미도, 이 여자의 정체를 그대로 까발리고 싶지만 이 소설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끌고 스포의 중심인물이기도 해서 그대로 밝히면 이책을 읽는 분들에게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생략하겠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 317


그러고보니 사강과 지훈의 공통점은 서로 먼저 헤어지자고 말을 한 쪽이다. 헤어지자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상대를 만난 것 또한 같다. 그래서 그와 그녀를 차버렸지만 실연당한 두 사람, 그 실연을 치유하는 과정이 서로 만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이런 상태로라면 누군가를 또 만나도 상처는 곪아 터지고 말 것이다. 모 출판사 자녀교육서 독자기획단으로 몇개월을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이 소설의 끝으로 달릴수록 아동심리치료와 관련된 책을 읽는 기분이다. 심리치료상담전문가와 소통상담가의 책을 보면 결국 그 상처와 마주해야만이 치유가 된다고 하더라.


윤사강이 마침표를 찍기 위해 기념품으로 내놓은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책을 찾기 위해 지훈을 만나야 했고, 두사람의 깊은 상처가 남녀간의 사랑 때문만이 아닌 또 다른 사랑에 대한 부재, 그러니까 어린시절에 겪어야 했던 상처를 비로소 마주하고서야 그들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진짜 사랑을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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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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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책이라며 나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밝힌다. 끼리끼리 논다고 했던가. 저자가 독일의 유력지에 칼럼을 쓰고 있는 분이어서인지 그의 글빨에 놀랍고 술술 읽히고 점점 빠져든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이야기들, 같은 시대에 전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350페이지 분량으로 지루할 틈 없이 얘기한다. 
 

'낙원 추방(농업 혁명)' 이후 인간은 식량을 얻고자 신들의 관대함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직접 경작에 나선 인간은 식량을 비축하면서 점점 궁핍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삶은 더 힘들어져만 갔다.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식량이 많아지면서 인구도 늘어났다. 자연히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야 했고, 여가 시간도 사라졌다. 신석기 혁명의 비극적 역설은 생활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삶이 고된 노동으로 채워졌다는 점에 있다.  / 64-65

우리는 농업혁명과 함께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복종시킨다는 인류의 작전 계획이 확정되었다. 이제 그 길을 계속 가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우리의 지배가 확고해질 때까지, 또는 우리의 문제가 모두 해결될 때까지 말이다. / 67-68

 

약 5억년전 생명이 탄생하고 뇌 속에서 뭔가 파바박 새로운 일들이 발생하면서 계절에 따라 먹이 따라 이동을 하다가 어느 한곳에 정착을 하고 부족을 만들고 나라를 세우는, 그랬던 과정이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살아남기 위한 과정들이구나 생각케 한다. 저자는 책의 도입부에서부터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으로 쓰였다고 밝혔는데, 유럽이 세계 곳곳을 정복하고 식민지를 삼아 지배했던 역사를 보면 그들도 정복당하지 않기 위해 종족을 지키기 위해 때론 잔인하게 때론 설득해 왔던 것이 인간은 약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돌풍이 분다는 나비효과처럼 역사는 생각지도 못한 또다른 결정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유럽인구의 3분의 2를 사라지게 했던 흑사병이 유럽인들에게 민주주의적 각성을 불러일으키게하고, 유대인 지식인 바울의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사랑하신다'라는 '모든 이를 위한 종교'라는 구상이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개인주의'를 탄생케 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민주주의와 개인주의가 멀고 먼 한참 전의 사건과 인물로 인한 시발점이었다는 걸 알게되는 것, 내가 다른 사람보다 뭔가 하나더 지식을 배웠다는 맛에 세계사를 읽는 것 같다. ㅎㅎ
 

나는 아이에게 위인전을 사주고 싶었지만, 내가 어렸을때 읽었던 위인전과 어른이 되서 알게된 그 위인의 모습이 전혀 달랐어서 (예를 들어 최초로 하늘을 날수 있었던 사람이 라이트형제라던가 하는) 매번 사는걸 망설이곤 했다. 하지만 이책을 읽고나서 위인전을 사는데 망설였다는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어릴때 배웠던 역사와 인물이 어른이 되어서 새롭게 혹은 어이없는 장면으로 맞딱뜨리면 그 기억이 오래갔는데, 농업 혁명, 종교 전쟁, 아테네, 바울이 맛깔나게 쓰인 이책 덕분에 오래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역사, 세계사에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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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알았어야 할 일
진 한프 코렐리츠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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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데 꼬박 2년이 걸린 <진작 알았어야 할 일>의 저자이자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그레이스의 잡지 인터뷰와 그녀의 아들이 다니고 있는 사립학교의 <리어든의 밤> 행사 준비로 100페이지를 읽고서야 스릴러 소설답게 무슨일인가 벌어진다. 시시콜콜 세세하게 설명하는 것에 언제까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나 싶었던 그때, 드디어 살인사건이 터졌다. 리어든의 밤 행사 준비때 엄마들 앞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렸던 말라가 알베스의 죽음이었다.



헨리가 오늘이든 내일이든, 아니면 다음주든 학교에서 돌아와 4학년 애네 엄마가 살해당했다는데 알고 계셨어요?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응하는게 최선일까? / 155


심리치료사라서 누구보다 타인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하고 공감 능력이 클 것 같았던 그레이스에게서 학부모의 죽음이 아들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 예민하게 경계하는 모습에 당황스럽다. 그저 그런 관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계, 그런 타인의 죽음은 슬프고 놀랍지만 깊은 슬픔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냉철한 현실을 그레이스의 모습을 통해 의도적으로 작가가 표현한 걸까?



여기라면 안전해. 도움받는 기분이야. 하지만 대니얼이 선생님을 원했어요. 그는 선생님이 냉정하다고 생각했죠. 우리한테 냉정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냉정한 일은 이미 충분히 겪었으니 고맙지만 됐어요. 아니 언제 한번이라도 감정을 보인적은 있어요? / 241


겉으로 보기엔 흔들림없어 보이는 그레이스지만 그녀의 내면은 혼란 그 자체이다. 말라가 알베스의 죽음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헨리를 신경써야 하고, 휴대폰을 집에 두고 출장길에 오른 남편과 연락할 방도가 없어, 아니 남편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크게 당황한다. 완벽한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를 놓친 기분을 그레이스는 이제서야 느낀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다 파경에 이른 그녀의 상담자들을 보며 우리가 진작 알았어야 할 일에 대해 책 한 권을 써놓았으면서, 정작 그 글을 쓴 당사자가 진작 알았어야 할 일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로즌펠드가 그 말을 하는 바람에, 유독한 공기를 안에 밀봉하고 있던 유리 덮개는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여섯 단어였다. 나중에 세어 봤다. 그 단어들을 따로 떼어 보고, 다시 조합해 보고, 그 단어들이 파괴를 일으키지 않고, 삶을 뒤집어엎지도 않고, 삶을 끝내지 않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리고 실패했다. / 266


'그냥 아는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남편'이 사라졌다. '그냥 아는 사람'을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남편은 왜 수상쩍스럽게 연락이 되지 않는걸까? 설마 이 두사건이 연결되어 있는걸까?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을 죽인건 뜻밖의 인물이고 남편은 자신의 일이 괴로워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아무일 없다는 듯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게 될까?


대도시가 그렇듯 멀리서보면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득권, 우월주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완벽해 보였던 그레이스가 이 두사건을 만나면서 그런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히 범인이 누구인가로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이 여자 참 생각 많다 싶을 정도로 인물의 내면 심리를 농밀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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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 - 개혁군주 정조의 78가지 질문
정조 지음, 신창호 옮김 / 판미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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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봄날처럼 좋고 풍성해야 백성들이 좋은 날만큼 보답할 수 있고, 정치가 풍요롭고 풍속이 밝아야 사람들이 좋은 시절을 그만큼 즐길 수 있다. 삼월삼질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물가에 오가는 수레 소리가 적고 즐겁게 놀이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삼월삼질의 다른 이름인 '원사'라는 명칭만 있을 뿐, 부정을 물리치거나 생명력을 약동시키는 행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어쩌면 내가 군주로서 계절에 따라 백성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결과는 아닌가! 백성의 심정에 즐거움은 적고 피곤함이 많으며 농사는 흉년이 자주 들고 풍년이 적어 백성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 52


3월, 따스한 봄날이 되었음에도 백성들 사이에 생동감이 없고 경직된 사회에 대해 군주로서 고민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정조의 책문 일부분이다. 책문은 여러 신하들을 상대로 국가의 정책에 관해 질문을 하며 대책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조 책문>은 정조가 쓴 <홍재전서>에 실려 있는 책문을 독해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세종대왕 다음으로 좋아하는 조선의 왕인데도;; 정조의 학문의 깊이를 이해하기엔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일거다;



거미는 그물을 만드는 지혜가 있고 쇠똥구리는 둥근 흙뭉치를 굴리는 지혜가 있으며, 늙은 소나 말은 자신이 다니던 길을 아는 지혜가 있고 제비는 계절에 따라 이동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짐승이나 미물들도 자연적으로 타고난 지혜가 있단 말인가? 지혜를 넓히려면 반드시 먼저 많이 들어야 하고, 지혜를 더하려면 책을 읽고 연구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했다. 넓히고 더하는 것이 많이 듣고 책을 읽고 연구하는 데 있다는 것은 어째서인가? / 61


군주의 책문은 이미 질문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제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며 읽다가도 '어째서인가?' 라고 질문이 날아오면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느라 몇번이고 글 위에서 멈추고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더디게 읽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옳지 못한 일들을 꼬집어내는 내용들이 있어 책이 다소 어려워도 계속 읽게된다. 지난 정부가 얼마나 나태하고 얼빠진 집단이었는지 알게 되면서 말이다.



옛날부터 현명한 군주와 능력 있는 신하가 시대마다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무를 겸하여, 이를 제대로 사용한 군주나 신하는 많지 않았다. 문식과 무략의 길이 물과 불처럼 달라 협동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인재가 옛날 같지 않고 기량이 제한되어, 한쪽에 능숙하면 다른 쪽에 능숙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인가? / 83


박근혜 정부 때는 툭하면 인사가 낙마를 하고 잊을만하면 사고를 쳐대서 우리나라에 인재가 그렇게 없나 싶을 정도였는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 없다 생각했던 인재들이 이제는 차고 넘쳐서 나라에 지도자 한명이 바뀌었다고 이럴 수 있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인재를 적재적소에 맞게 등용하는 것이 얼마나 옳고 중요한 일인지 다짐한다.



주례에 "지방의 연륜 있는 어른과 명문 관리가 현명한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의 명단을 기록하여 중앙에 있는 왕에게 바치면, 왕은 두 번 절하고 받았다."고 했다. 옛날 군주들이 천거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이처럼 오래되었고, 인재를 구하는 방법에서도 이처럼 엄격했다. 인재를 취할 때는 관대하고 모집하는 영역도 넓어, 덕행도 갖추고 정치도 잘하는 능력을 한 사람이 모두 갖추고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 104


정조가 가장 원했던 인재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초야에 묻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인물이라도 진실로 하나의 재주나 솜씨가 있다면 추천서를 기다릴 것도 없이 선발하고 싶다고 한다. <정조 책문> 중 인재 등용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자연스레 문재인 정부의 청문회가 떠오른다. 국민들은 그 정도의 흠을 감안하고 국정농단에 흔들린 나라를 대통령과 함께 이끌어가길 바라는 여론이 더 많음에도 어거지로 끌어내리려는 반대파들을 보면 그저 내편이 아니라서 깍아내리기에 혈안이 되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들은 장관들을 향해 '대면보고가 필요하세요? 홍홍' 웃던 그런 지도자 혹은 공직자를 여전히 바라는 걸까? 지도자 한 사람을 보지 말고 국민을 바라보며 서로 허물없이 질문하고 대책을 세우며 국민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어주었으면, 너무너무 바쁘신 분들이지만 그들에게 <정조 책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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