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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 - 개혁군주 정조의 78가지 질문
정조 지음, 신창호 옮김 / 판미동 / 2017년 5월
평점 :
시절이 봄날처럼 좋고 풍성해야 백성들이 좋은 날만큼 보답할 수 있고, 정치가 풍요롭고 풍속이 밝아야 사람들이 좋은 시절을 그만큼 즐길 수 있다. 삼월삼질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물가에 오가는 수레 소리가 적고 즐겁게 놀이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삼월삼질의 다른 이름인 '원사'라는 명칭만 있을 뿐, 부정을 물리치거나 생명력을 약동시키는 행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어쩌면 내가 군주로서 계절에 따라 백성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결과는 아닌가! 백성의 심정에 즐거움은 적고 피곤함이 많으며 농사는 흉년이 자주 들고 풍년이 적어 백성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 52
3월, 따스한 봄날이 되었음에도 백성들 사이에 생동감이 없고 경직된 사회에 대해 군주로서 고민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정조의 책문 일부분이다. 책문은 여러 신하들을 상대로 국가의 정책에 관해 질문을 하며 대책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조 책문>은 정조가 쓴 <홍재전서>에 실려 있는 책문을 독해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세종대왕 다음으로 좋아하는 조선의 왕인데도;; 정조의 학문의 깊이를 이해하기엔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일거다;
거미는 그물을 만드는 지혜가 있고 쇠똥구리는 둥근 흙뭉치를 굴리는 지혜가 있으며, 늙은 소나 말은 자신이 다니던 길을 아는 지혜가 있고 제비는 계절에 따라 이동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짐승이나 미물들도 자연적으로 타고난 지혜가 있단 말인가? 지혜를 넓히려면 반드시 먼저 많이 들어야 하고, 지혜를 더하려면 책을 읽고 연구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했다. 넓히고 더하는 것이 많이 듣고 책을 읽고 연구하는 데 있다는 것은 어째서인가? / 61
군주의 책문은 이미 질문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제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며 읽다가도 '어째서인가?' 라고 질문이 날아오면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느라 몇번이고 글 위에서 멈추고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더디게 읽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옳지 못한 일들을 꼬집어내는 내용들이 있어 책이 다소 어려워도 계속 읽게된다. 지난 정부가 얼마나 나태하고 얼빠진 집단이었는지 알게 되면서 말이다.
옛날부터 현명한 군주와 능력 있는 신하가 시대마다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무를 겸하여, 이를 제대로 사용한 군주나 신하는 많지 않았다. 문식과 무략의 길이 물과 불처럼 달라 협동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인재가 옛날 같지 않고 기량이 제한되어, 한쪽에 능숙하면 다른 쪽에 능숙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인가? / 83
박근혜 정부 때는 툭하면 인사가 낙마를 하고 잊을만하면 사고를 쳐대서 우리나라에 인재가 그렇게 없나 싶을 정도였는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 없다 생각했던 인재들이 이제는 차고 넘쳐서 나라에 지도자 한명이 바뀌었다고 이럴 수 있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인재를 적재적소에 맞게 등용하는 것이 얼마나 옳고 중요한 일인지 다짐한다.
주례에 "지방의 연륜 있는 어른과 명문 관리가 현명한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의 명단을 기록하여 중앙에 있는 왕에게 바치면, 왕은 두 번 절하고 받았다."고 했다. 옛날 군주들이 천거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이처럼 오래되었고, 인재를 구하는 방법에서도 이처럼 엄격했다. 인재를 취할 때는 관대하고 모집하는 영역도 넓어, 덕행도 갖추고 정치도 잘하는 능력을 한 사람이 모두 갖추고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 104
정조가 가장 원했던 인재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초야에 묻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인물이라도 진실로 하나의 재주나 솜씨가 있다면 추천서를 기다릴 것도 없이 선발하고 싶다고 한다. <정조 책문> 중 인재 등용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자연스레 문재인 정부의 청문회가 떠오른다. 국민들은 그 정도의 흠을 감안하고 국정농단에 흔들린 나라를 대통령과 함께 이끌어가길 바라는 여론이 더 많음에도 어거지로 끌어내리려는 반대파들을 보면 그저 내편이 아니라서 깍아내리기에 혈안이 되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들은 장관들을 향해 '대면보고가 필요하세요? 홍홍' 웃던 그런 지도자 혹은 공직자를 여전히 바라는 걸까? 지도자 한 사람을 보지 말고 국민을 바라보며 서로 허물없이 질문하고 대책을 세우며 국민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어주었으면, 너무너무 바쁘신 분들이지만 그들에게 <정조 책문>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