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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우리말을 담는 그릇 ㅣ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5
남경완 지음, 정성화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0월
평점 :
한때 하이 서울(Hi Seoul!)이란 문구를 보면서 남편과 집중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 왜 우리글을 놔두고 저렇게 쓰는 거야. 명색이 서울은 우리나라 수도이기도 한데. 굳이 영어로 써야 하나?"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쪽이었고, 남편은 "국제화 시대에 좀이라도 서울에 대해서 더 알리는 것이 필요하지. 무엇인가를 고수한다는 것도 융통성을 발휘해서 하는 거야" 이렇게 반박하는 쪽이었다.
물론, 세계 전역에 알리려면 영어로 쓴 문구 Hi Seoul ! 이 더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그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씁쓸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책이 참 반가웠다. <우리말을 담는 그릇 한글>은 책의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한글에 대해서 잘 나타내준 말이 아닌가! 온고지신 시리즈라는 시리즈명도 그랬다.^^ 옛 것에서 우리는 배울 것을 배우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옛 조상의 슬기를 오늘날에 잘 조화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작업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각설하고, 이 책은 한글에 대해서 쉽고도 자세하게, 아이들 눈높이에서 풀어서 쓴 그림책이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중국 글자인 한자를 빌려다 썼어.
하지만 우리말은 중국말과 달라서 한자로 옮겨 적기가 쉽지 않았어.
가장 답답한 건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없다는 거야
게다가 한자는 낱낱의 글자가 정해진 뜻을 가진 뜻글자라 새로운 뜻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야 해
여기까진 아이가 읽으면서도 조금 피상적인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아이는 확실하게 한글이 왜 필요한 지를 알게 되었다.

장쇠는 머슴 살면서 열심히 모아 땅을 사기로 했는데, 땅 주인은 장쇠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파는 것이 아니라 몇 해 빌려주는 것으로 문서를 꾸며서 주었고, 결국 글을 몰랐던 장쇠는 땅을 빼앗기고 말았다는 것과 나라에서 새로운 법을 만들고 한자로 방을 써서 붙여서 까막눈인 막둥이는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 나중에 그 법을 어겨 곤장을 백대나 맞게 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이외에도 옷감 물들이는 법을 배웠지만 기록해두지 않아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른 간난이의 이야기와 바다 건너 뭍으로 시집와서 부모님께 안부 편지 하나 드릴 수 없었던 꽃네의 이야기도 아이들에게 왜 우리글이 필요한지를 잘 깨닫게 해주었다.

이어서 이어지는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는 화면 가득 열심히 공부하고 한글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왕과 신하들의 마음이 가득 느껴졌다.

"우리나라 말과 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한자를 가지고는 서로 통할 수 없으므로 백성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일이 많다. 나는 그것을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어 백성들이 쉽게 배워 날마다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이 부분만 보았다면 무슨 소리인지 아이들이 잘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앞의 예들을 통해 아이들은 이 부분을 잘 이해했다. 그래, 바로 이것이 애민정신이다. 모름지기 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먼저야 된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더욱 마음에 든 것은 그림으로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잘 보여준 것이다. 우리글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우수한 문자인지 아이들 모두 다 알아야 한다. 그래서 더욱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글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
한때는 우리글의 창제원리로 창살을 보고 만들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진 적도 있다고 한다. 세종 대왕이 새 글자 때문에 고민하던 중 창문에 비친 창살 모양을 보고 "바로 이거야"하면서 만들게 되었다고 말이다.
다행히 1940년에 안동에서 훈민정음이 발견되면서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그 책에서는 한글의 창제 원리를 아주 자세하게 밝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닿소리는 혀나 입술, 이, 목구멍이 소리를 낼 때 어떤 모양인지 생각해서 만든 것이고, 홀소리는 천 지 인을 뜻하는 세 가지 ". ㅡ ㅣ " 이 밑글자들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닿소리 열네 자와 홀소리 열 자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글자 수가 무려 11,172가지나 된다고 한다.
한글은 한 글자 한 글자를 과학적인 틀에 따라 만들었고, 사람과 우주가 어우려져 살아가는 이치까지 담은 멋진 글자라는 것, 이것을 아이들에게 힘주어 이야기해주었다^^
한글이 생겨나자 이제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바람 소리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었고, 슬기로운 사람은 한나절에도 능히 깨칠 수 있게 되었다.
제 이름 석자를 글자로 썼을 때, 그리고 멀리 있는 식구들에게 편지를 썼을 때 그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인선 왕비가 결혼한 딸 숙휘 공주에게 보낸 편지나 빙허각 이씨 부인이 쓴 "규합총서" 그리고 홍길동전 이야기는 다 한글로 쓴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 경험을 담은 문학작품들이 만들어지고, 백성들이 책을 읽으며 웃고 웃을 수 잇게 된 것도 한글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글로 된 홍길동전을 읽어주는 아버지와 그 옆에서 도란도란 재미있게 듣고 있는 식구들의 모습이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일본이 지배하면서 다시 우리의 한글은 고난을 겪었다. 일본이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을 사랑했던 많은 이들로 인해 한글은 꿋꿋이 살아남았고, 해방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 글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낭랑한 목소리로 국어 책을 읽고 있는 교실 창문 너머로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는 세종 대왕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고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하루는 큰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나라 글자가 얼마나 우수한지 모른다고, 세종대왕 상도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말이다. 또 한글이 얼마나 멋진 글자인데, 최고로 과학적인 글자인데 왜 한글을 사용하지 영어를 배워야 하냐고 나름 심각하게 와서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있잖아. 네가 이 다음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자가 되어서 네가 관심있는 분야에 최고가 된다면 네가 쓴 책을 공부하기 위해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려고 할거야. 마치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것들 중에는 영어로 쓰여진 것이 많이 있어서 영어를 배워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지금은 영어도 배워야 하는 거야. 영어도 배우고, 좋은 것들을 잘 배워서 실력을 쌓아야지. 그래야 우리 한글도 더 잘 알릴 수 있는거야 "
우리말을 잘 담은 그릇, 한글.
앞으로 이 그릇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갈 지는 날마다 한글을 읽고 쓰면서 살아가는 우리한테 달려있다는 것을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아이에게 강조해주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사실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