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사진에 박히다 -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
이경민 지음 / 산책자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경성 사진에 박히다>는 이런 부제가 붙어있다.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
그리고 이어서 "안중근 사진에서 에로 사진까지, 사진과 사건의 재구성 "이라는
설명이 표지에서 강조되고 있었다. 

일단 프롤로그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인용해본다. 아마도 이 책을 사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이다.

"근대 신문기사 속에서 발견되는 사진문화는 다종다기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피식민 조선인들에 대한 통제와 관리의 수단으로, 신분 증명의 도구로, 정보 독점의 기술로 사진이 행사되기도 하고, 사진관을 통한 초상 이미지의 대중화가 진전되면서 전통적 재현 방식에서 근대적 재현 방식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각종 사진 관련 이슈와 범죄가 발생했으며, 한인 이민사회에서 비롯된 사진 결혼 제도가 성행하고 근대적 성풍속의 단면을 보여주는 성 에로 사진이 출현하기도 한다. 시간적 거리 때문에 생소하거나 낯선 풍경들도 잇지만 안중근 사진 소지자에 대한 단속 사건은 1980년대 숱한 공안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며, 자살 전날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신문사에 보내고 죽은 한 학생의 사연에는 2007년 세계를 놀라게 한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한인 학생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그 시절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참으로 피상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아니 일제 강점기 시절의 경성의 삶에는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의아하게 다가왔던 것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 , 으레히 식민지 기간동안 그네들이 맞닦뜨렸을 암울하고 비참한 현실만 생각했기 때문일까?

사진에 박힌 경성은 그야말로 모자이크같이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독립 운동가들의 수감 모습이 사진에 아프게 박혀 있다. 표표히 박혀있는 그네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독립 운동의 좌절이 나의 마음도 아프게 한다.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의 수형 기록표에서, 그리고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감금된 한용운의 수형 기록표에서 보여지는 쓸쓸한 옆모습은 그래서 더 아팠다. 마치 마음 속 가득한 울분들이 미처 터트려지지 못하고 작은 사진 속에 박제된 느낌이랄까? 처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이 아픈 사진도 있었지만, 놀랄만한 사진들도 여럿 들어있다.
안창남의 비행기 사진도 그렇지만, 1923년 동아일보에 실린 몽타쥬 사진 <어린이 천 사람, 동아일보 1천 호 기념.도 그렇다. 1000명의 어린이 사진을 모집하여 실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때 가정에서의 사진 촬영이 보편화되었었다는 것인데...  
지금도 새해 벽두에 보여지는 신문의 첫 일면에서의 사진 모자이크, 이것이 1923년에도 있었구나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사진사 이홍경의 이야기도, 그녀가 근화여학교 사진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것도 정말 신기했다. 아직도 여자가 사진 촬영을 하면 생경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때부터 여성 사진사가 있고, 그녀가 또다른 후배들을 길러냈다는 것도 정말 놀랍고, 그때의 경성이나 지금의 서울이나 모습은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오버랩된다고 말한 것처럼, 하와이 사진 신부의 모습도 현재 결혼정보회사같은 곳을 통해 이루어지는 국제 결혼과 다를바가 없고, 사진결혼으로 이한 중매인들의 사기와 횡포가 엄청 났다고 한 것이나  자살 직전 사랑하는 이의 사진을 품고 자살하거나, 혹은 사진을 찍은 후 다음날 자살을 했다는 것 또한 현대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신문에 경쟁적으로 실리던 성 관련 서적과 에로 사진의 광고나 1935년 1월 경기도 안성에 사는 여섯 청년들이 목욕하러 온 여성의 나체를 훔쳐 보고 촬영한 사건들도 생경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경하지 않다. 심지어 그시절에도 동성연애로 인한 자살 사건이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예전에 갖고 있던 어떤 막연한 상상 - 일제 강점기하에 조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 여지없이 부서진 측면도 없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삶이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색채를 띨 수 밖에 없다는 것, 경성 시절의 그네들이나 현대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 삶을 산다는 것에는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책을 읽으며 생각된 것이고, 무엇보다 읽는 내내 전도서의 말씀이 떠오른 것은 역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가 진리라는 것이다.  "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전도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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