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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일기 -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의 ㅣ 풀빛 동화의 아이들 30
김영숙 지음, 장경혜 그림 / 풀빛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얼마전 천안 독립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일제치하의 힘겨운 삶을 살고 있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위주로 보고 왔는데요
그 중에서 일제 탄압속의 우리 민족은 정말 처참하고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어요.
3.1 운동이 발발하고 일본은 그 보복으로 제암리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고
죄없는 민중들을 대학살하는 일을 저질렀죠.
그때 이 사실을 외국에 알린 분이 바로 스코필드 박사님을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기독교 선교자이자, 세브란스 의학 전문대학의 교수로 한국에 왔습니다.
캐나다에서 살고 있던 그는 한국에서 올리버 애비슨의 권유로 세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오게 되었습니다.
안면도 없었던 올리버 애비슨은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이자 의사였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 병원인 제중원의 4대 원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연세 대학교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스코필드는 힘겨운 결심을 하고 한국에 왔지만
당시 초라하고 힘겹게 살고 있는 국민들을 발견했다.
그가 살고 있던 환경과 너무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아
학생들을 가르칠때도 통역사가 동행해야했다.
그때부터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하고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수업에 통역사로 동행한 목원홍 선생님은
한복과 갓을 쓴 선비였는데 유창한 영어가 술술 나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스코필드가 비슷한 발음으로 석호필이 되었다.
돌 석(石), 호랑이 호(虎), 도울 필(弼) 뜻 또한 멋졌다.
1차 세계 대전이 영,미,프랑스 연합군의 승전으로 끝나자 일본도 이들 연합국에 가담했기때문에 승전군에 포함되었다.
이에 일본의 입지도 확고해졌고 한국을 압박하여 식민 정책에 열을 올렸다.
우리 민족에게 일본 탄압은 심해졌고 우리민족은 3.1운동을 준비하고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퍼졌다.
당시 우리 민족은 무장하지 않은 채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만세를 외쳤지만
일본은 강압적으로 막고, 총칼로 막아섰다.
당시 스코필드는 이 순간을 모두 사진으로 담았다.
3.1운동 이후 줄곧 보고 느낀 점을 영어 신문 "서울 프레스"에 투고했다.
스코필드는 언더우드 선교사와 테일러 기자가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일본군이 만세 운동에 참여한 남자들을 제암리 교회에 가두어 총살하고 교회에 불을 질렀다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근처 집들도 모두 태워버렸다고
했다.
진상을 확인하려 도착한 제암리는 정말 참담했었다. 우연히 만난 주민으로 부터 사고 현장 목격담을 들었을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제암리와 수촌리의 일제 만행을 보고서로 남겼다.
<꺼지지 않는 불꽃> 이란 이름으로 ...
그는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도왔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끔찍한 고문을 하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도록 노력했고 일본 총독에게도
자제하라고 알렸다.
그가 아니었으면 당시 우리민족의 힘겨운 삶을 기록으로 남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기는 한국에서의 힘겨운 삶속에서도 우리 민족을 돕는 조력자였던 스코필드 박사.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우리도 독립운동가들의 공로를 잊지말고, 선조들의 의지를 잊지 말도록 해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