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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위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도나 데일 카네기 지음, 김지윤 옮김 / 다산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사전서평단 활동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다산북스에서 출간될 예정인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의 사전 서평단 활동을 통해 이 책을 읽어 보았어요.
마리나 반 주일렌이 짓고 박효은님이 옮긴 책입니다.
천천히 사유할 때 얻는 진정한 통찰의 기쁨!
지적 행복은 오직 생각의 빈틈에서 나온다!
아름다운 문장이지요!
단행본 같은 작고 얇은 책을 손에 드는 감각이 새롭습니다.
근래 들어 이렇게 얇고 가벼운 책을 손에 든 적이 오랜만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창조적 영감이 언제 나오시나요?
영감을 얻기는 하시나요?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 같은 것은 있으세요?
저는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주구장창 일만 할 땐 잘 몰랐는데,
숲으로 돌아가서 산책을 하면 그 언제고 딩동~ 딩동~하면서 이런 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구요.
우울감과 무기력감도 숲을 걸으면 많이 나아지구요.
아마도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또한 한가로이 산책을 하며 공상을 할 때 영감을 얻게 된다는 구절이 책 어딘가에 꼭 나올 것만 같은데요.
어떤 책인지 같이 읽어볼까요?
그 때만 해도 삶의 속도를 늦추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이른바 '느리게 살기'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리에게는 컴퓨터도 없었고 책의 가장 주요한 구절을 발췌해 '책 한 권을 단 10초만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구글의 '파퓰러 패시지' 같은 프로그램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20쪽
학생들은 소설과 시에서 말하는 '한가로운 시간'도, 여름방학 때조차 느껴본 적이 없는 권태의 개념도 알지 못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 수업은 성공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나 미디어, 또는 현대 기술이 앗아가 버린 느림의 미학을 다시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25쪽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이 산만함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산만한 정신에서 날카로운 통찰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산만함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29쪽
한가롭게 사색에 빠지는 습관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독서나 음악 감상처럼 '느긋하게' 즐겨야 하는 예술을 외면한다면, 우리의 육체는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일에만 익숙해질 것이다. 39쪽
그럼에도 산만함이 오히려 우리의 사고력을 향상한다면 어떨까? 어떤 면에서 산만함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해주고, 창의성을 발휘하게 해준다면? 인간은 한 대상에 깊이 몰두하다가도 금세 빠져나오고, 집착하다가도 초연해질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 집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한계와 산만한 덕분에 인간은 종종 뜻밖의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고 창조한다. 45쪽
어쩌면 우리는 행위와 무위, 근면과 휴식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을 소홀히 했는지도 모른다.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게으름을 휴식의 한 방식으로 보았다. 그는 과도한 집중이 유발하는 긴장감을 해소하고, 세상을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잠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으름이나 휴식이 수면만큼이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휴식은 "노동이나 쾌락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약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해주고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게으름은 "만족감을 주기는 하지만 과도한 몰입으로 결국 정신을 지치게 하는 활동"에 제동을 걸어 집중과 휴식의 균형을 맞춰준다. 따라서 산만함은 악덕이 아니라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산만함이 없으면 정신은 결코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없고, "그 가능성과 역량"을 확장할 수도 없다. 55쪽
루소는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몸이 느끼는 감각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려 했다. 따라서 그는 요즘 유행하는 '마음 챙김' 명상을 최초로 실천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밀려왔다 밀려가며 찰랑대는 물소리에, 그 들쑥날쑥한 리듬에 자신을 내맡긴 채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말들을 삼가고 오직 소리와 감각에 몰입한다. 그는 이런 감각에 오롯이 몰두하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기 위해 도시의 복잡한 생활 방식을 단호하게 포기했다. 101쪽
알베르 피에트는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인간의 능력을 숨겨진 장점이라 여겼지만, 하이데거는 이것이 존재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와 '존재 망각'을 대립시켜 인간의 모순적인 특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는 '현존재'가 죽음을 의식하고 자신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며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해도, 일상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존재를 잊고 '존재 망각'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115쪽
흄이 예찬한 즐거운 놀이와 비교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자극은 그다지 해롭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신경과학자들은 그런 자극이 중독적인 온라인 도박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강렬하고 중독적인 자극은 실제로 뇌의 뉴런들이 활성화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지속적인 감각의 자극을 받지 못하면 뇌는 불안정해지고, 웬만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게 된다. 125쪽
무언가를 읽고, 듣고, 바라보면서 산만함과 집중, 몰입과 거리두기라는 상반된 두 방식을 모두 수용할 때,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확장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여겨지는 산만함과 몽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주는 기쁨과 고통을 경험해 보면 어떨까? 결코 늦지 않았다. 140쪽
흥미롭지 않나요?
산만함과 집중력에 관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논하였다는 사실이요.
도대체 인간의 삶이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요?
저는 도대체 삶이 무얼까?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가 너무 너무 빨리 지나가고,
아침에 커피머신으로 캡슐 커피를 내려서 빨리 잠 깨려고 한 잔 마시고,
아이를 초등학교에 걸어서 데려다주고,
세탁기 돌려놓고,
청소기 돌리고,
집에 와서 휴대폰을 계속 쳐다보다,
EBS 입트영 월간지 영어공부를 하고,
세탁기 다 돌아가면 빨래 널어놓고,
잠깐 필라테스 운동 갔다,
집에 와서 점심 먹고,
또 캡슐 커피 내리고,
식재료 뭐있나 살펴보고 없으면 주문하고, 요리해야 하면 요리하고,
아이가 방과후 수업이고 돌봄교실이고 아무데도 가기 싫어해서
학교에서 4교시 하는 날은 12시 40분, 5교시 하는 날은 1시 40분에 맞춰,
또 집에서 걸어서 초등학교까지 가서 아이를 데려오고,
급식시간에 밥만 먹는다는 아이를 위해 또 점심 후 식사 및 간식을 준비해서 주고,
도서관에 수업이 있으면 데려가고,
상담센터 가는 날 또 거기에 데려가고,
라이딩만 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가더라구요.
이렇게 저녁이 오면, 또 저녁준비하고,
아이 샤워 씻기고, 이 닦아주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하고,
설거지도 식후 바로 바로 하고,
하루종일 일만보 넘게 다다다다 걷고 뛰고 움직이는 데도
집안일이란 것이 끝나지 않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뇌가 풀로 가동되다보니 더이상 뇌가 움직이지가 않더라구요.
너무 챙길 것이 많으니 뇌도 과부하가 걸리는 거에요.
쉴 시간이 없었거든요.
아이가 초등학교 가고 나서 더!!!
그러다 보니 삶이 도대체 뭐지?
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구요.
아니 대체 이 삶이 뭐야?
이런 생각 하기 시작할 때, 이 책을 잘 만났어요.
이런 책을 읽으면 역시 내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기에, 정신이 없었구나,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되거든요.
저는 제목부터 사랑스러운 책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를 읽으며,
요즘 한창 궁금해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사유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이 있다면 이 지구상에 왜 인간들을 만들었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요즈음이거든요.
왜 인간은 자기가 생존하기 위해서 나무며, 자연이며, 일단 다 파괴하고 보잖아요.
누군가 그랬어요.
오직 인간만이 살기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라구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짜 그러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피엔스라는 우리 인간 종이 지구상에 가장 많이 번성하게 된 이유는 분명 있지 않을까요?
우리만이 서로 연결될 수 있고, 서로에게 몰입할 수 있고, 배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굳이 표현하자면 그런 '의미가 있는' 종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은 나, 너 이런 구분도 좋지만,
왜인지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이 지구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하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해보거든요.
웃기지요?
사유할 수 있는 인간에게 분명 힘이 있습니다.
잠시 멈추어 사유합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