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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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죽음이 왔을 때 당황하지 않으려면 '죽음'에 대해서 미리 배워두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단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의 비상시국때문도 아니고, 내 나이가 응당 그럼직한 나이가 된 것 같다.

<<영혼의 집 짓기>>란 책은 언뜻 제목만 보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일까 싶다.

저자 데이비드 기펄스는 기자, 작가, 교수로, 현재 애크런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있다.

시인 오은님은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책이라 쓰고 있다.

저자의 어머니의 '첫 페이지가 재미있어야 한단다.'라는 말씀대로,

저자의 책은 처음부터 흥미롭게 서서히 진행된다.

저자와 여든 하나인 저자의 아버지가 내 손으로 직접 '관'을 짜면서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고, 관을 함께 만들던 시간을 추억하는 이야기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기도 전에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휴우- 난 이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다 읽어내려갈 수 있을까?

저자의 추억이 담긴 집과, 그 집 안의 헛간과 같은 공간들, 그 공간들을 사용한 가족들, 그들이 함께 했던 일, 함께 했던 말들을 전해듣는 일이 단지 책을 읽어내려가고 있는 것일 뿐인데도, 생생하게 다가와서 어쩔 줄 몰랐다.

책의 끝부분에는 '장례식에서 재생할 곡 목록 20'과 '상실을 위로하는 곡 목록 20'이 목차만 QR코드로 나오는데,

제목만으로도 슬픈 노래들을 천천히 하나씩 보았다.

먹먹한 한편, 새로운 방식의 감성 공유에 신선함을 느꼈다.

책을 읽을 때 배경음악으로 한 곡씩 틀어서 들어봤는데,

그냥 들었으면 즐거웠을 법한 노래들도 있는데,

이 목록 속의 노래라고 알고 들으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노래만 들으면 경쾌하고 신나보여서(심지어 락 음악까지!) 그곳에선 이 곡이 장례식장에서 틀어도 되는 구나, 하는 곡들도 있었다.

내 손으로 내 관을 짠다는 소재의 평범하고도 독특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그래서 네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삶의 철학 혹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내용도 한가득 담고 있었다.

이를 테면, 'Measure twice, cut once.' 등등.

책 도입부에 나오는 로리 앤더슨의 말이 우리네 인생을 축약해서 보여주는것 같아 마음에 와닿는다.

저자의 아버지는 80대에 접어들었고, 피부암이 있었고, 2년 전 종양 제거수술도 하신 상태다.

저자는 아버지의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끊임없이 뭔가를 하려 드는 강박관념, 새로운 일을 하려 들고, 새로운 일을 하는 중에도 더욱더 새로운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강박관념, 편안함을 불편해하는 성격이 자신도 물려받았다며 이를 '유전병'이라 부른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관'을 짜는 프로젝트를 정말 실행하게 된 저자와 저자의 아버지.

집을 짓고 수리, 개보수까지 척척 하시는 만능 일꾼인 아버지가 이제 '천하무적'이 아닌 시기를 목도하는 저자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관은 인터넷에 널려 있다. 월마트, 코스트코, 아마존, 그리고 오버스톡닷컴 등에서 관을 판매한다. 특화된 관들도 마찬가지다. '위풍당당 관', '운명 관', '백만장자 관', 그리고 '카우보이의 마지막 여행 관' 등이 다 그렇다.

<<영혼의 집 짓기>> 86쪽

사람이 죽어서 들어가는 '관'이 특화된 상품으로 유명 온라인몰에서 팔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살 만한 아이템으로 생각을 해본 적 자체가 없다. 쉽게 살 수도 있는 관을 그것도 아버지와 함께 만드는 작업을 선택한 저자는

사실 저자가 진짜로 원했던 것은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였다고 말한다.

네가 그 일을 잘했다는 말을 듣는 유일한 길은 네가 그 일을 했다는 걸 누구한테서도 듣지 않는 것뿐이다

139쪽

갑자기 '선택'이 '무한한 가능성'을 뜻하지 않게 되었을 때

카타 폴릿의 시 '서른에 들어서며'

내가 삶에 관해 배운 모든 것을 나는 다음과 같은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296쪽

질병으로 가족을 한 명씩 잃어가는 저자를 보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

모두 평안한 곳으로 가셨기를.

그리고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나는 그때 어떡해야 하나 라는 문득 두려운 생각이 엄습했다. 슬펐다.

나는 그 거대한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저자의 아버지의 마지막 시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는 가을날 떡갈나무 같다

떡갈나무 이파리 죽어서 땅에 떨어진다

내 몸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듯이

그러나 떡갈나무 여전히 살아서 봄을 기다린다

내 영혼도 그렇게 살아남아

영원한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2018년 5월

359쪽. 저자 데이비드 기펄스의 아버지의 마지막 시


. 나도 그 책을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나에게 가져다준다. 나도 종종 그렇게 한다. 13

. 엄청난 능력을 지닌 탓에 자식들의 집수리와 주택 개량에까지 관여하는 아버지를 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암담하고 피할 수 없는 두려움에 맞닥뜨리게 된다. 아버지가 없으면 우린 어떡하지?

배관의 유속에 대해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장선의 하중에 대해서, 나무 이름에 대해서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21

. 나는 이렇듯 도구를 통해 부모님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와 나누었던 어떤 대화보다도 어머니의 조그만 십자말풀이 표와 그를 위한 광범위한 참고 서적을 통해 어머니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풍부한 증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 아버지는 내게는 두려움을 모르는 스키 점프 선수였는데, 내가 그걸 안 것은 내 눈으로 트로피를 보았기 때문이다. 37

. 시신은 관에 맞아야 하고, 관은 관실에 맞아야 하고, 관실은 무덤 구멍에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내가 편안히 쉬는 듯한 느낌이 들어야 했다. 그래야 어느 날, 생명을 잃은 나의 몸이 마치 내가 편히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관 속에 놓일 수 있을 테니까. 비록 한 존재가 그 시점에 이르렀을 때는 편안하다는 개념이 부적절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122

. 어머니를 잃게 되자 죽음의 개념이 덜 추상적이고 한결 현실적인 개념이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커져서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욱 절박하고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125

. 나는 내 관을 만드는 것이 죽음의 당혹스러움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인생의 다른 일들에 너무 압도되어서 이 일을 시급하고도 의미심장한 일로 여길 수 없는 우리가 각자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각자 자신의 삶을 바쁘게 꾸려가면서 많은 시간을 따로 보내고 있었다. 245

. 나는 어머니의 죽음, 친구의 죽음, 그리고 내 젊음의 죽음이 내게 뭔가를 가르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걸 기대했다. 나는 세상사를 정리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을 믿는다.

지금 내게 가장 진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죽음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라는 깨달음인 듯 싶다. 슬픔은 부서진 잔해의 혼돈 상태다. 오직 삶만이 패턴을 찾을 수 있고, 그것도 나름대로 좋은 시절에만 가능하다. 그 오랜 상실의 계절로부터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하루하루가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기를, 상실의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이런 바람 때문에 나 자신의 삶도 마구 흘러간다는 사실을 나는 간과했던 것 같다. 나는 결코 상실감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패턴의 일부가 될 뿐이다.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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