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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망아지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비올라 니콜라이 그림, 이민 옮김 / 이유출판 / 2022년 11월
평점 :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을 설립해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에 저항했던 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는 1926년 공산당 당수며 국회의원으로서 무솔리니를 비판하다가 구속된 후
그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썼다.
<여우와 망아지>는 이 책 속에 들어있던 같은 제목의 편지글을 읽고
비올라 니콜라이가 그림을 더해 역은 책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감옥생활을 하는 아버지가
아들과 같은 시기에 경험한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전한다.
사냥 기회를 노리는 여우와 그 여우로부터 어린 망아지를 지키려는 어미 말의 이야기는
가까이에서 아들을 지켜주고 싶은 그람시의 마음같이 느껴졌다.
그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비올라 니콜라이는 아이들 머리 위에
푸른 어미 말을 한 마리씩 그려줌으로써 아이들을 지켜주는 보호자들이 있음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이 책에서는 그 푸른 말이 그람시였겠구나 싶었다.
불행히도 어릴 때 여우에게 공격을 받아 귀와 꼬리가 잘린 망아지를
아이들이 놀릴까 봐 마부 할아버지가 말에게 가짜 귀와 꼬리를 달아준 마음도
아빠 없는 아이라고 놀림 받을까 봐 아들을 걱정하는 그람시의 마음이었겠지.
그리고 맨 처음 여우를 마주쳤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땐
총소리에 번개처럼 덤불 속으로 사라지던 샛노란 여우처럼
자신의 아들 델리오가 위험과 어려움을 지혜롭게 피하길 바라는 마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추억이 담긴 장소에서 함께하진 못하지만
이야기를 떠올리며 아들이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만남을 기대하며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을 그람시의 마음이 느껴져 아련하고 울컥했다.
감옥에서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이랄까?
내가 느낀 이 마음이 작가의 의도와 맞는지는 모르겠다.
온전히 내가 그람시였다면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들을 했을까? 상상하며 읽다 보니
느껴졌던 마음이었으니까 말이다.
100여년 전에 쓰여진 글이 아직도 이런 감동을 준다는 게 놀랍고
이야기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