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얀 연 ㅣ 날개달린 그림책방 47
김민우 지음 / 여유당 / 2022년 1월
평점 :
내 고향은 전북 남원 수지면이다.
남원 읍내에서 몇 시간에 한 번씩 있는 버스를 타고 40분을 들어가야 하는 곳.
우리 마을에 동갑내기 친구들이 15명 정도 되었다.
그래서 우리끼리만 놀아도 못할 게임이 없었기 때문에 사시사철 지천이 다 놀이터였다.
겨울엔 가오리연을 만들어 날렸고, 빈 깡통에 구멍을 뚫어 나뭇가지들을 넣고 불을 붙인 뒤 휘~~휘~~ 돌리면 불꽃 원이 그려졌다. 그러다 머리카락이며 털옷에 불똥이 튀어 태워 먹기 일쑤였다.
갑자기 어린 시절을 소환하게 되는 책을 소개하려 한다.
나의 붉은 날개, 달팽이 등 놀이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그려온 김민우 작가님이 쓰고 그린 [하얀 얀]이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빠질 수 없는 겨울 놀이인 연날리기를 소재로 소중하지만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고 한다.
앞면지에는 연과 얼레를 챙겨 어디론가 나가려는 두 형제가 있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하얀 방패연을 들고 들판으로 나온 형제는 얼레에 실을 감았다 풀다를 반복하며 연을 하늘 높이 띄웠어요. 다른 친구들의 연은 날다가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하얀 연은 오래 오래 하늘 끝까지 날아 올랐다. 점점 바람은 거세지고 얼레에 남아 있는 실이 하나도 없을 때 까지 높이 올라간 연은 급기야 아이들까지 잡아 당긴다. 두 형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책을 읽는 내내 들판의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섬세한 그림들은 나의 고향 마을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정겨웠고, 두 형제의 표정은 살아 있었다. 그림책 한 권으로 오감이 만족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린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내려놓고 포기해야만 할 때가 있다. 마음은 끝까지 붙잡고 싶지만 포기하는 게 순리일 때가 있는 것이다. 한 쪽이 포기해야 둘 모두가 살게 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눈물을 머금고 잘라내고, 끊어내야 하는 아픔이 있다. 그게 꼭 어른이 아니라도 말이다.
책 속에서 두 형제에게 끊어내는 아픔을 결정해야 하는 때가 찾아 온다. 당장은 꼭 쥐고 내놓지 않고 싶은 소중한 것이지만 모두를 위해서 눈물 흘리며 떠나 보내고 나니 오히려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뒷 면지 그림처럼 담담히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다.
수 많은 관계 속에서 헤어짐의 때를 분간하지 못하고 오히려 붙들고 있는 건 없는지...
소중한 것을 놓치기 싫어 다른 면의 위험성을 감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지금 내가 놓아야 할 건 무언지...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