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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빌려줘 ㅣ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109
허정윤 지음, 조원희 그림 / 한솔수북 / 2021년 11월
평점 :
시골 자그마한 집 마당에 꼬마아이들 열댓명이 몰려 왔다.
마치 잔칫집에 놀러 온것처럼 신나게 놀고 있다.
이 기억은 나의 다섯 살 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빠의 장례식이다.
철없는 꼬맹이였던 나는 아빠의 장례식 기간인데도 친구들을 데려와 먹거리를 나눠 먹으며 그저 즐거워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셨을까?
허정윤 작가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아빠를 빌려줘’는 그래서 더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빠를 빌린다고?‘ 무슨일일까? 표지 그림엔 아빠와 함께 행복하게 야구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오누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걸 보니 진짜 아빠를 빌려서 놀다온걸까? 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 없는아이가 되었다.
나에게도 동생에게도 아빠는 없다로 시작되는 이야기.
아빠가 돌아가신 후 인수는 야구를 하지 않았고 여름인데도 아빠가 사준 겨울 바지를 입는다.
“아빠랑 야구하고 싶어”를 돌림노래처럼 외치는 인수.
인수가 느끼는 상실감을 채워주기 위해 누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랫집 초인종을 누른다. 아빠를 빌리기위해... 그렇게 빌려 온 친구 아빠들...미니카 마스터 아빠, 팽이돌리기선수 아빠, 보드게임 챔피언 아빠, 블록 조립 천재 아빠들이 잠자고 있는 인수에게로 왔다. 그 날 오후 친구아빠와 인수, 그리고 누나는 아주 오랜만에 야구를 했다. 타자로 나선 인수가 소리쳤다. 홈~~~런!! 눈부시고 날아오른 야구공과 인수의 힘찬 목소리를 하늘에서 아빠가 지켜보셧을게다.
허정윤 작가님이 강의에서 이 책의 남동생이 책이 나온 후에 보내온 편지를 읽어주셨었는데 들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어 아빠의 빈자리를 아름답게 채워 준 누나에 대한 고마움를 전하며 자신의 인생책이 됐다고 했단다. 상실의 시간을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어 주며 가꾸어 간 이야기가 참 따뜻하고 좋았다. 누군가에게 나를 빌려 줄 상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사람에 대한 정성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