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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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과 지성을 엮은 SF.

#감성과 지성
표제작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먹먹하고 미지의 장소가 눈 앞에 펼쳐지는듯한 느낌이 든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켄 리우의 작품들은 감성적이고 섬세하다. 남성 작가임에도 여성 주인공을 많이 배치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제목도 그렇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생각나지만, 작품을 엮어가는 방식은 테드 창 느낌이 난다. 실제로 켄 리우는 테드 창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한다. (테드 창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고 밝힌 작품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감성적이지만 완전히 판타지는 아닌, 조금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SF라는 생각이 든다.

#켄 리우
그의 글은 과학 기술, 고전 설화, 감성적, 사변적인 느낌이 든다. 프로그래머, 변호사 그리고 번역가 등 다양한 레이어를 가진 저자의 이력이 작품을 다양한 방향으로 구체화 시키는 것 같다. 그리고 일상 속에 스치는 감정을 잘 캐치하고 있어서 읽다보면 빠져드는 소설이다.

#각 단편들 감상
첫번째 단편인 ‘호’는 한 여성의 다사다난한 인생 스토리를 읽을 수 있는데, ‘영원히 산다’는 것과 ‘인생의 의미’ 사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었다. 감성적인 문체로 삶에 대해 논하다보니 감정이입이 되고 울컥하는 부분들도 많았다.
다음 작품인 ‘심신오행’과 ‘매듭묶기’는 최근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데, 둘 다 독특한 소재를 사용해서 나중에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켄 리우의 ‘싱귤래리티 3부작’도 수록되어 있는데, 세 작품들이 완전히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배경적인 측면에서 지구의 과학기술이 싱귤래리티를 맞이하는 시작점, 과도기, 그리고 그 후 익숙해진 세상을 그리고 있으며 각각 다른 인물들로 쓴 소설이었다. 여기서 마지막, 3번째 작품이 바로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이다. 인물간에 연결은 없지만 시대 배경과 분위기 이해를 위해 순서대로 읽는 걸 추천한다. (다른 단편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켄 리우는 사람의 감정을 잘 서술하는 장점이 있어서 아직도 이 3부작의 인물들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달을 향하여’는 켄 리우의 변호사 이력이 십분 발휘 된 작품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들의 현실을 다룬 내용인데, 마지막에 결론은 내지 못하고 끝난 장면이 오히려 그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는 켄 리우의 미국판 <종이 동물원>에는 함께 수록이 되었지만 우리나라판에는 쪽 수가 많아 빠졌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1800년 대,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인들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아이다호 광산촌에 정착했던 중국인들에 대한 역사가 간략히 적혀 있는데 너무 슬프고 찹찹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작품엔 과학적인 내용은 없다. 켄 리우가 처음 저자 머리말에서 자신은 ‘SF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작품이 그런 작품이었다. 자신이 가진 소재로 이야기를 잘 직조해내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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