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 한 사람의 이야기.


#자신의 과거를 찾아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읽을 책들이 많아서 미루다가 우연히 줄거리를 듣곤 관심이 커져 버렸다. 기억을 상실한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니 주인공에겐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찾을 수 있을까? 찾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 겉으로는 추리물이지만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내용이라 박진감보다는 슬픔이 스며 나는 작품이었다.




#기억상실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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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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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은 과거가 없다. 과거가 없다는 건 현재의 자신을 규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건 과거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내 이름, 내 나이, 나의 성격,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래서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듯이 과거의 바탕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에겐 자신을 표현할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현재 자신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도의 상태는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최고의 문장이며 환상적이다. 곱씹을수록 기억을 상실한 한 인간의 내면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한낱 실루엣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상실자의 탄생이다.


#인생은 깜박이는 점
최근에 ‘시간‘에 관한 책에서 과거란 (그리고 시간이란) 기억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영역, 그러니깐 외부 세상에 실재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뇌 속에 존재하는 영역이라는 내용을 읽었다. 그러고 보니 과거는 기억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기억할 수 없다면 우리의 과거도 사라진다.
나는 내 과거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부분도 꽤 많을 것이다. 과거를 잊어버린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찾아가며 A에게도 대입해보고 B에게도 대입해보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찾아 나간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에드워드 카’의 말처럼 개인의 일생도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일종의 대화이지 않을까. 과거가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거라면 더더욱 그럴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의 역사는 현재의 나에 의해 끊임없이 재단되고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인식하는 우리에겐 인생은 선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현재만 실재하는 거라면 우리의 존재는 선이 아닌 점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각자가 이 세상에 굵은 선을 남기길 원하지만, 결국 우리는 점인 걸까. 이진순 작가님의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에서의 표현처럼 우리는 제자리에서 한순간 반짝이는 점인 걸까. 저 우주 속 별과 우리 몸의 성분이 같다는데 그 삶의 형태마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상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단순히 (개인의) 기억상실 말고도 시대의 상실도 함께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도 길게 하고 싶지만 이만 줄이려고 한다.
소설에서 2차세계대전은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면서 그 단서들은 뒷부분에 나온다. 나는 시대 상실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불과 할머니, 할아버지 때 이야기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안고 산다는 건 어떠한 고통일지 짐작하기 힘들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의 나도 사라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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