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진이)
죽기 전 삼 일 동안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지만, 삶 자체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슬프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 주인공 진이. 힘들어하는 진이를 보며 죽음에 관한 고민들이 피어올랐다.

김진영 선생님의 <아침의 피아노>. 항암 치료를 거부하시고 임종에 이르는 동안의 기록들. 항상 자기 자신을 다독이던 그 문장들이 생각난다. 결국 내 삶의 마지막 결정은 죽음 순간에 일어날 것이다. 모든 걸 받아들이는 그 결정이 어떤 느낌일지 아직 알 순 없다.


#삶 (민주)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말에서 삶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유예’라는 말이 긍정적이진 않지만, 죽음이 미뤄진 것이므로 지금의 삶은 선물이라고 볼 수 있다. 명언 중에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타자화시키지 않더라도 ‘삶이 유예된 죽음’이라면 그 자체로 나에게 일어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말에는 주체적인 삶의 의지가 담겨 있다. 작가님은 여러 인터뷰에서 그러한 의견을 말씀하신다.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라고 한다. 이 작품엔 그런 작가님의 마음이 담긴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어떤 ‘열심히’를 말하는지는 조금 헷갈린다. 주인공 진이의 어머니(작가님 어머니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로 대변되는 ‘열심히’ 사는 삶과 민주의 ‘열심히’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전자는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며 거기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면, 후자는 자신의 역량껏 사는 삶이다. 나는 후자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공존 (지니)
인간은 ‘상상’하게 되면서 우월한 종족이 되었다. 이 소설 또한 상상의 산물이고 인간 삶에 놓인 모든 것이 상상의 결과다. 하지만 우월해진다는 것은 반대로 다른 생명들을 하찮게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구 환경은 하루하루 나빠지고 많은 생명이 멸종에 이르고 있다. 미국 듀크대 생물학자 스튜어트 핌 교수가 이끈 국제 연구팀에 의하면 100만 종 가운데 매년 100종이 멸종된다는 연구가 있다. 물론 생명체는 생겨나고 멸종하는 수순을 거친다. 그런데 그 수치가 인간이 출현하기 전보다 1,000배가 높아진 수치라고 한다. 지구의 생명들과 공생, 공존하는 건 인간 의지에 달린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멸종위기종인 보노보를 등장시킨 것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침팬지가 아닌 보노보를 선택하신 이유가 따로 있지만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인간의 상상력이 공생을 위한 노력에 더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은 이런 자연과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까지 녹여 내려다보니 주제가 흐려진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은 따로 소설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죽음이라는 주제와 어우러지지 않았던 점이 아쉽다.


#정유정 소설
정유정 작가님의 글은 정말 가독성이 뛰어나다. <진이,지니>는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가는 책이었다. 동물과의 공감이나 영혼의 개념에 대해 특별한 거부감이 없다면 내용 면에서도 어렵지 않은 소설인 것 같다. ‘다정한 그녀는 손가락 총을 세워...’ 또는 ‘모차르트의 판단으로...’ 등의 캐릭터 묘사는 읽는 맛과 재미를 더해 주고 빠른 이해를 돕는데 작가님의 특기이기도 하다. 3일이라는 짧은 시간과 넓지 않은 공간을 적절히 활보하고 다니는 구조가 적당한 긴장감과 스케일을 느끼게 해준다. 정유정 작가님 소설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 추천해도 부담 없을 것 같다.


#출판사 홍보
<진이,지니>는 삶과 죽음, 자유의지와 공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아주 냉철하고 어려운 이야기며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므로 무겁고 진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홍보하는 문구를 보면 ‘따스하고 다정하고 뭉클하다고’ 하는데, 과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을지 의심스럽다. 홍보전략이라는 건 알지만 자칫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나마 정유정 작가님의 글이 빠르게 읽히는 글이라 다행이다. 물론 홍보전략에 이런 것도 고려했겠지만, 과대 포장된 정보로 홍보한 느낌이다.


#물성
책은 내용이 중요하지만, 이 책의 판형과 표지는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가로 폭이 좀 넓은 책이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 불편했다. 표지는 뭔가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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