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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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수명 계획 발표와 가족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안락사 이야기



#수명 계획 발표
안락사가 합법화된 가까운 미래. 외할머니가 자신이 ‘죽을 날’을 가족들에게 통보하면서 이를 둘러싼 의견 충돌과 갈등이 주요 내용이다. 과거에 있었던 할머니와 자녀들 사이의 앙금이나, 손녀인 화자 ‘지혜’가 새롭게 알게 되는 할머니의 모습이 소소하게 전개되는 소설이다. 소소한 전개라고 말했지만 ‘인간 안락사’라는 주제는 가볍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 개개인의 삶 속에서 안락사가 이렇게 전개되겠다-라고 생각되는 현실적인 내용이다.



#존엄사와 안락사
우리나라는 작년부터 존엄사 즉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 중이라고 한다. 연명치료 중 더 이상 회복 불능한 상태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른 죽음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존엄사와 ‘안락사’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안락사는 그 사람이 죽음의 목전에 있지 않더라도 약물의 힘으로 원하는 날에 죽는 것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엔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괴롭지 않은 마지막
최근에 배우 김수미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맡으신 배역, 치매 노인 역할을 VCR로 다시 보시며 자신은 “저렇게 치매에 걸린 마지막을 살기 싫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마지막이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롭히는 죽음일까 봐 두렵다는 말씀이셨다.



#나의 죽음
나는 어떨까? 20대까지는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최근에 조금씩 생기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 정말 ‘끝’이라는 두려움. 그것이 해가 갈수록 조금조금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할 수도 없기에 어차피 죽는다면 깔끔하고 편안한 상태로 죽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안락>에서 할머니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가족의 죽음
하지만 반대로 내 죽음이 아닌 가족 중에 누군가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과연 쉽게 인정할 수 있을까? 이 또한 어려운 문제다. <안락>에서 지혜의 어머니가(할머니의 딸) 바로 그런 입장이다. 지혜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본인만 생각한 이기적인 결정’이라고 화를 낸다. ‘죽을 날’이 다가와도 엄마(할머니)를 만나러 가지도 않고 혼자서 눈물만 흘리며 보내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이 시점에서 화자를 손녀로 설정한 것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녀인 지혜는 이런 관계에서 조금 뒤에 물러나 있다. 가족이지만 그래도 엄마보단 감정에 덜 휩쓸릴 수 있는 위치에서 이 상황들을 보고 생각할 여유를 가진다. 할머니의 죽음을 딸의 시점과 손녀의 시점을 통해 보여주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죽음의 두 얼굴
지혜네 가족이 겪은 일은 아직 현실에선 없는 일이다. ‘가까운 미래’라고 해서 SF소설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에세이적인 느낌이 강했다. 가족들 간의 이해와 갈등은 현재에도 있을 법한 어쩌면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수명 계획’을 밝힌 할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딸인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되어서 아팠다. 우리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소설 <안락>에서는 죽음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의 죽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두 죽음 모두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나의 죽음’은 앞당김으로써 내가 좀 더 죽음에서 (심적으로) 자유로워질 수도 있는 반면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끝까지 내 곁에 남아 함께 할 것을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 같다. 이 부분이 참 이중적이면서도 내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듯하다.
결국 죽음은 관계의 상실이 가장 큰 아픔인 걸까. 소설 속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죽음 뒤에 자신의 ‘수명 계획’을 발표한다. 자녀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다. 하나밖에 없는 엄마이기에. 자신의 평생을 함께한 사람이기에 충격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겐 할아버지와의 시간이 더 긴 시간이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거기에까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아름다운 마지막으로 기억되기 위해 또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관리하고 결정하기 위하여. ‘안락한 죽음’은 더는 허무하거나 불필요한 행위가 아닌 것 같다. 과학, 의학의 발전으로 영원한 삶을 꿈꾸는 현대에 안락사의 이야기가 통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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