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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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하류에 도달한 어느 철학자의 기록


#김진영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그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철학아카데미 대표를 지냈다. ‘시민적 비판정신의 부재가 이 시대의 모든 부당한 권력들을 횡행케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믿으’시며 일반인들이 철학에 좀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고 한다. 최근에 ‘겨울서점’의 추천 영상을 접하곤 읽어보고 싶던 차에 감사하게도 선물을 받아 읽게 되었다. 저자는 병마가 깊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철학자, 아버지 그리고 환자로서 마지막까지 소중하게 생각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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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죽음
나는 죽음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아직까진 경험이 없는 ‘죽음‘보다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어느 날 나의 사망 선고일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 인간들이 자신의 사망일을 알게 되는 사건이 터진다. 세상은 혼란에 빠질까? 어느 정도는 그랬다. 원망하고 질투하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욕망을 표출했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자 남은 동안 욕심만 부리는 건 의미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아침의 피아노>에서도 저자는 사랑, 기쁨, 평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무엇이 저자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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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해충이 없다. 문을 열고 자는데도 모기에게 시달리지 않는다. 아침 물가에 앉으니 그 이유를 알겠다. 그건 여기가 쉼 없이 물이 흘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 -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정신과 육체
읽다가 차원에 대해 생각했다. (차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니다) 우리가 사는 현재, 그리고 공간에 대한 생각들. 만약 우리가 시공간 4차원을 다 볼 수 있다면 죽음은 어떻게 보일까. 컨택트의 원작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주인공 ‘나’는 외계인 헵타포드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이 사실은 하나로 존재함을 깨닫는다. 그 후 ‘나’는 다가올 미래를 초연히 받아들인다. 죽음은 육체의 죽음을 뜻하는 것일까? 혹시 이 육체를 벗고 나가면 다른 차원이 열리는 건 아닐까?

#적요
˝적요한 상태˝. 책의 끝에서 두 번째의 글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남기셨다고 한다. 적요한 상태란 어떤 상태일까. 언어와 실제에 장벽이 있어 우리는 그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저자만의 파롤의 언어로서 적요는 어떤 의미였을까. 책을 편집한 사람들의 생각대로 편안한 상태였을까? (이 책의 맨 마지막을 ‘내 마음은 편안하다‘로 편집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저자가 느꼈을 ‘죽음 앞에선 단독자‘로서의 ‘적요‘. 언젠가 나도 맞이하게 될 그 적요를 더듬어본다.


#투병기
글은 암 선고를 받은 2017년 7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이어진다. 짧고 담담한 글을 핸드폰 메모장에다 기록하셨다고 한다. 7월, 78편으로 시작한 글은 다음 달 36편... 5편... 12편... 7편으로 뚝뚝 떨어진다. 어떤 현상은 그 속에 담긴 알맹이가 아니라 형태로 파악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달의 글들은 아주 짧다. 짧고 공백이 많다. 글이 없는 공백들이 아프게 느껴진다.
타인의 경험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도 그 사람의 처지를 알아서가 아니라 내가 겪은 경험 중에 비슷한 경험을 골라서 판단해 내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사람은 외로운 존재다. 그런데 이 책이 주는 물성이, 하얗게 비어있는 공백들이, 그 경험을 대신 전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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