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몰락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리사 두건 지음, 한우리.홍보람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자본과 평등
더북소사이어티 서점을 가기 전에 미리 찜했던 책이다. 조금은 즉흥적이었다. 제목부터 설명까지 관심을 가지던 내용이었다. 읽고나서는 내가 생각하던 이상의 내용들이 많아서 놀랍기도 했다.









#고양을 위한 독서
여기에 나오는 주장들이 다 바르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중요한 건 나의 시각을 좀 더 깨우쳐 주었다는 점이다. 가끔 고양을 위한 독서가 필요할 때도 있다. 미국의 역사나 일련의 사건들을 모르는 나로서는 정말 읽는 자체가 고행이었다. 하지만 <평등의 몰락>이나 <타인의 고통> 같은 책들은 다음에 내가 좀 더 자라면 다시 읽어 봐야 할 책이라 여기게 된다. 그때가 되면 나는 또 다른 걸 찾고 깨달을 것이라 희망해본다.











#전문지식
/지구적 문제와 국내적 문제 양자에서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가장 성공적인 책략은 경제정책을 주로 중립적이며 기술적인 전문지식의 문제로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문지식은 정치 및 문화와는 분리된 것, 특히 정치적 책임이나 문화적 비평의 대상으로는 부적절한 것으로 제시된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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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금수저와 흙수저는 출발선부터가 다르다‘는 말을 한다. 혹자는 인생이 블루마블 게임처럼 ‘자식‘의 삶은 다시 리셋될 수만 있다면 마음의 짐을 크게 덜 수 있겠다며 호소 한다. 이 말인즉슨, 경제적 상황이 우리 인생에서 그만큼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인구 감소의 근본적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내 가난함을 자식에게까지 되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 그 마음들이 출산을 거부하거나, 자식을 학원 지옥으로 몰아넣거나, 또는 어릴 때부터 연예기획사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느낀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는 자칫 개인의 자유를 더욱 보장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 게임의 현 상황을 뒤집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와 더불어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문제‘를 하나의 ‘전문지식‘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그 전문지식은 정치와도 관계없으며 특히 도덕적인 문제나 사회문화적인 파장과도 독립되고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굳혀나가는 중이다. 100미터 달리기에서 누구는 1미터 뒤에서 누구는 10미터 뒤에서 뛰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이 게임을 공정하다고 말할까. 최근 베스트셀러 출판시장은 ‘버리고‘, ‘비우는‘ 것의 향연이다. 물건도 버리고 마음도 비우라 말한다. 이미 결정 나버린 인생에서 평등함은 없다.














#공과 사
/뉴팔츠의 ‘반란 행동‘ 컨퍼런스에 대한 잘 조율된 공격은 문화전쟁 기간 동안에 발전된 지침으로부터 직접 조직된 것이다. 성적 변태의 축제를 위해 세금을 빨아먹는 지적으로 파산한 여성학 프로그램이라는 이미지는 주립대학 체계의 평판을 떨어뜨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조직하기 위한 목적에 안성맞춤이었다. (...) 뉴욕시립대학에 대한 인종적으로 코드화된 공격과 결합해서, 이 전략은 [공공]기금을 급속도로 감소시키고 뉴욕의 공공 고등교육에 대한 주정부 중앙에서의 통제를 정당화했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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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공과 사‘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은 의외로 개인적인 부분을 넘어 전 사회적 또는 전 지구적인 영역으로 확대해서 봐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 개인에서 업무와 생활은 ‘나‘라는 시간 속에서 함께 흐르기에 가끔 그 구분이 힘들다. 이와 동일하게 사내 사고의 개인 책임 논쟁, 공공 정책의 실패와 주민의 피해 등 그 범위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성 문제(이성애규범성, 호모포비아 등)는 공적인 것인가 사적인 것인가?
작가는 뉴욕주립대학 뉴팔츠 캠퍼스의 여성학 프로그램 <반란 행동: 여성의 성적 자유라는 도전> 사례를 통해서 신자유주의가 ‘정체성 정치‘와 ‘문화정치‘를 이용하여 어떻게 공공기관을 파괴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두 가지의 핵심 지점이 있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성 관련 문제를 공과 사에서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지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논쟁을 통해서 공립대학이 왜 공격받게 되는지에 대한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사적인 문제를 공공의 컨퍼런스로 끌어온 공립대학의 자질을 문제 삼고,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낮추고자 한 것이다. (물론 이건 해석의 차이겠지만 나도 여기에 한 표이다)












#배척과 연합
신자유주의가 왜 문제인가-라고 묻는다면 단순히 빈부의 격차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 게임은 경제 정책이 정상작동하는 것을 막고 자신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이용된다. 그것은 결코 성차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 평등을 부르짖는 현 상황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뒤에 나오는 <3장 평등한 퀴어라는 신자유주의의 신화>에서는 군대 내 성평등은 강조하면서 전쟁을 이르켜 사람을 죽이는 문제에 대해선 간과하는 (미군의) 행태를 꼬집는다. 신자유주의는 배척뿐만 아니라 연합도 하면서 이익이 되는 쪽의 지지만을 이끌어 나간다. 사실상 ‘경제‘와 ‘정치‘는 톱니바퀴와 같지만 그걸 망각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게 한다. 나는 이런 점들이 참 우려스럽다고 생각한다.








/지구적 문제와 국내적 문제 양자에서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가장 성공적인 책략은 경제정책을 주로 중립적이며 기술적인 전문지식의 문제로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문지식은 정치 및 문화와는 분리된 것, 특히 정치적 책임이나 문화적 비평의 대상으로는 부적절한 것으로 제시된다./ (P25)

/뉴팔츠의 ‘반란 행동‘ 컨퍼런스에 대한 잘 조율된 공격은 문화전쟁 기간 동안에 발전된 지침으로부터 직접 조직된 것이다. 성적 변태의 축제를 위해 세금을 빨아먹는 지적으로 파산한 여성학 프로그램이라는 이미지는 주립대학 체계의 평판을 떨어뜨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조직하기 위한 목적에 안성맞춤이었다. (...) 뉴욕시립대학에 대한 인종적으로 코드화된 공격과 결합해서, 이 전략은 [공공]기금을 급속도로 감소시키고 뉴욕의 공공 고등교육에 대한 주정부 중앙에서의 통제를 정당화했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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