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 요리후지 분페이의 체험적 직업론
요리후지 분페이.기무라 슌스케 지음, 서하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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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후지 분페이
광고 아트 디렉터, 일러스트레이터, 북 디자이너, 작가... 이 책은 디자인과 창작 분야를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요리후지 분페이‘의 자서전이다. 책을 구매할 당시엔 대략 ‘어느 디자이너의 삶을 기록한 책‘으로만 알았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인지 몰랐다.
<디앤디파트먼트> 대표인 ‘나가오카 겐메이‘는 서문에서 그를 ˝디자이너라고 단정지어 부르기에는 너무 아깝고 또 그런 틀에 끼워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를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이너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존경한다˝고 남겼다.



#디자인 직업론
디자인은 어떤 업무를 하는 직업일까? 학생 때 나는 ‘디자인‘을 독자생존이 가능한 분야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실무를 해나가면서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디자인 디렉터‘가 대상의 프로필과 스토리를 모른다면 절대 좋은 결과물을 뽑을 수 없었다. 그런 점을 느끼고 난 후로는 반대로 디자이너가 대상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까지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리후지 분페이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이는 조금 과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극과 극에서만 생각했다.)
분페이도 대상의 프로필과 스토리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혼자서 기를 쓰고 노력하는 것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연대를 더 중요하게 챙겨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을 읽는내내 느꼈다. 내가 디자인을 ‘일‘로써 판단했다면 분페이는 협동하는 공동체간의 ‘흐름‘으로 본 것이다. 아마 그 점이 그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좋았던 부분
분페이도 한국의 아트 디렉터들처럼 입시미술을 통해 미대에 진학하고 디자인과를 거쳐 광고회사에 취직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적어놓은 고민들이 나에겐 익숙하고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챕터 <지속의 기술>이 가장 좋았다. 분페이가 지금까지 디자이너(창작자)로 살아오면서 몸소 체험하고 깨달은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일과 조직, 디자인의 질서, 아웃풋에 대한 고민, 아이디어와 아이디어관, 창의성과 광기, 현대사회 진단‘까지 그가 쌓은 내공과 노하우를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단점
단점을 꼽자면 디자인 또는 창작업무에 관심이나 정보가 없는 독자가 읽기엔 너무 재미없는 책이다.
‘일기‘와 ‘인터뷰‘ 그 중간 어디쯤의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랩 걸>같은 서사성도 없고,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같은 작품성도 없기 때문이다.


P84 <양극에서 균형 잡기>

디자인을 둘러싼 스토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치밀하게 파고들던 과거의 디자인으로 되돌아가면 해결된다는 뜻이 아니다. (...) 디자인에는 세상사 어느 한 요소를 확장해 레버리지(지렛대)로 평가하는 디자인과 복잡한 세상사를 되도록 그대로 전하도록 이퀄리티(복잡한 잡음까지 무시하지 않고 되도록 현실과 동일시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는 뜻)를 허용하는 디자인이 있다.
이때 양자를 대립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문제다. 때로는 전혀 다른 종류의 회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방향의 독창성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과거와는 다른 가치관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가치관이 상식이 되면 더는 독창적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차이가 없으면 독창성도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방향의 디자인을 좋다고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결국 세상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차이가 없다고 독창성도 없느냐고 물으면 또 그렇지도 않다. 이를테면 내가 나로 존재하는 이유는 차이와는 다른 독창성이다. 독창성에는 ‘차이‘와 ‘실존‘이라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이 둘을 양자택일하지 않고 하나로 볼 수는 없을까? 차이에 주목해 그 질이 향상되는 방법을 ‘레버리지‘, 실존에 주목해 그 질을 높여가는 방법을 ‘이퀄리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디자인에도 지구의 북극과 남극처럼 ‘레버리지 극‘과 ‘이퀄리티 극‘이 있으며 자기장이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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