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 알면 벌고 모르면 당하는 '재벌법'의 10가지 비밀
천준범 지음 / 부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요 포인트는?

요즘처럼 주식투자에 관심을 갖는 시기라면 최소한 눈에 들어온 회사가 우량한지, 아니면 곧 쓰러져갈지에 대해서는 가능한 자세하게 살표보고 싶기도 할 것이다. 충분한 사전 조사와 끈기있는 관심, 장시간의 고민이 아니라면 주식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은만큼 회사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지켜봐야 할 수 있을텐데, 그런 면에서, 만약 뉴스에서 <전환사채>, <주식 헐값 매입>, <자기자본 잠식>, <우회 상장>, <지주회사>라는 용어들이 나올 때 그걸 옆 사람에게 짧고 명확학 설명할 수 없다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듯 하다. 물론 <지주회사>는 회사들의 주성에서 맨 위에 있는 회사라는 짧고 간단명료한 의미도 썩 좋지만, ‘사업을 하지 않고 다른 회사의 주식만 갖고 있거나, 재산의 50% 이상이 다른 회사의 주식으로 되어 있고, 다른 회사를 갖고 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기까지 하면 당연히 왜 지주회사가 존재하는가가 궁금해지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는 그 흐름을 간단하고 늘어지지 않게 설명해주는 것이 장점이다.


아주 기초적인 의미부터 왜 그런 것들이 기업들의 돈벌이에 이용되고 어쩧게 문제가 되는지까지 순차적으로 보여주는데, 저자는 ‘우리가 말하는 주주株主가 결과적으로 회사의 주인株主은 아니며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할 각오로 돈을 지불한 사람’이라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만 봐도 이 책이 단순히 지식만을 머릿속에 저장하는게 목적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주식이라는 거래하가 쉽지만 악용되기도 좋은 기업에 투자한 만큼 받는 증서가 투명하게 거래되도록 원칙을 세운 것이 ‘상장’이며 그 ‘상장’이 되어있어야 언제든 돈으로 바꿀 수 있고 가치가 생기는 거라는 첫걸음부터 배당금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용되는지와 모든 경영자가 주식이 오르기만 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부분은 100%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다.

-------------------------------------------------------------------

자식에게 주식을 팔든 공짜로 주든 모두 세금을 내야 하는데, 파는 사람이 내야 하는 양도 소득세나 사는 사람이 내야 하는 취득세, 그리고 공짜로 줄 때 받는 사람이 내야 하는 증여세 모두 주식 가격이 낮을수록 적어진다.

(중략)

그리고 경우에 따라 배당을 조절하면 주가를 움직일 수 있다. 즉 돈이 필요할 때는 주주에게 배당을 많이 한다. 그러면 보통 주가는 오르기 때문에 회장은 배당금도 받고 주식을 담보로 돈을 더 많이 빌릴 수 있다. 반대로 당장 돈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배당을 적게 한다. 그래서 주가가 서서히 내려가면, 저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준비를 할 수 있다. 참 쉽고도 편리하다. 

P. 184 ~ 185

-------------------------------------------------------------------

단, 위의 내용을 잘 이해하려면 회사 합병비율과 지분율에 대한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단지 ‘누가 주식 몇%를 갖고 있다’는 것 만으로는 산술적으로 비율이 달라지는 걸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기 떄문이다. 그래야 주식 변화가 영향이 있는지 이해가 갈텐데 이 부분도 앞에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앞서 지주회사와 주식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그 다음에는 계열사에 대한 이야기가 저절로 나오게 되니 기초가 좀 없다고 생각한다면 손 쉽게 접하는 자습서로도 좋지 않을까 한다. 

대기업이 법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위법이 아닌 편법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자의 주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몇 가지 현상들을 알려주므로 필요한 만큼만 이해하면 될 듯 하다. 책 중에서 단지 경영, 경제, 회계, 재무의 관점 뿐 아니라 운영의 측면에서도 저자가 밝히고자 했던 대기업의 돈 버는 방법, 그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회사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짧고 쉽게 설명해주어서 그걸 몰랐던 사람들에겐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서 좋았다. 

-------------------------------------------------------------------

수많은 회장님 회사가 생겨났다. 회사에 꼭 필요한 사업부들이 별도 회사로 분리되었다. 21세기 들어 모든 회사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일하게 되면서 반드시 두어야 했던 전산실, 이 IT기능이 가장 분리하기 쉬웠다. 왠만한 재벌 대기업 그룹 내에 곧 전산 시스템 지원 회사가 하나씩 생겼다. 흔히들 SI System Integration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전산 시스템을 설치하고 운영과 유지를 담당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분리되기 전 원래 사업부가 있었던 회사에서 그대로 근무했다.

(중략)

서버와 통신 장비와 같이 눈에 보이는 ‘장비’는 가격이 얼마인지 유츄하기 쉬웠지만, 그 안에 넣는 ‘소프트웨어’와 이것을 유지보수하는 ‘서비스’의 가격은 누구도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P. 74 ~ 75

-------------------------------------------------------------------

이와 함께 MRO 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이라는 업무를 하는 회사가 생겨난 것도 비슷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데, 이 역시 최근 대기업 IT자회사들이 상장하는 trend와 맞물려 함께 알아둬야 할 것이며, 이런 관점으로 보는 모 피자회사의 치즈 공급회사로 말이 많았던 ‘치즈세’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자회사라는 것이 그냥 생겨나는 게 절대 아니라는 사소한 사실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인상깊은 부분은?

저자는 너무 어려운 용어 설명보다 재원과 영미, 우현이라는 세 친구가 각가 투자와 운영을 위해 ‘치킨코리아’라는 치킨가게를 차리는 것과 비교해 많은 설명을 해주는 점이 회사명을 직접 거론하는 것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주식을 적당히 할 줄 알거나, 주식을 앞으로 해볼 생각이라면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정확히는 경제뉴스를 보면서 알듯모를듯 한 용어들을 굳이 여기저기 찾아보지 않아도 될만큼 잘 정리한 것 같다. 물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찾아보는 방법도 좋지만, 경제학 서적을 뒤적이며 그 안에서 ‘주식’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이 책도 꽤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내용 중 예로 든 상표권이나 저작원 같은 지적 재산권 Intellectual Property은 점점 더 그 필요성이 커져가고 있기도 하다. 시작은 안보이는 가치를 통해 돈을 더 벌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 기업의 명운을 가를 정도로 필요한 부분이 되었으니 이와 같은 흐름이 시대에 따하 달라진다는 건 함께 받아들여야 하겠다.


​대기업, 재벌하면 ‘회장’이라는 직함이 떠오르는데 이 회장이라는 직함은 회사의 사장단들이 모이는 ‘협의회’의 장에서 나오며 이 협의회는 계열사 사장들의 모임, 즉 사장단을 말하는 것인만큼 이런 개념들과 함께 계열사라는 것에 대해서도 저자는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접하는 비정상적인 힘의 균형에 대해 알려준다. 즉, 회사법에는 ‘회장’이라는 직함이 없다는 것에서부터 경영상 의사 결정 권한이 없다는 사실부터 우리나라의 재벌을 이해하기 위해 이 회장의 지분관계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까지 얘기하는 건 직접적으로 이런 대기업의 회장 중심 구도를 필요악으로 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

실제로 모든 회장이 소속 회사의 과반수 대주주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회장은 계열회사 협의회에서 사장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 역할을 넘어, 사장에 대한 직접적인 인사권을 행사해 왔다. 회장은 말 한마디로 계열회사의 사장들을 선입하고 해임할 수 있었다. 또 그 힘을 이용해 사장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리고ㅗ, 그 계열회사의 사장이 아닌데도 해당 회사의 핵심적인 의사 결정을 했다.

P. 45

-------------------------------------------------------------------

이에 대한 적정한 감시기구 또는 외부 감사 시스템을 만든다면 어쩌면 지금처럼 ‘재벌’이 욕을 먹는 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저자가 쓴 내용을 조금 빌려보자면, 이런 지주회사는 미국에서 본사가 어디인지에 따라, 경영권을 잘 움직여 시장 독점을 위해서 주식을 어느 한 사람에게 맡기는 ‘신탁 Trust’이 허용되었으나 그 마저도 불편해 지주회사가 도입되어 시장을 이끌었으나, 너무나 커지는 기업이 독점으로 가면서 강제로 법원에 의해 분리되기까지 했다는 건 이런 법을 어떻게 쓰는지도 기업이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가는 지점도 있고, 반대되는 입장으로 생각되는 지점도 있다. 공감가는 지점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잘 지적해준 것 같아 좋고, 반대 생각이 든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책이 잘못 쓰여졌다고 생각하기엔 사례가 나쁘지 않으니 책을 읽으면서도 개인의 생각을 대입시켜 볼 필요는 있을 듯 하다. 


덧붙인다면?

1. 비슷한 제목으로 ‘법은 어떻게 독재의 도구가 되었나’가 있는데, 저자도 출판사도 주요 대상도 완전 다른 책이다.


2. 주식투자를 위한 자습서보다는 미처 다 알지 못하고 투자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 전달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결론은 ‘재벌에 속지 마라’가 가장 적절한 듯 하다.


3. 경제용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주식투자를 위해 무엇부터 공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추천, 기업의 재무, 회계, IR, 총무부서 경력자들에겐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부키'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혐오자살
조영주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주요 포인트는?

최근에 이런 장르의 책을 찾지 않았던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간만에 추리 소설의 감각과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한동안 <추리 소설=일본 작가>라는 좁은 관점 때문이기도 했는데, 늦은 감이 있지만 ‘도진기’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국내 작가들이 쓴 소설들에 관심이 가긴 했다. 하지만 다른 책들에 밀려 많은 소설을 읽지는 못한 얼마동안 이었는데, 그러고보면 이번 책은 그런 다시 국내 작가의 작품에 대해 환기시키는 지점이 된 것 같다.


줄거리만 보면 단순한 ‘범인’의 알리바이 만들기라고 넘겨 짚었는데, 의외로 여라기지 사건이 얽히고 설켜있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 전체적으로 단순한 느낌이긴 한데, 단순한 느낌이라고 해서 어렵지 않다거나 복잡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사실 이 책의 서술방식이 절대 쉬운 내용은 아니다. 인물들의 과거 회상 또는 어느 시점에 대한 복기는 많이 쓰이는 방법이지만 이 책에서는 너무 많이, 너무 불규칙하게 쓰인다. 그래서 정확한 시점을 인지하지 않고 1/3쯤 읽다보면 ‘엥? 이게 뭔 소리지?’ 또는 ‘어? 이 계절에 이건 무슨?’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이런 부분들이 조금 헷갈릴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하고 읽어야겠다.


내용으로 보면, 어머니와 겸상을 하지 않을 정도로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준혁’은 자존감이 매우 강한 사람인데, 그것이 내적인 것 보다는 외적인 것에 집중하며 현재의 생활 반경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명지’와 연애기간이 오래되면서 점점 그 틈이 벌어지는 이유도 결국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면서 이미 더 멀어지게 되는게 사건의 발단이 되는 것이다. 이미 그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알게 된 어떤 사실 때문에 ‘명지’와 동반자살까지 생각하고, 그래서 명지는 그를 밀어버리는 상황까지 이어져 그를 살해했다고 믿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오래 한 시간이었음에도 더 이상 가까워지긴 어려웠던 사이였다.

​-------------------------------------------------------------------

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안그래도 한가한 일상이 더 지루해질 것 같았다. 이 기회에 엄마에게 용돈이나 받아 유럽이나 한 번 더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핸드폰으로 여행 상품을 검색하다가 꺠달았다. 한가할 때 시간을 보낼 상대로 14년을 사귄 남자 친구 준혁을 전혀 떠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P. 31

​-------------------------------------------------------------------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형태가 된 건 단지 오래된 연인들의 싫증이 아니라는 게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혐오’가 기점이 된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준혁은 명품옷과 외제차, 강남 오피스텔이라는 것으로 잘 포장된 삶을 살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그것이 본인의 본성 때문이란 것은 알지 못한다. 겉으로 꾸며야 보이는 자신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조차 그에게 일어난 일들에 동정심을 갖게 해주지 않는다. 후반부 어떤 일을 위해 모든 걸 탈탈 털어 명품을 사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같은 아파트 거주민들이 자신(정확히는 자신이 들고 있는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는 건 안쓰럽기까지 하다.


살인 사건 자체를 따라가다보면 사실 ‘혐오’가 어떤 것인지 먼저 떠오르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준혁이 동네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이상한 느낌과 위화감이 어디서 오는지를 한참동안 알아채지 못하는게 소소한 트릭이라면 트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여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이해가 안가느 사람들의 왕래는 분위기를 매우 의심스럽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뒷부분에서 밝혀지면 그 상황들이 허무하긴 하다. 단지, 앞서 말한 ‘혐오’가 직접 드러나지 않다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차별’로 받아들였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은 흡사 사이코가 등장하는 심리소설같은 분위기도 든다. 



인상깊은 부분은?

준혁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건 몇 차례 보여주는데, 심지어 떡을 살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그런데 명지에 대해서는 준혁처럼 극적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예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그건 ‘혐오’와는 좀 다른 지점에서 겪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한다. 다만, 준혁의 죽음 이후 명지가 위험에 닥치는게 바로 감정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소설속에서 몇가지 우연이 겹치기도 하고, 반경이 좁으므로 인물과 인물이 어떤 지점에서 부딪히는 건 이해가 가지만, 굳이 명지가 위험에 빠지는 건 좀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왜’인지는 알겠지만 ‘굳이?’라는 모르겠다는 얘기다. 


앞서 ‘혐오’라는 주제가 바로 이야기에 스며들지 않지만 중반 이후에는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그 ‘혐오’를 확실히 표현해준다. 

​-------------------------------------------------------------------

명지는 몇 가지 사실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건의 자살을 한 고인들은 난민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했다. 그보다는 외국인이라는 표현이 옳지 않을까. 또, 자살을 했다는 것 외에 확실한 공통점도 없는데 연쇄살인이라는 깃으로 말하다니 성급해 보였다.

낚시글.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올려놓은 글로 보였다. 그런데 이런 글에 좋아요가 만 개가 넘게 눌리고, 덧글은 천개가 넘게 달리다니 불쾌했다.

P. 230

​-------------------------------------------------------------------

이걸 어떤 시점에 어떤 인물과 matching시키는지는 얘기할 수 없지만 사람과 사람사이 ‘혐오’가 차별을 넘어서는 것을 뒷부분에서야 알게 되지만 명지의 시선에서 느끼는 준혁은 그저 강남에서 이름없는 동네로 이사가서 겪는 낯설움이라고만 받아들이게 된다.


헛점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인물들의 성격이 너무 많이 변한다. 명지의 경우 소심해서 자기 주장이 강하지도 않은데 그와중에 마음의 결정은 너무 냉정하게 빨리하는게 좀 어색했고, 준혁은 세상만사 귀찮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 주변 사람에게 자기 상황도 정확히 얘기 못하고 친구 운운하는 건 너무 소심하게 변한 느낌이다. 앞서 쌓아왔던 성격이 짧은 순간에 이런변화가 오니 뒤에 이어지는 사건으로 가기 위한 준비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인간이 무너지는 순간을 너무 빨리 만들어가는 것 같은?


앞서 말했지만 이 소설은 서술 방식도, 구성도 한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시점이 왔다갔다 하면서 혼란을 주는데, 차라리 순차적인 진행이 아니라면, 과거 시점부터 현재까지를 역행으로 보여주는 ‘리 차일드’의 <61시간>(2012)애서와 같이 구성하는게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와 더불어 등장(주요)인물에 동명이인이 있기까지 하다. 사실 추리소설에서 동명이인으로 만든 트릭은 시작과 함께 알려줘야 한다고 어디서 본 듯 한데, 트릭 수준은 아니지만 그 인물이 여러차례 언급되고 어느 순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다만 일본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동명이인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예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게만 생각했던 시점이 뒤에서 해결되는 부분에서는 의외로 시원하기까지 한데, 이런 상황을 그대로 화면으로 옮긴다면 꽤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예로 똑같은 대화가 앞과 뒤 두 번 등장하기도 하는데, 물론 두 사람 각자의 시점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이었는지, 이후 어떤 일이 있는지를 알게 되면 앞서 답답했던 부분이 한번에 해소된다. 다만 두 사람이 만나자고 한 이유는 완전히 상반되는데 그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조영주 작가는 이전 <좀비썰록>(2019)이라는 단편집의 한 꼭지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이번 소설의 등장인물인 ‘김나영 형사’가 작가의 다른 소설(<붉은 소파(2016)>, <반전이 없다(2019)>에도 나온다는 걸 알고 그 책들도 궁금해졌다. 사실 이번 소설에서 김나영 형사는 눈부신 추리를 한다던가 범인을 세상끝까지 추적하는 매서운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전혀 주요인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다른 소설속에서 뭔가 보여준다면-최소한 작가가 계속 등장시킬 만큼 매력이 있다면-다른 작품속에서의 활약을 기대해보면 좋겠다. 꼭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 외에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한다. 처음에 이야기 전개를 잘 이해하기만 하면 늘어지지 않는 깔끔한 추리소설을 읽을 수 있을텐데, 작가의 다음 소설이 나온다면 꼭 찾아서 읽어볼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잠깐 얘기했지만 드라마로 만들면 아주 재미있는 내용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인물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할지 애매하긴 하다.


2. 큰 역할을 못했다고 밝혔지만, 김나영 형사의 추적이 빛을 발하는 마지막 부분은 이 소설과 이어지는 속편을 기대하고 싶게 만든다. 


3. 살인범보다는 사건의 숨겨진 비밀과 과정 자체를 찾아가는 추리물을 원한다면 추천, 퍼즐을 끼워 맞추듯 복선을 찾아 범인을 추적해가는 탐정  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싶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캐비넷'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범죄 심리의 재구성 - 연쇄살인사건 프로파일러가 들려주는
고준채 지음 / 다른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요 포인트는?

책을 읽기 전 예상했던 것과 실제 내용이 일치하는 책을 간만에 읽은 것 같다. 제목과 저자의 약력에서 보듯이 살인을 포함한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 유형과 실제 사례들, 그런 범죄를 찾아내고 수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범죄자들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는지를 ‘프로파일러’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용이다. 먼저 흥미를 끈 건 한번쯤 들어본, 그리고 영화에서 다뤄졌던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짧은 소개인데, 어떻게 그런 범죄자들이 있었을까 싶지만 실제 있었고 세상 어디에선가는 일어나는 사건이었으므로 그냥 지나칠만한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이런 사례들은 TV나 인터넷 같은 매체에서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으므로 따로 소개는 필요없을 듯 하고, 이런 범죄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범죄 심리학에 관한 내용이 오히려 저자가 더 말하고 싶은 부분일 것이다. 심리학자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비롯한 성격이론, 사회학적이론, 사회인지이론 등을 설명하는데 다행히 길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거기에 저자는 그런 점에서 범행을 무작위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살거나 행동하는 곳 근처라는 걸 다시 일꺠워준다. 범죄 자체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는만큼 자신도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더욱 긴장하고 잡힐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먼 곳보다 가까운 곳을 택할 가능성이 많다는 ‘킴 로스모’의 지리적 프로파일링 같은 이론도 소개하며,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내용이 전부 이론적인 것만은 아니다. 단순하지만 범죄 이후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하는데, 요즘 같은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 시대에 ‘목격자’의 무게감을 두면서도 기억에 오류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특히 그 기억에 간섭과 왜곡이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제 3자의 증언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이보다 좀 더 흥미있었던 건 ‘판사’에 관한 것인데, 드라마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

사회학자인 리처드 오프셰(Richard Ofshe)는 판사가 잘못된 판결에 대해 “최악의 직업적 과실이다. 이건 마치 의사가 멀쩡한 팔을 자른 것과 같다”라고 지적했다. 판사들의 오류는 자기 정당화(Self-justification)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이미 범인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면 다른 증거들을 무시하고 잘못된 결정에 매달리는 편향에 빠지게 되며, 나중에 판단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또한 커진다. 

(중략)

이런 이유로 미국 법원에서는 목격자 증언의 신빙성 판단을 전문가에게 의뢰하지 않아서 잘못 판결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P. 121

​-------------------------------------------------------------------

앞으로 죄에 대한 판결을 AI가 대신할거라는 예상도 쏟아지는 시대, ‘판사’라는 직책이 가진 무게감이 절대 줄어든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찰이 범인을 잡고, 검찰이 기소를 해서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줘야할 때 법을 기준으로 그것을 결정하는 일인만큼 심사숙고하고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게 되는만큼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가장 편향적이지 않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만큼 저자의 생각에 공감했다. 


저자는 선정적이고 짧은 시간에 눈길을 끄는 범죄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범죄가 발생하는 순간 범죄 이후를 다루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의사소통이 사실(fact)와 감정(emotion) 두 가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남자와 여자부터가 이에 대해 느끼는 바가 다른만큼 프로파일러가 대상자의 행동 통제와 이해에 얼만큼의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과 상대적으로 자아의 저항이자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에서 오는 <방어기제>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도 범죄자의 어떤 부분을 공략하고 어떤 부분을 이용해야 범죄가 어느 순간이 원인이 되었는지 찾아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범죄를 바라볼 때 범죄가 벌어진 ‘이유’를 한번쯤 떠올려보자는 것일 기인한다. 역시나 검색에서 찾아내는 것보다 더 쉽게 설명하므로 용어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범죄자에 대해서는 강한 형벌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데, 범죄자들에게 무거운 형량을 주고 세금으로 그들을 꾸준히 관리하는게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을 함께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염려의 다른 면에는 그들이 사회에 복귀했을 때를 고려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 역시 여전히 많은 고민이 필요하며 그래서 얼만큼의 처벌이 필요한지가 중요하겠다.

​-------------------------------------------------------------------

응보적 정의(retributed justice)는 처벌이 범죄에 따른 대가라는 상식적인 개념에서 출발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다. 가해자 처벌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피해자는 소외되고, 법과 원칙만 따지기 때문에 정작 피해자의 요구에는 무관심하다.

(중략)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는 응보적 정의의 한계를 극복 또는 보완하고자 등장했다. 회복적 정의란 ‘피해자와 가해자 또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갈등, 분쟁 해결 과정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피해자 또는 지역사회의 평온을 추구하는 이념 혹은 실천방식’이다.

P. 207

​-------------------------------------------------------------------

기존에 가해자의 처벌에 치우쳐 있었다면 최근에는 피해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는 분위기가 되어가는 듯 하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 역시 어떤 형태의 가해자 처벌에 대해 정답을 딱 잘라 얘기할 수 없겠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피해자(또는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어, 이 책이 단지 ‘범죄’를 흥미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인상깊은 부분은?

프로파일러가 쓴 책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시체 안치소? 아니면 살인사건 피해자의 시체가 남긴 증거? 아니다. 그건 법의학자가 쓴 책이 보여줄 내용이겠지. 그렇다면 아마도 영화에서 본 FBI 수사관 정도가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저자 역시 이 부분을 몇 차례 짚어주고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1991, 조나단 드미 감독) 이후 프로파일러 지원자가 급증했다는 사실과 그와 함께 FBI행동과학연구소에서 수백건의 수사를 직접 지휘하고 성공시키지만 실패한 사례는 알려지지 않는만큼 정확히 알 수 없어 객관적이지 않다는 어느 학자의 말을 인용한 건 의외이기도 하다.


엄연히 프로파일러와는 카테고리가 다르겠지만 CSI에 대해서 언급한 것도 재미있다. 우선 미국드라마 <CSI>시리즈가 인기가 높았던 만큼 그 직업에 지원하는 사람도 많지만, 실험실에만 있어야 하는 과학자들이 현장을 누비거나, 증거 채증만 해야 하는 과학수사요원들이 범인을 검거하는 사실과 다른 점을 콕 찝어주기도하고, 그 드라마 때문에 미국 내 대학에 관련 학과 지원자가 폭증하면서 그 교육과정이 없던 대학들에 신규 과정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건 얼마나 그 직업이 멋지게 그려졌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전문과정이 없다는 점에서는 더 발전시키고 체계화해야 한다는 건 단지 미국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겠다.


그렇다면 저자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프로파일러’에 대해서는 어떨까? 요소요소에 설명한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부 옮길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사건을 대하는 모든 위치에서 겪을 만한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로부터 얻은 정보로 범인(또는 용의자)을 특정하는 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정도 특정하느냐에 따라 수사의 방향도, 사건의 포인트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문제는 프로파일링 분석 결과를 수사본부 회의에 제시했을 때 발생했다. 수사본부에 편성된 형사들은 우리의 분석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수사 경험도 없는 젊은 프로파일러의 말을 듣고 연쇄 실종 사건으로 수사한다면 화성이라는 지역적 특성 탓에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수사력을 낭비한다는 이유였다.

P. 75

​-------------------------------------------------------------------

위에서 보듯히 일선 형사들의 수사력도 무시할 수 없고, 단순한 data를 기반으로 한 의견을 무조건 따르기는 더욱 어렵기도 할 것이다. 다만 젊고 유능한 프로파일러도 많이 탄생하겠지만 역시 경험과 시간이 주는 판단을 바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프로파일러가 알아가야 할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게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었을 것 같다.


프로파일러를 다룬다면 함께 궁금해할만한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합리적인 판단과 대인관계 능려, 실행능력을 담당하는 전두피질과 회백질의 기능 장애가 원인이라는 의견을 필두로 여러가지를 설명하는데, 워낙 많이 다뤄진 주제인 듯 해 새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범죄와 심리에 대한 이론들을 간단하게 설명한 건 도움이 되고, 저자가 하려는 이야기 역시 정확한 것은 좋았지만, 프로파일러에 대한 깊은 이야기가 많지 않은 것과 아쉬웠고, 실제 사건을 해결해가는 게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건 좀 아쉬웠고 향후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 또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인다면?

1. 생각보다 책이 얇다. 얇은만큼 정리가 잘 되었지만 좀 더 깊어져도 될만한 지점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선 느낌이 드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다. 


2. 전 세계 연쇄살인마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데, 대부분 미디어(TV, YouTube)에서 다뤘던 거라 새롭지는 않았지만, 기존에 관심이 크게 없었다면 놀랄만한 이야기들이다. 


3. 프로파일링과 범죄, 사건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유기적인 업무들에 대해 관심있다면 추천, 직업으로써 프로파일러가 탄생하는 과정과 일 자체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다른'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BI 사람예측 심리학 - FBI 행동분석 전문가가 알려 주는 사람을 읽는 기술
로빈 드리크.캐머런 스타우스 지음, 고영훈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요 포인트는?

처음 책을 읽기 전에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심리학’ 또는 ‘거짓말을 알아내는 정확한 판단법’ 같은 내용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런 detail한 것들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오히려 2장에 얘기한 것 처럼 모든 생활속에서 ‘행동분석가처럼 행동하라’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한 듯 하다. 


저자는 FBI로써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고, 그 안에서 느꼈던 ‘사람에 대한 분석’을 하나하나 설명한 것인데, 이는 <행동 예측 평가 시스템>이라는 기준으로 아래 5가지 상황/관계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설명한다.

1. 동맹, 2. 관계 지속성, 3. 신뢰성, 4. 행동패턴, 5. 언어, 6. 정서적 안정감

물론 일시적인 만남에서 오는 단편적인 관계에 대한 것도 포함되겠지만 보다 장기적인 목표와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더 다양하게 하는 지속하는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내용이라고 보면 좀 더 빠른 이해가 될 것 같다.


저자가 현업에서 겪은 일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너무나도 다양한 사례들과 그에 따른 저자의 분석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역시 ‘경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신뢰성(chapter 5. 세번째 신호 : 신뢰성)과 진실(chapter 6. 네번째 신호 : 행동패턴)을 설명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단지 ‘믿음’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신뢰’라는 제한된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저자는 이를 역량과 성실함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즉, 약점에도 솔직하다거나 비판을 받아들이고, 핑계를 대지 않는다는 것도 있겠지만, 꼭 일을 완수하며 시간이 돈이라는 걸 인식하고 명확하고 간결한 말투와, 시계를 보는 것보다는 그 시간동안 생산적이라는 관점으로 ‘신뢰’를 정의하는 것인데, 물론 그와 반대인 부정적인 부분도 있으니 비교하며 참고하면 즣을 듯 하다. 그리고, 사람을 예측할 수 있는 인성에 대해서도 인간이 생각하는 가치, 즉, 내면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특성도 언급하는데, 이것이 이익추구나 정서적인 변화까지 가져온다는 것인데, 다만 이런 흐름에서도 조심해야 하는 게 있다는걸 잊지 않는다.

-------------------------------------------------------------------

이러한 인성 요소들이 귀하고 소중함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인성 요소들은 신뢰성을 평가할 때 고려하는 일차적이고 때로는 유일한 요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 종교의 믿음에 기초해서 상대를 신뢰함으로써 신뢰하는 과정을 단순화시킨다. 특히 종교적 믿음을 공유하는 경우에 그렇게 하는데, 이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단지 특정 종교를 믿는다소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인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 216

-------------------------------------------------------------------

우리도 살면서 많은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저자가 지적한 것은 ‘종교’라는 배경으로 그 사람에 대한 것을 판단하지 말라는 강한 경고이며 오히려 그 사람이 보여주는 행동과 반복되는 모습으로만 상대방을 판단하라고 역설하는데, ‘후광효과’를 조심해야한다는 것과 함께 이 부분이 오히려 종교적인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한다. 


물론 이런 경계에 대한 것만 책 속에 가득한 건 아니다. 읽으면서 우리가 바로 적응하는 건 어렵겠지만 잠시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려본다든지, 친한 사람에게 들었던 누군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부분도 있는데, 특히 ‘언어’ chapter가 그러했다. 첫인상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아마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을 판단하는게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말이든 문자든 사람과의 대화도중 상대방을 깊이 파악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한찬 지난 후 예전의 대화를 곱씹어 보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다양한 의미를 뒤늦게 알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대화 도중에는 이미 나의 뇌도 대화를 위해 충분히 회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 속에서 신뢰할 만한 단서를 찾아내는 걸 강조한다. 당연히 주의깊게 듣고, 비언어적 표현에 주목하며 오해를 피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신뢰가 가지 않을법한 단서가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뢰를 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뭔가 속 빈 강정 같다는 느낌을 받은게 기억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과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볼 때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믿지 않는다면 의심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그런 과정을 간단 시스템화를 통해 얼마든지 판단 가능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 기준을 긍정적인 기준으로 바라볼지, 부정적인 기준으로 바라볼지에 따라 과정은 다르겠지만 결과는 같을 것이며, 이를 건강하고 이성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을 주는거라 생각한다. 이 충분한 정보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는 현실적으로 부족할 수 있지만 한번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판단을 해보지 않았다면, 이 책에서 알려주는 구분 방법들이 살아가면서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닌 조금 더 오래가는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인상깊은 부분은?

심리를 꿰뚫는 이론을 딱딱하게 나열하는게 아니라 저자가 겪은 실제 경험과 주변인들이 등장하는 소설같은 느낌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본부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 서로에게 불쾌하지 않게 하려 노력하며, 그래서 영화와 달리 쓸데없는 소문이 없다는 부분은 가벼운 농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온 손님에 대한 부분도 의외로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는데 첩보소설 같은 긴박한 장면전환이나 사건이 있는 건 아니어도 ‘미국의 FBI’가 만나는 ‘러시아 사람’이라는 구도가 뭔가 벌어질 거라는 예상이 들기도 할 정도이다. 다만 너무 큰 기대를 할 것 같아 얘기하자면 두 사람이 서로 총구를 겨누거나 고문을 하며 비밀을 알아내는 영화같은 스토리는 없다.

-------------------------------------------------------------------

그들은 백러시아인White Russians으로도 알려진 모스크바 지역 상류층의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여기서 ‘백’은 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국가들의 소수민족 러시아인들을 말한다. 소수민족 러시아인들은 ‘계급이 없는’소비에트 연방 시대에도 오랫동안 2등 시민에 머물렀다. 소련 연방에서 소수 민족 출신의 러시아인은 KGB나 KGB의 후신인 SVR(러시아 해외정보국) 요원이 된 적이 없다. 또한 이 시기에 여성 SVR 요원도 없었는데 믿기 힘들겠지만 여성들이 요원직을 수행 할만한 지적 능력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고 간주됐기 때문이었다.

P. 92 

-------------------------------------------------------------------

이런 긴 설명과 함께 등장하는 러시아인과는 어떤 이야기가 일어나는 것일까? 잠시 떠오르는 영화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2014, 캐네스 브래너 감독) 정도의 스토리가 기대된다면, 아쉽겠지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FBI로써 겪은 여러가지 다른 에프소드들도 나름 쉽게 읽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될 수 있겠다. 저자가 9.11을 겪은 것부터 테러리스트와의 대화를 보여주는 것도 실제라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앞 부분에 직업적인 부분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게 더 와닿는다. 수사관으로써 사실에 기반한 분명한 결론에 도달해야 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저자가 더 얘기하고 싶었던 건 직업을 막론하고 느끼는 두려움, 착각,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상상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이런 무의미한 순간을 ‘감정적 납치’라고 부르며, 결국 그런 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바보나 패배자가 된다는 생각이 더 깊은 이성적 판단을 요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관도 이럴텐데 과연 일반인들이 그런 찰나의 순간에 잘 판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일텐데, 그런 순간의 판단이 더 큰 실수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는 안타까움도 든다. 


이 책을 쓴 저자보다 유명한 FBI 출신 작가들이 많다. 그 중에는 이미 읽어본 책을 쓴 작가도 있는데, 이 책의 저자도 직업적으로 만난 사람에게서 그들과 비교를 당하는 부분도 책에 있다.

-------------------------------------------------------------------

“조 내버로와 크리스 보스 아시죠?”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FBI에서 일한 적이 있고, 지금 그들은 컨설턴트와 작가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고 있었다. “두 분이 저희 회사에 오신 적이 있어요.” 그러고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한 말은 없었다. 서로가 아는 사람들을 언급함으로써 내가 편한 느낌이 들게 하려 했거나, 아니면 거꾸로 내게 맡기려는 일을 할 만한 다른 경쟁자를 언급해서 나를 불편하게 하려는가 싶었다.

P. 252

-------------------------------------------------------------------

위에서 얘기한 조 내버로와 크리스 보스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책의 작가인데, 그들이 쓴 책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어느 책이 더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두 FBI 출신들이 경험을 살려 썼다는 것과 협상이나 심리에 대해 썼다는 게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이 작가들의 책을 읽어봤다면 비교하는 재미 아직 읽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고 비슷한 책들을 더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신뢰성>과 <언어> 부분에 중첩되는 의미들이 있는만큼 조금 더 다양한 관점으로 사례를 추가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덧붙인다면?

1. 각 chapter가 끝날 때마다 앞서 설명한 내용들에서 포인트를 요약해주는데 아주 편리하고 이해하기 편하다.


2. 저자의 사례들이 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지극히 드라마틱하지 않아서인 것 같은데 읽는 사람에 따라 이런게 밋밋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 하다.


3. 행동분석에 대한 다양한 관점, 신뢰와 불신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싶다면 추천, 책 한권으로 사람에 대한 심리를 알아채고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기를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Korea.com'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요 포인트는?

처음에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사이코패스의 살인극이나 스릴러일거라는 선입견으로 시작했는데, 중반까지 그 기대에 부응하다 중반 이후부터는 미스터리물로 급변한다. 즉, 앞 부분은 ‘‘조’라는 환자가 무슨 일을 일으키는건가?’가 궁금하다면 뒷 부분은 ‘’조’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시선이 이렇게 변하는 이유는주변의 여러가지 환경(의사나 staff를 포함해)으로 서서히 ‘조’라는 환자로 시선을 좁혀 들어가는데 이전에 ‘조’를 담당했던 의사가 쓴 기록을 토대로 ‘조’가 어떤 환자들과 방을 같이 쓰고 그 환자들이 어떤 ‘심각한 상황’이 되어 그 병원을 떠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부터 어렸던 ‘조’가 어떻게 변화하며 성장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저 상상으로만 떠올리게 할 뿐이다. 하지만 ‘환자’라고만 여기기에 ‘조’가 갑자기 보여주는 모습은 그가 그저 갇혀있을법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 

그가 말하길, 어릴 적 악몽을 꾸면 속삭이는 괴물에게 밤새 쫓겨 다니다가 결국 잡혀 먹히곤 했는데, 조의 목소리가 그 괴물의 목소리와 비슷했다는거야. 기이한 일 아닌가. 그렇게 어린아이가 마흔 살 조무사가 어렸을 적 꾸던 꿈을 어찌 알겠나? 그래서 녹음 테이프를 유심히 들어보았지.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게 프랭크의 착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네. 녹음기 마이크의 볼륨이 최고로 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녹음되지 않았거든.

P. 53

------------------------------------------------------------------- 

이런 대화들은 흔히 제 3자는 모르는 공포의 한 순간이라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 영화 <식스 센스>(1999,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서 보았듯이 만약 제 3자가 아니라면 과연 그 공백에 무엇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학습효과로 따라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조’에 대해서 더 궁금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이런 누군가의 마음 속 공포를 지적하는 부분은 주요 인물인 원장 ‘로즈’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하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조’의 모습을 대하는 ‘파커’로부터도 그 정체를 한번에 알아내는 건 쉽지 않다. 당연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시점에서 ‘조’를 선입견 외에 확실한 근거로 정체를 밝혀내기는 어렵지만 앞 부분에서의 어떤 공포감에 이은 너무나도 멀쩡한 ‘조’와의 대화에서는 흡사 영화 <양들의 침묵>(1991, 조나단 드미 감독)의 ‘한니발 렉터’같은 천재 범죄자인가라는 넘겨짚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물론 그게 아니라는 단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런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건 ‘파커’의 의식이 조금 변하는 부분이다.

-------------------------------------------------------------------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법을 어기지 않고 뭔가를 하는 건 전혀 가망이 없어 보였다. 만약 이 일을 경찰이나 의료위원회 같은 공권력에 고발한다면, 정신병자의 말만 믿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미친놈 소리를 듣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나조차도 조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30여 년간 ‘불치병’이라 여겨졌던 정신 질환이 치밀한 공동 범죄의 산물이며, 끔찍한 진료 기록 역시 전부 떠도는 소문에 불과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 힘들었으니까. 

P. 147

------------------------------------------------------------------- 

이렇듯 ‘조’와의 대화 후 무언가 지금의 정신병원에서의 ‘감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우려와 ‘조’에 대한 선입견이 반대급부를 만든거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런 지점까지 오면 ‘파커’에 대한 정체성이 애매해지기는 한다. 이미 처음부터 열악하기 그지 없는 병원을 보며 ‘이 병원이야말로 내 지식과 보살핌이 진정으로 절실한 곳’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해버리는 것과 ‘겸손을 모르고 젊고 야심 찬 의사였기에 이 수수께끼같은 환자에게 매료’되었다고 할만큼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는 묘사가 중반까지 이르면서 너무 쉽게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건 탐정이나 강박을 가진 수사관들에서 나오는 모습이지, 환자와의 대화 몇번에 이미 그를 제외한 다른 병원의 의사들마저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의심하는 건 캐릭터가 너무 급변하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른 캐릭터, 즉 ‘파커’가 왜 ‘조’를 치료하고 싶어하는지, 의사로써 파악한게 뭔지, ‘파커’가 ‘조’를 치료하려는 의지가 충분한지, 그리고 본인이 알고 있는게 과연 얼마나 되는 건지를 서서히 파악하고 그걸 인지시키는 ‘로즈’가 캐릭터 변화없이 전형적인 ‘더 깊이있는 의문을 만드는’ 역할에 출실한 것 같다. 단, 뒷 부분에 가서 보여주는 단 한 순간의 연약함이 그간 쌓아온 캐릭터를 무너뜨리는 것 같아 역시 아쉽긴 하다.


인상깊은 부분은?

사실 이런 분위기의 소설은 ‘스티븐 킹’의 다양한 작품속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새롭다고 보긴 어렵고, 뒤에 보여주는 반전도 사람에 따라 굉장히 충격적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기도 하고,(어느 정도다! 전부가 아니라) 중간중간 나오는 단서들이 나중에 문득 떠오르긴 한다. ‘파커’가 찾아보는 병원 기록, 그리고 환자와의 면담이 담긴 테잎들에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려가는 부분까지 다다르면 그 다음부터는 ‘파커’ 역시 혼란을 겪는다는 걸 알게 된다. 

------------------------------------------------------------------- 

실패에 따른 엄청난 압박감이 한꺼번에 나를 짓눌렀다. 안그래도 이미 불법 행위를 저지른다는 불안감에 극도로흥분한 상태였다. 그 때, 뭔가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조의 방에서 누군가 웃고 있었다. 도는 아니었고, 그럴 리도 없었다. 대신 음산하고 축축한 목소리로 킥킥대는 웃음이 꼭 썩어가는 목구멍에서 나는 것 같았다. 

(중략)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행크와 브루스는 아무렇지 않는 듯 보였다. 두 사람이 웃음소리를 들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고 솔직히 나도 물어볼 경황이 없었다.

P. 156

------------------------------------------------------------------- 

앞서 이 소설이 ‘미스터리’로 변하는 것 같다는 건 이런 묘사 뿐만이 아니다. ‘조’의 집을 찾아가서 그의 어머니와 만나 알게되는 것들(집 안에 남편이 직접 만들었다는 동물의 머리 모양)이나 ‘조’가 벌레를 그렇게 무서워 했음에도 자신이 생각한 공포의 대상을 아무렇지 않게 곤충과 비교해 묘사했다는 건 ‘조’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복선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파커’를 의사보다는 탐정이나 수사관같다고 한건 순전히 이런 단서에 단서를 찾아내고 추적하는 건 역시 ‘의사의 사명감’보다는 ‘추적’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후반부 ‘조’의 엄마가 얘기해주는 과거를 통해 지금과의 어떤 차이점을 떠올리는 건 의사의 본분을 충분히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 ‘파커’가 추적자로써의 모습으로 ‘조’의 실체를 확인한 후에는 갑자기 의사로써 그를 판단하려 한다. 정신적으로 피폐한 이들에 둘러사여 갇혀 지내길 원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럼 왜 이제 와서 탈출하는지, 병원에서 편안히 지내며 모든 위협을 무력화했는데 갑자기 병원을 벗어난 것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답을 내려 하지만 이미 그건 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긴 하다. 그래서 ‘파커’가 의사로써 보여주는 캐릭터가 처음에 소비되고 나서는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그런 모습을 더 보여주려 했다면 ‘조’의 가정사 또는 ‘파커’의 가정사를 더 많이 보여주고 거기서 단서를 찾아갈만한 모습을 더 나타냈어야 하는데, 그런 걸 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의학’이라는 포인트를 약하게 만든 이유인 듯 하다.


앞에서 중간중간 공포감을 주며 끈기있게 이어오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건 뒷 부분 40~50page이다. 여기서 존재에 대한 정체도 드러나고 그간 잠깐씩 노출되던 복선도 한번에 결말을 보여주기 떄문인데, 마지막 장면에 다다르고 ‘조’에 대한 모든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앞으로 다시 돌아가 그 부분들을 다시 읽게 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궁금한 건 왜 ‘파커’였는지, 그리고 ‘조’가 원했던 건 단지 ‘그것’뿐인지가 너무 짧게 그려진거 같아 조금 아쉽다. 그리고 누군가의 고백같은 액자식 구성이 대단히 큰 효과는 아니기도 하고, 집중해 읽어가지 않으면 ‘조’의 정체가 조금은 썡뚱맞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선입견없이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가면 의학스릴러에서 공포물 그리고 미스터리로의 순간순간 변화하는 소설을 경험할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생각보다 책이 두껍지 않다. 전체 300 page가 채 안되는데,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다뤘다면 내용도 풍부해지고 잔재미가 더 많아졌을 것 같다. 


2. 마케팅인건지 모르겠지만 판권 계약도 여러 나라와 하고 20세기 폭스사에서 영화화를 한다고 하는데, 현실화되기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치더라도 ‘조’를 누가 연기하게 될지 궁금하긴 하다.


3. 병원 배경의 차가운 스릴러 또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비밀의 존재에 대한 정체를 찾아가는 미스터리가 궁금하다면 추천, 깊이있는 의학스릴러나 사이코패스가 숨겨놓은 단서를 좇는 현실적인 스릴러가 보고 싶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시월이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