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자살
조영주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주요 포인트는?

최근에 이런 장르의 책을 찾지 않았던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간만에 추리 소설의 감각과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한동안 <추리 소설=일본 작가>라는 좁은 관점 때문이기도 했는데, 늦은 감이 있지만 ‘도진기’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국내 작가들이 쓴 소설들에 관심이 가긴 했다. 하지만 다른 책들에 밀려 많은 소설을 읽지는 못한 얼마동안 이었는데, 그러고보면 이번 책은 그런 다시 국내 작가의 작품에 대해 환기시키는 지점이 된 것 같다.


줄거리만 보면 단순한 ‘범인’의 알리바이 만들기라고 넘겨 짚었는데, 의외로 여라기지 사건이 얽히고 설켜있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 전체적으로 단순한 느낌이긴 한데, 단순한 느낌이라고 해서 어렵지 않다거나 복잡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사실 이 책의 서술방식이 절대 쉬운 내용은 아니다. 인물들의 과거 회상 또는 어느 시점에 대한 복기는 많이 쓰이는 방법이지만 이 책에서는 너무 많이, 너무 불규칙하게 쓰인다. 그래서 정확한 시점을 인지하지 않고 1/3쯤 읽다보면 ‘엥? 이게 뭔 소리지?’ 또는 ‘어? 이 계절에 이건 무슨?’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이런 부분들이 조금 헷갈릴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하고 읽어야겠다.


내용으로 보면, 어머니와 겸상을 하지 않을 정도로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준혁’은 자존감이 매우 강한 사람인데, 그것이 내적인 것 보다는 외적인 것에 집중하며 현재의 생활 반경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명지’와 연애기간이 오래되면서 점점 그 틈이 벌어지는 이유도 결국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면서 이미 더 멀어지게 되는게 사건의 발단이 되는 것이다. 이미 그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알게 된 어떤 사실 때문에 ‘명지’와 동반자살까지 생각하고, 그래서 명지는 그를 밀어버리는 상황까지 이어져 그를 살해했다고 믿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오래 한 시간이었음에도 더 이상 가까워지긴 어려웠던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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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안그래도 한가한 일상이 더 지루해질 것 같았다. 이 기회에 엄마에게 용돈이나 받아 유럽이나 한 번 더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핸드폰으로 여행 상품을 검색하다가 꺠달았다. 한가할 때 시간을 보낼 상대로 14년을 사귄 남자 친구 준혁을 전혀 떠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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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형태가 된 건 단지 오래된 연인들의 싫증이 아니라는 게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혐오’가 기점이 된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준혁은 명품옷과 외제차, 강남 오피스텔이라는 것으로 잘 포장된 삶을 살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그것이 본인의 본성 때문이란 것은 알지 못한다. 겉으로 꾸며야 보이는 자신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조차 그에게 일어난 일들에 동정심을 갖게 해주지 않는다. 후반부 어떤 일을 위해 모든 걸 탈탈 털어 명품을 사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같은 아파트 거주민들이 자신(정확히는 자신이 들고 있는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는 건 안쓰럽기까지 하다.


살인 사건 자체를 따라가다보면 사실 ‘혐오’가 어떤 것인지 먼저 떠오르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준혁이 동네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이상한 느낌과 위화감이 어디서 오는지를 한참동안 알아채지 못하는게 소소한 트릭이라면 트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여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이해가 안가느 사람들의 왕래는 분위기를 매우 의심스럽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뒷부분에서 밝혀지면 그 상황들이 허무하긴 하다. 단지, 앞서 말한 ‘혐오’가 직접 드러나지 않다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차별’로 받아들였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은 흡사 사이코가 등장하는 심리소설같은 분위기도 든다. 



인상깊은 부분은?

준혁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건 몇 차례 보여주는데, 심지어 떡을 살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그런데 명지에 대해서는 준혁처럼 극적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예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그건 ‘혐오’와는 좀 다른 지점에서 겪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한다. 다만, 준혁의 죽음 이후 명지가 위험에 닥치는게 바로 감정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소설속에서 몇가지 우연이 겹치기도 하고, 반경이 좁으므로 인물과 인물이 어떤 지점에서 부딪히는 건 이해가 가지만, 굳이 명지가 위험에 빠지는 건 좀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왜’인지는 알겠지만 ‘굳이?’라는 모르겠다는 얘기다. 


앞서 ‘혐오’라는 주제가 바로 이야기에 스며들지 않지만 중반 이후에는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그 ‘혐오’를 확실히 표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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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는 몇 가지 사실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건의 자살을 한 고인들은 난민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했다. 그보다는 외국인이라는 표현이 옳지 않을까. 또, 자살을 했다는 것 외에 확실한 공통점도 없는데 연쇄살인이라는 깃으로 말하다니 성급해 보였다.

낚시글.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올려놓은 글로 보였다. 그런데 이런 글에 좋아요가 만 개가 넘게 눌리고, 덧글은 천개가 넘게 달리다니 불쾌했다.

P.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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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떤 시점에 어떤 인물과 matching시키는지는 얘기할 수 없지만 사람과 사람사이 ‘혐오’가 차별을 넘어서는 것을 뒷부분에서야 알게 되지만 명지의 시선에서 느끼는 준혁은 그저 강남에서 이름없는 동네로 이사가서 겪는 낯설움이라고만 받아들이게 된다.


헛점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인물들의 성격이 너무 많이 변한다. 명지의 경우 소심해서 자기 주장이 강하지도 않은데 그와중에 마음의 결정은 너무 냉정하게 빨리하는게 좀 어색했고, 준혁은 세상만사 귀찮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 주변 사람에게 자기 상황도 정확히 얘기 못하고 친구 운운하는 건 너무 소심하게 변한 느낌이다. 앞서 쌓아왔던 성격이 짧은 순간에 이런변화가 오니 뒤에 이어지는 사건으로 가기 위한 준비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인간이 무너지는 순간을 너무 빨리 만들어가는 것 같은?


앞서 말했지만 이 소설은 서술 방식도, 구성도 한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시점이 왔다갔다 하면서 혼란을 주는데, 차라리 순차적인 진행이 아니라면, 과거 시점부터 현재까지를 역행으로 보여주는 ‘리 차일드’의 <61시간>(2012)애서와 같이 구성하는게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와 더불어 등장(주요)인물에 동명이인이 있기까지 하다. 사실 추리소설에서 동명이인으로 만든 트릭은 시작과 함께 알려줘야 한다고 어디서 본 듯 한데, 트릭 수준은 아니지만 그 인물이 여러차례 언급되고 어느 순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다만 일본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동명이인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예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게만 생각했던 시점이 뒤에서 해결되는 부분에서는 의외로 시원하기까지 한데, 이런 상황을 그대로 화면으로 옮긴다면 꽤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예로 똑같은 대화가 앞과 뒤 두 번 등장하기도 하는데, 물론 두 사람 각자의 시점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이었는지, 이후 어떤 일이 있는지를 알게 되면 앞서 답답했던 부분이 한번에 해소된다. 다만 두 사람이 만나자고 한 이유는 완전히 상반되는데 그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조영주 작가는 이전 <좀비썰록>(2019)이라는 단편집의 한 꼭지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이번 소설의 등장인물인 ‘김나영 형사’가 작가의 다른 소설(<붉은 소파(2016)>, <반전이 없다(2019)>에도 나온다는 걸 알고 그 책들도 궁금해졌다. 사실 이번 소설에서 김나영 형사는 눈부신 추리를 한다던가 범인을 세상끝까지 추적하는 매서운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전혀 주요인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다른 소설속에서 뭔가 보여준다면-최소한 작가가 계속 등장시킬 만큼 매력이 있다면-다른 작품속에서의 활약을 기대해보면 좋겠다. 꼭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 외에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한다. 처음에 이야기 전개를 잘 이해하기만 하면 늘어지지 않는 깔끔한 추리소설을 읽을 수 있을텐데, 작가의 다음 소설이 나온다면 꼭 찾아서 읽어볼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잠깐 얘기했지만 드라마로 만들면 아주 재미있는 내용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인물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할지 애매하긴 하다.


2. 큰 역할을 못했다고 밝혔지만, 김나영 형사의 추적이 빛을 발하는 마지막 부분은 이 소설과 이어지는 속편을 기대하고 싶게 만든다. 


3. 살인범보다는 사건의 숨겨진 비밀과 과정 자체를 찾아가는 추리물을 원한다면 추천, 퍼즐을 끼워 맞추듯 복선을 찾아 범인을 추적해가는 탐정  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싶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캐비넷'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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