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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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은이) 김영사 2020-05-30, 252

 

죽은 자들은 소리가 아니라 흔적으로 말한다.

함께 책을 읽는 지인이 어느 날 추천한 책,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제목처럼 죽은 사람들이 살았던 집을 청소해주는 특수한 업을 가진 저자의 경험을 갈아 넣은 에세이다.

몇 년 전 내용이 독특해서 읽어볼까 잠깐 고민했던 책이라 내 기억 속 한구석에 살고 있던 책이었다.

처음 마주한 책은 표지와 앞뒤속지에 또렷한 제목과 다른 자국. 마치 지워지지 않은 흔적처럼 희미한 제목과 잘 정리된 방안이 애처로워 한숨에 읽기는 어렵겠다는 예감을 주었다. 책을 펼치니 서서히 나의 궁금함이라는 돛에 바람이 모여든다.

어떤 의도로 썼을까, 충격은 얼마큼 올까 생각하며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2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장은 청소 의뢰를 받는 것으로 시작해서 청소하러 간 집에 대한 상황, 생을 마감한 고인과 관련된 주변사람에 대한 이야기, 청소하는 과정 등에 대한 내용 위주라서 글을 따라가면 특수청소가 어떤 작업인지에 대해 알게 된다.

2장은 작가가 맡아했던 작업과 덧붙여 청소를 통해 얻은 생각, 그때 느꼈던 감정에 대한 내용으로 좀 더 개인적인 부분이 많다.

그가 일하는 장소에 늘 죽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죽고 주변이 정리되기 전 그 흔적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저자는 죽은 자리에서 태어난 구더기, 파리, 번데기를 치우는 과정에서 생명의 순환과 인생의 덧없음도 말하지만, 일에 대한 고충도, 뜻하지 않게 자살 직전의 사람을 살린 경험도 이야기한다.

 

이 책의 작가 김완은 문학을 전공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시()는 밥이 되지 않았다. 낮에는 각종 배달을, 밤에는 대필 작가로 생활도 했다. 글과 멀리 살 수 없어 전업 작가가 되려고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대관령 아래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삶은 녹녹치 않았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일본은 때로 물리적·심리적으로 가까웠고 취재와 집필을 위해 간 일본에서 죽은 이들을 위한 일에 관심이 생겨 지켜보았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후 귀국해 좋아하는 청소를 직업으로 연결해 특수청소 서비스업체 하드웍스를 설립했다. 일하면서 맞닥뜨리는 죽음의 현장에서 드러난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해 기록하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출판하고 작가가 되고 싶다던 꿈을 이루었다

 

누군가 홀로 죽으면 나의 일이 시작된다˂뒤표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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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 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해답도 없고 답해줄 자도 없다. 면벽의 질문이란 으레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끊임없이 초대하는 세계, 오랜 질문들과 새로운 질문들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건배를 제창하는 떠들썩한 축제 같다.

 

필자도 쓰레기를 치울 때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이 만든 쓰레기를 치울 때는 진정 질문의 화수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이게 왜 여기 있을까, 뭐에 사용했을까, 왜 내가 여기서 이런 걸 하고 있나 등등 쓰레기를 만든 사람과 나에 대한 생각이 소용돌이치는 시간이다. 하물며 죽은 이의 물건을 치우는 중이라면 더 많은 생각에 함몰될 것 같다.

 

128

이곳을 치우며 우연히 알게 된 당신의 이름과 출신 학교, 직장, 생년월일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그것은 당신에 대한 어떤 진실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치우면서 한 가지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이곳에 남은 자들의 마음입니다.

 

떠난 사람의 자리를 아무리 청소하더라도 남아있는 사람에게 있는 흔적은 지울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세제와 도구를 사용해도 그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 고인에 대한 마음을 지우는 건 어려울 것이다.

228

안식년을 보내기 위해 돌담으로 에워싼 조그만 산골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방문한 이에게 손수 드립 커피를 내려주던 한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은총이랍시고 망각을 내려주는 신. 그때는 그것이 왜 은총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죽고 죽이는 전국 각지의 가정을 싸돌아다니다 보니, 만 원권 지폐처럼 새파랗고 빳빳한 얼굴의 신보다는 웬만한 것은 눈감아주고 잊어버리라는 신을 더 따르고 싶다.

부디 오늘 밤 우리에게도 은총이 임하길, 무표정보다는 수다스럽고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이 더 정겨운 법. 때로는 망각을 청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

 

잊고 싶은 일들을 잊는 건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깊게 팬 자국도 깍여 나가 패인 흔적만 남게 된다. 때로는 그 부분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도 있다. 물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는 것, 망각은 진정 신의 선물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고독사(孤獨死)는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매체에서 꾸준히 들려오는 소식은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오고 슬프지만 나에겐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맞닥뜨린 곳의 상태와 청소 과정에 대한 묘사가 마치 안개가 뭉쳐 물방울이 내게 내려앉은 것 같다. 저자가 느끼는 것과 생각이 생생하고 현실감 있어서 간간히 읽기를 멈추곤 했다. 책을 덮으니 켜켜히 쌓여 흠뻑 젖어 온몸이 무거워졌다. 이 책은 사회문제가 된 고독사라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던져주지만 독자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기에는 꺼려진다. 홀로 죽음이 깃든 육체에 시간이 더해지니 아름다운 죽음이란 없었다. 죽음의 존엄은 사라지고 관음적인 흥미만 남을 수 있겠다는 우려가 생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서 고개를 돌려선 안 된다. 필자에게는 죽은 자의 집 청소가 치열하게 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이웃의 삶과 죽음의 고통을 헤아리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사는 삶이란 죽음에서도 해당되는 삶이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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