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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잘러의 말센스 - 말 한마디로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오카무라 나오코 지음, 김남미 옮김 / 카시오페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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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FJ라 내 생각이 정리된 다음에 말을 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래서 가끔 ˝저 사람의 말에 어떻게 리액션 해줘야 하지?˝라는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매끄럽게 대화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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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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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IW

'최애가 불타버렸다. 팬을 때렸다고 한다.'

살아있는 누군가의 팬이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장이 아닌가. 그동안 착실히 쌓은 십수년의 덕질 경력이 한 순간 촤르륵 펼쳐졌다. 언젠가의 내 최애도 폭행사건을 일으켰더랬지. 흔히 하는 말인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온몸으로 체감한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폭행사건으로 뉴스 1면을 장식하던 그는 얼마뒤 일본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콘서트 장에는 그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이 가득했다. 온갖 정내미가 떨어지다 못해, 그 사람을 걱정하던 내 자신이 한심해지던 순간이었다.

"최애는 목숨이랑 직결되니까."

p.11

「최애, 타오르다」의 주인공 아카리에게는 일상을 사는 것이 힘들다. 공부며 배움도 힘들고, 아르바이트에서도 실수투성이다. 아카리에게 알바는 그저 최애의 앨범 한 장을 더 사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부모님은 그런 아카리를 못마땅해하고, 똑똑한 친언니는 비교대상이다. 아카리에게는 최애를 해석하는 것이 전부이다. 최애의 말, 행동, 표정을 해석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아카리의 모든 것이 최애 중심으로 돌아간다.

최애는 ; 위로

아카리에게 최애는 어떤 의미였을까? 최애를 본격적으로 응원하기 시작한 때를 보면 그 의미를 조금 알 수 있다. 아카리가 4살, 최애가 12살일 때 아카리는 최애가 피터팬으로 출연한 연극 <피터팬>에서 최애를 처음으로 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카리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시절에 아카리는 침대 밑에서 그 때 그 <피터팬> dvd를 발견하고 영상을 재생한다.

제일 먼저 느낀 것은 통증이었다. 순간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예리한 통증.

그다음엔 밀쳐졌을 때 오는 충격과도 비슷한 통증.

p.15

아카리의 덕질은 환희와 즐거움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덕질의 시작은 통증이었다. 뭔가 깊이 파고드는 예리한 통증. 남들에게 쉬운 것이 아카리에게는 쉽지 않았다. 학교 생활도 쉽지 않았고, 가족 안에서도 아카리는 품어지지 않는 딸이었다.

피터팬은 극 중에서 몇 번이나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네버랜드에 가자.

코끝이 찡했다. 나를 위한 말 같았다.

p18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대사에 아카리는 '말 대신 눈물이 차올랐다. 무게를 짊어지고 어른이 되는 것을 괴롭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누군가 말해준 것 같았다. 같은 것을 떠안은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의 작은 몸을 매개 삼아 아른거렸다.' 어쩌면 이것이 아카리가 받은 인생 최초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짊어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말해준 첫 번째 존재. 아카리에게 최애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통을 느낄 만큼 충격적이었던 위로는 아카리의 척추에 자리한다. 척추는 아카리가 살아가게 해준다. 인생에 붙잡을 것 없는 아카리에게 최애는, 단순히 잘생기고 멋진 눈정화용이 아니다. 최애는 내 보잘 것 없는 삶을 영위해나가게 하는 척추며 어떻게든 살아가게 해주는 존재다. 최애의 행보에 자신의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하더라도 놓을 수 없고, 나는 그를 욕해도 남이 그를 욕하는 건 눈뜨고 볼 수 없는 그런.

최애는 ; 관계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는 혹은 무대와 객석에는 그 간격만큼의 다정함이 있다. 상대와 대화하느라 거리가 가까워지지도 않고 내가 뭔가 저질러서 관계가 무너지지도 않는, 일정한 간격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끝없이 느끼는 것이 평온함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최애를 응원할 때 나라는 모든 것을 걸고서 빠져들 때, 일방적이라도 나는 그 어느때보다 충족된다.

p.69

아카리가 최애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선택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sns나 기타 매체를 통해 아무리 소통을 많이 한다고 해도, 연예인과 팬은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주체들은 아니다. 팬도 연예인이 보여주는 모습들을 가공해서 받아들이고, 연예인 역시 팬의 가공된 모습만을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카리에게 최애와의 관계는 엄청난 만족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최애를 덕질함'으로써 따라오는 인터넷상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최애라는 매개로 이어진 단편적인 사이. 최애가 아니라면 언제 손절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하지만 최애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서로 최애의 덕질 포인트를 주고 받으며 그 누구보다 끈끈한 사이가 된다. 인간 관계에서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사람마다 충족되어야 하는 관계의 양이 정해져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하면, 어디 한 곳에서 포션이 충족되면 다른 곳에서는 맺을 관계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 삶에서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한 아카리는 다른 곳에서 그것을 채웠을 뿐이다.

최애는 ; 현실

내 방에 있는 엄청난 양의 파일과 사진, CD, 필사적으로 긁어모은 수많은 것들보다

셔츠 단 한 장이, 겨우 양말 한 켤레가 한 사람의 현재를 느끼게 한다.

은퇴한 최애의 현재를 앞으로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현실이었다.

p.128

폭행사건으로 시작된 최애의 일탈은 결국 팀 해체와 연예계 은퇴라는 충격적 소식으로 막을 내린다. 아카리는 예전에 최애의 인터뷰에서 봤던 한 멘션으로 향한다. 최애가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맨션 앞에서 한참을 서있던 아카리는, 맨션에서 빨랫감을 들고 나오는 여성을 보며 현실을 깨닫는다. 최애에게는 최애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어떤 누군가는 최애의 현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중심이 아닌 전체가, 내가 살아온 결과였다.

뼈도 살도 전부 나였다. 그걸 내동댕이치기 직전을 떠올렸다.

p.131

척추가 무너지는 급의 깨달음 후에 아카리는 겨우 면봉으로 제 배를 때리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뼈를 줍듯이 무릎을 꿇고 방바닥에 떨어진 면봉을 줍는다. 기어다니며 면봉을 줍는 행위로써 자신이 벌려놓은 일을 돌이킨다.


최애는 무엇인가. 우리의 척추를 구성하는 건 무엇인가.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애착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무엇이든지 최애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없어졌을 때 나는 어떤 존재인가. 겨우 엎드려 면봉이나 주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혹은 또 다른 최애로 척추를 세울 것인가.

이 소설을 어떤 사람은 세태를 생생하게 그려낸 걸작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트위터를 옮겨놓은 것 밖에 안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소설이 우리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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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0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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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책 맨 뒷 장을 펼쳤다. 대체 몇 년도에 나온 소설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2004년이었다. 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딱 2004년의 정서다 이 소설은.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정미경 작가의 초기작들을 묶어 놓은 책이라고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오늘의 작가 총서로 이 책을 꼽은 이유가 무엇인지 민음사에 묻고 싶었다. 그만큼 불편한 주제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실린 작품 중 불편의 최고조는 「나릿빛 사진의 추억」이다. 어느날 성민이라는 남자는 서랍 속에서 오래된 필름을 발견한다. 전 여자친구 윤미와 1년 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의 필름이었다. 성민은 1년 전, 가난이라는 이유로 현상조차 하지 못했던 필름을 문득 사진으로 인화하고 싶어져 사진관에 맡긴다. 사진관 총각은 인화된 사진을 건네주며 "재밌는 사진도 있던데요?"라고 말한다. '재밌는 사진'은 바로 여자친구 윤미의 나체 사진. 흔한 커플처럼 여관방에서 낄낄거리며 찍은 사진이었다.


제대로 된 누드 사진이 아니라 찍는 사람이나 피사체나 깔깔거리며 찍었음이 분명한, 그래서 벌린 여자의 가랑이 사이로 지금도 수면을 퉁기는 돌처럼 생생하게 변져 나오는 듯한 웃음소리가 보이고 웃느라 초점이 마구 흔들려 버린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여린 취기처럼 어떤 그리움이 조용히 번지는 것을 느꼈다. (p.207)


성민은 사진을 집으로 들고 와, 윤미에게 1년만에 전화를 건다. 사진을 현상했다고 하니 윤미는 그냥 찢어서 버려달라고 말한다. 성민은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찢어 버렸고, 그 순간 윤미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 "그 사진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돌려받는 게 나을 것 같아."


전화를 끊고 보니 기억 속에 방자한 포즈가 하나씩 떠올랐을 것이다. 돌려받아서 직접 처리하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일 것이다. (p.211)


사진을 버렸다는 성민의 말에 윤미는 다시 한 번 사진을 잘 버려 달라고 당부하며 전화를 끊는다. 성민은 머릿 속에서 사진을 떠올리며 그때의 추억에 젖는다. 며칠 뒤 성민이 일하는 곳에 조폭 몇 명이 찾아온다. 조폭은 윤미의 사진을 달라고 요구했고 그 순간 성민은 윤미의 예비남편이 보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성민의 입장에선 이미 버려버린 사진을 줄 수 없었고, 윤미는 성민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하고 불안해 한다. 조폭은 성민의 집에 무작정 찾아와 서랍들을 뒤지고 사진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진이 정말로 없다는 걸 알고 조폭은 윤미를 불러 똑같이 다리를 벌리게 하고 사진을 찍으라고 말한다. 조폭은 윤미의 예비남편 손에 사진을 쥐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성민은 잠시 고민하다 윤미에게 전화를 건다.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난다. 그 이후로 윤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랑이 벌린 사진을 찍혔을까, 안 찍혔을까. 성민이 사진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계속 의심하던 윤미는 아마 사진을 돌려주겠다는 성민의 말에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두 남자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강제로 찍히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여잘 불러요. 사진을 돌려주겠다고. 그 여자만 오면 모든 게 다 있잖아요. ... 오면 다리를 벌리게 하고 찍어요. ... 버티면 한두 대만 패면 돼요. (p. 233)


윤미 역시 지금 내가 사진을 돌려주겠다고 불러 놓고 그 사진을 다시 찍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p.235)

지금 같았으면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소설이다. 이런 내용을 쓴 것이 여성 작가라는 게 충격적이고 그래서 딱 2004년의 정서라고 생각한다. 성민이 불순한 의도로 사진을 현상한 것은 아니다. 사진을 잘 버려달라는 윤미의 말에 바로 버렸다. 하지만 소설 속 남자들에게는 여성의 몸이 사진으로 현상되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성민에게 사진은 단지 추억을 회상하고 당시의 관계에 젖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었다. 성민은 무력으로 여성의 나체 사진을 찍으라는 남성의 말에서 슬픔과 간절함을 본다. 윤미의 예비남편이 사람을 시켜 윤미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한 건 단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 윤미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조폭 역시 다른 남성의 권력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였다.

그러나, 소설로써는 2004년의 정서이지만 지금 현실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 다름이 없지 않은가? 여전히 남성의 권력을 위해 여성이 이용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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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리니코프 2021-11-29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토록 편협한 시선으로 소설을 ‘이해‘하고 ‘규정‘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당신이 말하는 ‘2004년의 정서‘의 표출 아닐까?

hann 2022-05-01 00:21   좋아요 0 | URL
독자 개개인의 경험과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기때문에 소설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라이팅 클럽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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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글쓰기로 이어지는 구질구질한 인생


이야기는 서울시 종로구 계동의 아주 작은, 5평이 될까 말까 한 글짓기 교실에서 시작한다. 작은 글짓기 교실을 운영하는 가난한 김 작가과 그의 딸 영인. 또래보다 키와 체구가 큰 매력 없는 여자애. . 열일곱 영인은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는 스피노자나 니체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리버럴한 척, 온갖 남자 경험을 다 한 여자애처럼 굴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를 들고 다니며 서른 살이 되면 자살할 거라고 떠들었지만 "나는 살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없다."와 같이 난해한 문장으로 가득한 『삼십 세』를 골치 아픈 것으로 여기던 문학허세쟁이였다.


평생을 작가 지망생으로 산 김 작가는 글짓기 교실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글짓기 교실을 연 지 두달이나 되서야 조금씩 모여들던 아이들의 받아쓰기며 글짓기 숙제를 도와주는 김 작가를 따라 영인은 아이들 화장실 데려다주기, 코 닦아주기, 흘리고 간 물건 챙기기 같은 일을 하였다. 사실 진짜 작가도 아니었던 김 작가를 다들 호칭없이 대충 부르거나 영인 엄마라고 불렀지만, 문학과 글쓰기를 꿈꿨던 사람들은 그녀를 꼬박꼬박 '김 작가'라고 불렀다. 그렇게 소소하게 글짓기 교실을 운영하던 김 작가는 어느 문학잡지에 공모하여 신인상을 탔다. 하지만 여전히 작가 지망생이었다.


글짓기 교실에는 아이들의 수업이 끝난 오후부터는 동네 여자들이 모여들었다. 여자들의 글쓰기는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 얘기부터 학교 다니다가 키가 크다고 왕따당한 얘기,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다른 여자네 집으로 간 얘기, 언니와 낯선 지방에 있는 친척집에 심부름을 다녀온 얘기' 등 지루하고 평범한 라이프 스토리가 다였다. 그렇게 글을 끄적이다 결국은 남편 얘기, 시댁 얘기, 자식 얘기로 한탄을 하다 돌아갔다. 여자들은 글을 쓴 종이 쪼가리들을 글짓기 교실에 남기고 갔다. 영인은 그것들을 쓰레기라 불렀다. 여자들의 인생이 담긴 글을 영인은 쓰레기라 여겼다.

" 그런데 쓰레기들은 계속해서 조금씩 더 늘어 갔다. 시간이 가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끝나고 현재의 시점까지 와있었다.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 이르자 모두들 자기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자식과 남편 얘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김 작가는 그런 노트들 끝에다가 "자기 이야기, 자기 이야기를 쓰세요!"라는 코멘트를 줄줄이 적어 놓기 일쑤였다." - p.187


김 작가는 그녀들의 글에 "자기 이야기, 자기 이야기를 쓰세요!"라는 코멘트를 달고는 했다. 여자들은 이제 쓸 이야기가 없는데 뭘 쓰란 말이냐며 투덜거렸다. 김 작가는 집을 나오면서 본 풍경, 자신이 자신 있게 하는 요리 레시피라도 쓰라고 했다. 그렇게 여자들은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을 때까지 글을 썼다. 영인에게는 그저 "종이컵을 든 동네 아줌마들의 결연한 수다방"일 뿐인 글짓기 모임을 김 작가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계동 여성들의 모임"이라고 불렀다. 김 작가에게 이 모임은 어떤 의미였을까? 김 작가에게 모임에 오늘 여자들에게 글 쓰기로써 자기 자신을 찾길 바랐던 것이다. 결국은 남편 얘기, 자식 얘기를 하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여자들에게 모임은 자기 자신을 쓰며, 인생을 쓰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영인은 별 것도 안 하면서 돈을 받는다고, 모임을 돈 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김 작가를 아니꼽게 여겼지만 김 작가에게 모임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었다.


"깔깔거리고 박수를 치고 또 갑자기 진지해졌다가 또 갑자기 음담패설로 빠지는 계동 여자들의 대화는 다이내믹함, 발랄함, 그리고 수준낮음 그 자체였다. 그 여자들은 도대체 뭘 먹고 그렇게 씩씩했던 걸까. 지금도 궁금하다." - p. 170




그렇다면 영인이게 글 쓰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영인의 글 쓰기는 편지쓰기로부터 시작한다. 영인이 처음으로 빠진 여자 R에게 한 달 동안 쓴 장문의 편지, 첫 여자친구 K와 주고 받은 편지, 저녁마다 글짓기 교실에 혼자 찾아오던 남성에게 전하고 만 스무 장의 편지. 영인은 타인과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 "볼품없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 온 나 스스로를 괜찮은 존재로 재인식하게" 되었다.


어느날 영인은 인생 두 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영인을 쓰게 만든 건 배고픔과 분노였다. '김 작가가 연애에 미쳐 가정경제를 돌보지 않고 생활을 등한시한 탓에 쌀을 살 돈이 없다는 게 배고픔의 이유였고, 스무 장이나 되는 연애편지를 보냈지만 철저히 무시를 당한 게 분노의 이유'였다. 배고픔과 분노로 시작한 소설은 어느새 원고지 70매의 단편소설이 된다. 영인은 자신의 말도 안되는 소설을 봉투에 챙겨넣어 늘 동네 카페에 앉아 있는 작가 J를 찾아간다. 작가 J와의 만남으로 영인은 세상을 달리보는 방법을 배운다. J작가는 영인의 소설을 보고 "설명을 하려 들지 말고 묘사를 하라."고 한다. 다음 날부터 영인은 미친 사람처럼 길거리를 싸돌아다녔다. J작가가 말한 것처럼 설명이 아닌 묘사를 하기 위해 계동 구석 구석을 살폈지만 돌아오는 건 구질 구질한 인생들 뿐이었다.


김 작가의 글쓰기 교실과 글쓰기를 사랑하던 계동 여성들의 모임을 무시하던 영인은 서른 살을 기점으로 변화를 맞는다. 한 남자를 따라 미국으로 가 일을 하던 영인은 어느날 스스로 글쓰기 모임을 열기로 다짐한다. 길거리에서 직접 만든 글쓰기 모임 전단지를 돌린다. 김 작가의 글쓰기 교실을 구질 구질하고 더러운 사람들이 모여 쓰레기 같은 글을 쓴다고 여겼던 영인이 또 다시 글쓰기 교실을 열었다라.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라고 생각했지만, 영인은 아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득했을 것이다. 모여서 글을 쓰고 나누는 것이 가진 힘을.




" 아, 네, 저는, 저기, 셀리 네일 숍에서 일하는, 오늘 너무 감사드려요. 저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아니, 중교등학교 시절에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좋아요. 아무튼 많이 가르쳐 주세요." - P.274


반 충동적으로 글쓰기 모임을 열고는 사람들이 모이자 영인은 화장실에 숨어 덜덜 떤다. 네일숍에서 같이 일하던 N에게 떠밀려 나와 사람들 앞에선 영인이 한 말은 "아무튼 많이 가르쳐 주세요." 자기가 모아놓고는 아무튼 많이 가르쳐달라니. 긴장에 잘못 나온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많이 가르쳐달라는 영인의 말은 그간 계동의 글쓰기 교실에서 느낀 것을 함축한다. 글 쓰기는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행위라는 것. 글쓰기 행위를 통한 상호작용은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영인에게 글 쓰기는 그런 것이었다.


"한번 써 봐. 인생이 얼마나 깊어지는데." - P.225


"그러나 왠지 일거수일투족이 다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하지 않으면 중요한 걸 다 놓쳐 버릴 것 같았다. 시계가 째깍거리는 움직임도 기록해두어야 할 것 같고 그 순간 만큼은 충만한 감정으로 가득차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 P.255


N이 종일 글만 쓰는 영인을 놀린다. 영인은 대답한다. "한번 써봐. 인생이 얼마나 깊어지는데." 인생이 깊어진다. 글쓰기는 깊어짐이다. 이 한문장보다 글쓰기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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