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0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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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책 맨 뒷 장을 펼쳤다. 대체 몇 년도에 나온 소설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2004년이었다. 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딱 2004년의 정서다 이 소설은.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정미경 작가의 초기작들을 묶어 놓은 책이라고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오늘의 작가 총서로 이 책을 꼽은 이유가 무엇인지 민음사에 묻고 싶었다. 그만큼 불편한 주제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실린 작품 중 불편의 최고조는 「나릿빛 사진의 추억」이다. 어느날 성민이라는 남자는 서랍 속에서 오래된 필름을 발견한다. 전 여자친구 윤미와 1년 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의 필름이었다. 성민은 1년 전, 가난이라는 이유로 현상조차 하지 못했던 필름을 문득 사진으로 인화하고 싶어져 사진관에 맡긴다. 사진관 총각은 인화된 사진을 건네주며 "재밌는 사진도 있던데요?"라고 말한다. '재밌는 사진'은 바로 여자친구 윤미의 나체 사진. 흔한 커플처럼 여관방에서 낄낄거리며 찍은 사진이었다.


제대로 된 누드 사진이 아니라 찍는 사람이나 피사체나 깔깔거리며 찍었음이 분명한, 그래서 벌린 여자의 가랑이 사이로 지금도 수면을 퉁기는 돌처럼 생생하게 변져 나오는 듯한 웃음소리가 보이고 웃느라 초점이 마구 흔들려 버린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여린 취기처럼 어떤 그리움이 조용히 번지는 것을 느꼈다. (p.207)


성민은 사진을 집으로 들고 와, 윤미에게 1년만에 전화를 건다. 사진을 현상했다고 하니 윤미는 그냥 찢어서 버려달라고 말한다. 성민은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찢어 버렸고, 그 순간 윤미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 "그 사진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돌려받는 게 나을 것 같아."


전화를 끊고 보니 기억 속에 방자한 포즈가 하나씩 떠올랐을 것이다. 돌려받아서 직접 처리하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일 것이다. (p.211)


사진을 버렸다는 성민의 말에 윤미는 다시 한 번 사진을 잘 버려 달라고 당부하며 전화를 끊는다. 성민은 머릿 속에서 사진을 떠올리며 그때의 추억에 젖는다. 며칠 뒤 성민이 일하는 곳에 조폭 몇 명이 찾아온다. 조폭은 윤미의 사진을 달라고 요구했고 그 순간 성민은 윤미의 예비남편이 보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성민의 입장에선 이미 버려버린 사진을 줄 수 없었고, 윤미는 성민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하고 불안해 한다. 조폭은 성민의 집에 무작정 찾아와 서랍들을 뒤지고 사진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진이 정말로 없다는 걸 알고 조폭은 윤미를 불러 똑같이 다리를 벌리게 하고 사진을 찍으라고 말한다. 조폭은 윤미의 예비남편 손에 사진을 쥐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성민은 잠시 고민하다 윤미에게 전화를 건다.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난다. 그 이후로 윤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랑이 벌린 사진을 찍혔을까, 안 찍혔을까. 성민이 사진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계속 의심하던 윤미는 아마 사진을 돌려주겠다는 성민의 말에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두 남자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강제로 찍히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여잘 불러요. 사진을 돌려주겠다고. 그 여자만 오면 모든 게 다 있잖아요. ... 오면 다리를 벌리게 하고 찍어요. ... 버티면 한두 대만 패면 돼요. (p. 233)


윤미 역시 지금 내가 사진을 돌려주겠다고 불러 놓고 그 사진을 다시 찍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p.235)

지금 같았으면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소설이다. 이런 내용을 쓴 것이 여성 작가라는 게 충격적이고 그래서 딱 2004년의 정서라고 생각한다. 성민이 불순한 의도로 사진을 현상한 것은 아니다. 사진을 잘 버려달라는 윤미의 말에 바로 버렸다. 하지만 소설 속 남자들에게는 여성의 몸이 사진으로 현상되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성민에게 사진은 단지 추억을 회상하고 당시의 관계에 젖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었다. 성민은 무력으로 여성의 나체 사진을 찍으라는 남성의 말에서 슬픔과 간절함을 본다. 윤미의 예비남편이 사람을 시켜 윤미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한 건 단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 윤미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조폭 역시 다른 남성의 권력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였다.

그러나, 소설로써는 2004년의 정서이지만 지금 현실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 다름이 없지 않은가? 여전히 남성의 권력을 위해 여성이 이용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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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리니코프 2021-11-29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토록 편협한 시선으로 소설을 ‘이해‘하고 ‘규정‘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당신이 말하는 ‘2004년의 정서‘의 표출 아닐까?

hann 2022-05-01 00:21   좋아요 0 | URL
독자 개개인의 경험과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기때문에 소설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