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부터 나에 대해 기록 하기를 멈췄다. 아마 그 ‘언젠가’라는 건 내가 내 밥벌이에 집중해 있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기획안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 말고는 도저히 나의 시간과 체력을 쓸 수 없었을 때, 나의 ‘마음 바구니’를 100% 채우기가 겁이 났을 때일 것이다. 딱딱해진 내 마음은 더 이상 기록할 일상과 기록할 감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기록하지 않은 지난 날에는 구멍이 나있다. 크고 작은 나의 일상은 사진으로 남아있지만,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그 때 어떠했는지, 더 이상 알 방법이 없다. 얼마 전, 회사 동료들과 올해 구정에 무엇을 하는지- 이야기하다가, 작년 설날에는 뭘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내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내 2022년 설날은 아이폰 사진 앱에나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곳이 비워질 때 또 다른 어느 한 곳은 채워지고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 - 그늘을 모으는 일>에서 작가는 쓰는 삶에서 읽는 삶으로 삶의 자리가 옮겨지는 것을 느끼며, 쓰는 삶이 영영 없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했던 경험을 말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읽는 삶은 누군가에게는 읽히는 삶-곧, 쓰는 삶-이다. 읽고 읽히는 것이 공존하는 세상. 무언가를 읽고, 무언가를 쓰는 것이 공존하는 삶. 읽음으로써 또 다시 쓰는 삶으로 전이되는 경험이, 나라는 한 사람의 세상 안에서도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무엇이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하나하나 뜯어보고야 마는 애라이기에 매일 써도 종이가 부족한 가랑비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 P131

어디에도 전하지 못한 채 늘 머릿속에서만 빙돌다 사라지던 말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글이 쌓여갈수록 마음의 그늘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