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림의 인문학 - 세상을 이끌 것인가? 세상에 이끌려 갈 것인가?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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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유용성을 이 책에서 잘 짚어냈다. 어떠한 상황을 통찰하는 자세의 필요성은 현실적 이득을 넘어선 사고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나오는 태도다. 이를 망각한 채 이득에만 이끌려 배척해왔던 인문학적 관심을 저자는 잘 불어넣어줬다. 자아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사실 뭘 알아야 한다. 매일 비슷한 일과 나이들어감에 따라 생기는 이런저런 일들이 인생의 전부라면 생각하고 성찰하는 내용도 한계가 있고, 설령 노력해서 억지로 성찰한다고 해도 그 결실은 평범에 머물뿐이다. 저자는 알아라는 조언을 제대로 던졌다. 공자나 맹자도 그 쓰임이 없다면 이토록 재사용될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지식과 삶에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자아 성찰이 가능한 것이다. 현상을 쉽게 설명하고 마찰을 최소화하는 데도 인문학적 사고와 표현은 정말 큰 도움이 된다. 후쿠시마 쓰나미 사태를 지구의 화장에 의한 변화라고 설명한 대목에서는 인간이 입은 피해보다 피할 수 없는 지구인의 숙명이 더 크게 다가온다. 게다가 쓰나미를 지구 표면의 변화, 즉 맨틀 대류에 의한 피할 수 없는 붕괴와 생성이라는 설명에서 또 한 번 인문학적 관찰력에 놀랐다. 통찰력이 돋보이려면 역시 관찰에 이은 생각하는 습관이 이어져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인문학을 응용해 던지는 말과 그냥 그대로 던지는 말은 많은 차이를 양산한다. 인문한은 말 그대로 인간이 사회 속에서 생활하며 터득한 감성 이성이 망라된 학문이다. 깊이 보면 학문이라기 보다 생활 철학에 가깝지만 관점의 유연함이 만드는 과정의 차이, 결과의 차이는 실로 크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인문학을 이끌림으로 표현한 대목은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을 지식답게 접하는 기회가 많이 줄었다. 예전에도 책을 접하지 않는 사람이 접하는 사람보다 많았던 건 변함없지만, 최근에는 모바일까지 생활 전선에 개입하며 꼬투리시간마저 액정을 보며 넋을 놓게 되버렸다. 인문학적 고찰, 통찰, 자아 성찰 없이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부드럽고 조화롭게 꾸미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어서 이끌림이 강한 인문학의 세계에 빠져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흥미넘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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