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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충격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박종성.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8월
평점 :
현재의 충격이 서사 구조의 경종을 의미한다. 과거에 기반한, 과거에 의한 미래를 거부하고 현재는 그 서사 구조에서 이제 완충도 중간도 아닌, 그 자체로써 의미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의 속사포같은 보도 경쟁, 그리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연결이 바야흐로 서사의 틀을 깨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작은 울림으로 그 진동을 알린다. 현재는 이제 미래와 같다. 예측에 기반한 사항이 바로 현재가 되면서 그런 시그널에 몰입하고 집중하게 되는 태도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 누구도 막연히 뒤처지길 원하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에서 속도까지 전쟁의 주항목으로 편입된 시대에 과연 우리가 인식하는 정보에 의미가 있을까. 미래주의는 기술의 발달로 점차 그 색을 잃고 있다. 아니 이제 곧 미래는 현재가 된다. 다만, 우리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초점을 맞춘 채 아직 구시대적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지도 그러려고도 하지 않고 있어 문제다. 프랙탈과 시간의 분절을 소재로 써나아간 이 책은 솔직히 쉽지 않다. 그런 이유는 앞서가는 사고를 활자로 기술한다는 시도 자체에서 태생하지만, 더욱이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건 미국 저자답게 우리가 모르는 컨텐츠를 일단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글을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 영화로 뽕을 미국인이 단박에 공유할 수 없는 현상과 같다고 보면 될 정도로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예시와 비유가 오롯이 와닿지는 않는다. 설령 예시를 전부 이해한다해도 현재주의가 되는 과정은 순탄하지는 않다. 증권시장의 프랙탈 관련 꼬리물리 비판은 대단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미디어가 속도 경쟁의 극한에 다다르자 비슷한 양상으로는 결코 시장 이득을 크게 점유할 수 없자 보이는 매체간의 차별화가 오히려 미디어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현재와 과거, 이 둘의 관계를 완전히 이탈하는 시대는 오지 않는다. 다만, 영원히 지속되는 과정에 변화를 부여하여 서사 구조에 얽매여 정작 봐야할 중요한 내용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의문을 품어보라는 게 저자의 마음이자 이 책이 던지는 핵심이다. 사회 병폐는 우리가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했을 때 비로소 개선의 여지는 남긴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우리는 현재에 대해 저자의 사고관을 한 번 갖도록 노력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