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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달린다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역시 사색의 깊이는 경험과 실천에서 나온다. 도구적 관점에서 본 달리기는 그것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없다. 단지 수단일 뿐. 대개 돈이 도구적 표상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돈은 그저 종이일 뿐이고,
계좌에 있는 숫자도 돈의 많고 적음을 뜻할 다름이다. 하지만, 그 돈으로 원하는 집과 차를 사거나 기부를 하면
실질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달리기가 원래는 도구라고 인정했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강한 신체조건이 없었고,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는 목표물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주구장창 쫓아가는 달리기를
연마했다. 지평선 너머 단백질을 많이 갖춘 동물이 쓰러지면 그제서야 포식을 한다. 그런 까닭에 달리기는 살기
위한 생존 수단이었고, 그런 식으로 얻은 단백질 덕분에 뇌가 발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저자는 달리기를 그 자체로 의미있는 행위로 보고 싶어한다. 달기면서 주변 풍경을 보면, 조금씩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다. 계절별로, 혹은 인간의 손과 자연의 영향으로 변한다. 출발한 곳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변해있을 수
있다.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인생이고, 달리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다 읽고나면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있겠지만, 얼마나 사색하고 자신을 돌봄에 따라 그 자리가 변해서 조금 다른 점을 보게 될런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준다. 달기면서 극한을 체험하고 한계를 넘고, 그걸로 자아를 바라본다는 관점이 매우 마음에 든다.
달리기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다란 저자의 의견에 십분 동의한다. 롤랜즈에게 달리기는 장소다.
삶의 변곡점을 촘촘히 이어붙여 변화를 감지하고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장소로써 달리기가 인생의 각 장면을 포괄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여정은 쉰살을 앞두고 시작되었다. 마라톤을 하면 인생을 알게 된다는 솔깃한 말에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체력적 한계는 고사하고 신체의 노화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뛰다가 근육 파열을 경험한다.
초반에 나오는 그의 위트는 굉장히 즐겁다. 통풍에 걸렸다고 진단하는 의사와 익살맞은 대화는 저자의 성격을 유추하는데
더 없이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기능을 한다. 달린 장소도 매우 다채롭다. 그러면서 그의 엉뚱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들로
생각을 전달한다. 특히, 진화론적 사색에 한 면으로, 엉덩이가 큰 영장류는 달리게끔 설계된 것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휴고라는 저자의 강아지는 어디서나 등장한다. 무척 부러웠다. 영토가 넓은 미국에서, 그리고 주거형태가
정원형이 대부분인 그들 문화에서 강아지 키우기는 전혀 부담이 없어보인다. 게다가 강아지도 넓은 땅을 제 땅인냥
뛰어다닐 수 있어서 더욱 키우는 사람이나 강아지에게 좋다고 할 수 있다. 롤랜즈의 이야기는 심각하게 흥미롭고,
휴고라는 강아지는 부러웠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인생과 사회의 관계가 이런 식이 아니었다면, 삶은 더욱 나아졌을 것이란
대목의 사랑과 논리론으로 이어졌다. 논리와 사랑의 대척 관계를 깨어야 한다. 데카르트도 등장하고 달리면서 참으로
생각도 많이하는 저자다. 마라톤에 흥미가 있지만, 휴고와 같은 강아지와 같이 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전에는 저자의
글이나 열심히 읽을 생각이다. 철학자가 달리는 이유, 충분히 알 것같다. 나도 달린다. 마음으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