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샤 꾸리 - 신의 땅으로 떠난 여인
장미란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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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로 코리아가 꾸리라니 일단 이름이 굉장히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저자는 귀여운 외국 이름과는 다르게 삶은 모진 풍파와 각종 시련으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삶은 분명 힘들다.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어리고 꿈많은 소녀는 늘 집안 서열에 밀려,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한국사회에서 기회를 못잡는 경우가 왕왕했다. 특히 시골은 그런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종교에 기댈 뜻밖의 기회를 맞이했고, 그 종교는 현재도 한국에서는 소수만이 채택한 이슬람교였다. 회당이 하나정도 있을 뿐, 20세기에는 한국으로 오는 중동 출신자들보단 한국에서 중동으로 건설업 때문에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슬람교 신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지인을 통해 믿은 그 종교의 비차별성(물론 여성에겐 엄청난 차별이 있다)에 빠져 그 방면으로 지인들이 계속 생겨났다. 인생이란 알 수 없다는 게 이런 걸까 싶은 순간이 그녀에게 찾아온다. 사우디 왕가에 가서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그 나라 왕자의 초대를 받은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는 미련이 없었다. 늘 빠듯한 일상고에 힘든 차에 오히려 사우디의 낯설음이 기회로 다가왔다고 표현하면 틀리지 않을 듯 싶다. 그곳에서 그녀는 엄청난 규율 하에, 여성에겐 자유도 허락하지 않는 문화에서 울기도 많이 울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도 하며 적응해갔다. 아랍어를 능통하게 되고, 사우디 왕가에서 월급을 지원하고 독일에서 물리치료과정을 익히도록 지원도 해준다. 사우디에 돌아와서는 왕의 전담 물리치료사가 되어 동고동락하며 한국와 사우디의 축구 경기로 실랑이도 벌인다. 당시 한국이 졌기 때문에 저자의 마음도 무척이나 아팠다고 한다. 한국 축구가 현재 수준보다 더욱 발전해야 할 이유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수십가지가 된다. 당시에 이겼다면 저자는 얼마나 통쾌했을까. 안타깝다. 주변국가와의 전쟁통에 군대에서나 경험할 법한 방독면 체험도 하고 총격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더 강해졌다. 한국으로 귀국을 결심한 것은 사우디로 간 지 6년만이었다. 귀국 후에는 중동과의 산업 교류가 늘어나면서 각종 프로젝트에 통역 겸 현지정부와 문화 코디네이터로 활약하며 인생의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무거운 물건을 머리에 지고 다녀야 걸린다는 척추성 질병에 판정을 받고 큰 수술을 끝에 휠체어에 기대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일에 투철하며 사명감을 갖고 한국과 중동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모순투성이며 힘들고 고된 인생의 표본을 여실없이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놀라운 경험은 한국사회가 겪었던 고단한 발전 과도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독일 파견 간호사, 월남 참전 용사들... 우리는 선대의 땀방울 위에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뉴턴은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조상들의 어깨 위에서 멀리 내다 볼 수 있었기 떄문에 가능했노라고 말했다.

미래 세대를 아끼는 만큼이나 선대의 노력과 결실을 늘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겠다. 저자도 나에게 훌륭한 선대의 땀방울의 표본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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