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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8551186501315.jpg)
세상에서 제일 진부한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날 때마다 눈물 흘리게 되는 이야기
어머니.
타인의 시선에 온갖 염려를 품고 사는 나는 눈물을 흘리는 행위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언제부턴가 나는 눈물흘릴 장소와 이유를 찾았고 그것을 만나면 마음껏 준비된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나에게 이책이 그랬다. 그래 신나게 읽고 한바탕 울어버리자.
그런 마음으로 이 책과 만난 나는 역시나 엄청난 눈물을 헌납했고,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내 손을 거친 책은 서평이라는 나만의 작은 생각으로 재탄생을 거듭하는데 불구하고, 이 책은 다시 들춰내어 슬픈 감정에 젖어들고 싶지 않았기에 글이 아닌 가슴에 그대로 묻어두었었다. 적어도 오늘 이전까지는 말이다.
엄마를 잃어 버린지 일주일째다. 오빠 집에 모여 있던 너의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엄마를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돌리기로 했다. -P12-
너라는 말에 나는 심장이 뜨끔했다. 너는 주인공 자신이었지만, 나 자신이기도 했고 당신들 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매년 시골 본가로 내려가 치뤘던 부모님의 생일에 자식들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그들 스스로 서울로 상경해온지 몇해가 지났다. 우리가 알아서 찾아가마. 라고 말했던 부모님의 말을 믿었던건 주인공 너와 너의 형제들의 게으름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역, 너의 엄마는 인파에 떠밀려 아버지의 손을 놓쳤고 허둥지둥 하는 사이 지하철이 출발해 버린 것이다.
이야기의 마무리인 에필로그까지 포함한다면 이 이야기는 다섯개의 시선과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분주하게 엄마를 찾아 헤매던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나를 너라 칭하는 시선처리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한걸음 뒤에서 조금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어 준다.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가? 자식들의 어릴적 시선은 언제나 부모를 향해 있고, 그것이 인생이 전부인양 살아간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친구, 이성, 자아실현, 그리고 꿈과 목표 등에 눈을 뜨며 자식 그들의 삶에서 부모의 우선순위를 점점 뒤로 밀어낸다. 우연한 여행길에 무작정 찾아간 엄마의 집, 곳간에 쓰러진 엄마를 발견한 너는 엄마의 두통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이 치매가 되리라는 것도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공간으로 돌아온 너에게 그것은 잠시 잊혀진 이야기가 되고 만다.
엄마의 끝없는 내리사랑의 주인공인 첫째아들 형철의 시선
우리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아버지가 주는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특히나 바깥사람과 안사람의 명칭을 정해 바깥일을 해야하는 아버지, 집안일을 해야하는 어머니의 역할이 뚜렷했던 그 시절 우리의 어머니는 자식들의 교육을 짊어져야 할 가정교사 이기도 했다. 또한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했던 시절의 첫째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 다른여자에게 등을 돌릴지 모르는 남편의 자리를 대신해줄 버팀목 이기도 했다. 그런 첫째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은 다른자식들의 질투를 살만큼 그 크기가 대단했고, 엄마의 행방불명으로 엄마의 기대와 사랑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무심했던 그 시절 나를 떠올려 본다.
아내를 잃고 홀로남겨진 남편의 모습을 바라본 아내의 시선
너희 어머니가 시골 집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시골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이건 우스개 소리이기도 하지만 노년의 남자들은 아내가 곰국을 끓여놓고 나가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고 한다. 오래두고 먹을 수 있는 곰국을 끓여놓고선 나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오죽하면 늙으면 두고 보자!! 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연애도 없이 결혼식 첫날 만나게 된 아내의 모습을 떠올린다. 사랑도 추억도 없었던 결혼의 시작, 다른여자와 바람이 나 안방에 다른여자를 앉혔던 남편, 집을 나가 떠돌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던 남편, 그럼에도 묵묵히 엄마와 아내의 몫을 훌륭히 해냈던 사람의 빈자리에 숙연해진 남편의 모습을 바라본 아내는 원망보다는 염려의 마음으로 그를 바라본다.
엄마의 오랜 부재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딸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
엄마의 오랜 부재에도 불구하고 각자에게 펼쳐진 삶을 살기에 주저할 수 없는 그들, 막내의 집 거실, 엄마의 매개체가 바라본 두 딸의 대화가 시작된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 그만큼 부모의 자식사랑은 어느것이 더 크다 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열손가락이 모두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듯이, 한 배속에서 나온 자식들 또한 부모에게 주는 각자의 의미는 다르다. 이것은 비단 부모만이 가지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자식들 각자에게도 부모의 의미는 다 다르다. 큰딸아이가 막내아이에게 묻는다. 너만 알고 있는 엄마 얘기를 해보라고, 이렇게 그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엄마의 이야기를 나눈다.
여행중 찾아온 엄마의 또다른 모습을 만나게되는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 우연한 여행길에 가게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 너는 문득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가게 되거든 장미나무로 만든 묵주를 구해다달라고 했던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장미묵주를 손에 든채 어떤 이끌림에 의해 성 베드로 성당으로 달려간 너는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은 성모 피에타상 을 만나게 된다. 죽은 아들을 안은 성모의 모습에서 너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며, 어쩌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피에타상을 만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인간에게 어머니란? 세상 무엇보다 가까운 존재이며, 당연한 존재이기에 존재의 지속성에 대해 돌보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대중음악가 이적의 말을 빌려
기대며 동시에 밀어내려한 대상이기도 하다. 엄마는 언제부터 엄마였을까?
나는 엄마의 대한 사랑이 남다른 딸이다. 그렇다고 내가 효녀인 것은 아니다.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 또한 남다르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의 아버지는 폭력, 무능, 의처증과 바람의 나쁘다랄 것은 모조리 갖추신 그런 아버지 였다. 이에 못견디신 엄마는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해에 집을 떠났고 그후로 내가 20살이 되기까지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엄마없는 아이가 되어버린 나는 우울할법한 청소년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엄마를 원망해 본적이 없었다. 오히려 엄마를 같은 여자로서 동정했으며 다른누구보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어떻게 자식을 버리냐는 아빠쪽 친척들의 대화에 나같아도 도망갑니다. 로 일침을 놓았던 적도 있는 나다. 그리고 현재 나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동생이 다니던 학교에 찾아와 연락이 닿게된 엄마와 지금까지 아버지 몰래 만나고 있다. 명절이면 아버지댁에 들려 잠시 머물고 엄마댁에도 찾아가 잠시 머물고, 그동안 함께 지내지 못한 엄마와의 시간을 보상받고 싶기라도 한듯 둘도 없이 화목한 모녀지간의 모습으로 지금도 여전히 지내고 있다. 나는 가끔 그런 내가 자랑스러웠고, 원망은 커녕 대단한 효녀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의 친구와의 대화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의 이런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의 친구에게 나는 가끔 아버지 흉을 신나게 보곤 한다. 그날도 다를 것 없이 , 야 우리 아빠는 옛날에로 시작된 흉을 보기 시작했다.
한번은 아빠가 몇일날 이사한다. 라고 통보를 해놓구선 막내 데리고 전라도 시골로 내려가 버린거야. 그때 내나이가 7살쯤 됐나? 10살인 언니랑 엄마랑 나 이렇게 셋이서 용달불러서 이사를 했어. 아무튼 우리아빠가 엄마 앞세우고 뒤로 빠지는데는 선수였어. 나는 아직도 그래서 그런 남자는 절대 안만나려고. 그런데 그 어린나이에도 기억이 나는게 이사온 집에 짐은 다 들여놨는데, 갑자기 주인아줌마가 문을 잠그는 거야. 잔금을 다 치르지 않아서 사람은 못들어간다며. 잔금을 지불하면 들여보내 주겠다고. 서럽고 슬픈것도 몰랐어 그땐 너무 어려서 말야
엄마가 어쩔줄을 몰라서 우리 데리고 그때 근처에 무슨 큰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 안에 공중전화로 시골에 계신 아빠한테 전화를 한거야. 어떻하냐고. 심각한 엄마와 언니와는 다르게 나는 그냥 병원맞은편 슈퍼에 보이는 호빵이 그렇게 먹고 싶었던 거야. 철딱서니 없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전화를 끊은 엄마를 보고 호빵을 사달라고 졸랐고, 호빵 하나 살돈은 있다는 엄마말에 기뻐했던 기억이 나네. 아무튼 나중에 어른되서 생각해 보니깐 아빠는 잔금 안치뤄진거 때문에 우리만 남겨두고 피해 있었던 거 같아. 아무튼 결국엔 엄마가 호빵하나 사줬어. 바보같이 그땐 그게 그렇게 좋더라. 그리고 엄마가 주인아줌마한테 사정사정해서 겨우 집에 들어갔어. 제대로 풀지 않은 짐들 사이에서 엄마랑 언니랑 나랑 꼭 붙어서 잤던 기억이 나. 불도 안들어오던 방에서~ 아무튼 우리엄마 너무 고생했어
그때 엄마 나이가 언니가 10살 이고 내가 7살 이니깐 .......그때 내 머리는 하얀 도화지가 되었다. 그때 당시의 엄마 나이가 정확히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깐 언니가 10살이니깐 엄마는 28살 이었네요... 28살 ... 지금 나보다 2살이나 어리네 ......... 나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 그러고 싶었을까? 고작 28살에 애들 둘 끼고 전세방 잔금도 못치뤄 그러고 있고 말이야. 나는 30살에 미혼이고, 아직도 그냥 이쁜옷 입고 싶고, 놀고 싶고 그런데 말이야 .................
적어도 나는 엄마에 대한 어떠한 원망도 없었고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 했는데, 그녀를 정말 이해했던 것은 아닌거 같다. 우리 엄마는 18살에 첫째인 언니를 낳았다. 나는 그냥 젊은 엄마가 있어 좋다라고만 엄마의 나이를 대했을뿐 다른 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는 얼마전 읽은
엄마를 부탁해 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책에서 막내딸이 큰딸에게 보냈던 편지의 구절이 생각났다.
나는 셋째가 조금만 더 자라면 놀이방에 보내거나 사람을 구해 아이를 맡기고 내 일을 할 거야. 이런 나를 깨달을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는지 엄마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우리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엄마 상황에서 그렇다고 쳐. 그런데 우리까지도 어떻게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을까.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시절을 나의 처녀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P261-
나는 엄마를 부탁해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엄마에 대해 엄마의 젊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엄마의 인생을 나이로 나누어 보았을 때 나의 엄마는 더이상 엄마가 아닌 가여운 친구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엄마가 18살이 되던해에 언니를 낳았고, 21살이 되던해에 나를 낳았다. 그리고 23살이 되던해에 동생을, 엄마는 병원에 갈 돈이 없어 집에서 우리를 낳았다고 했고, 그때역시 아버지는 옆에 없었다고 했다. 고작 23살 여자아이가 .. 20대의 엄마가 했던 일은 미싱사와 단추를 끼거나, 봉투를 접는 소일거리 였다. 그리고 엄마의 30대 초반의 직업은 붕어빵, 떡볶이, 호떡 등을 파는 리어카 노점상 장사였다. 그리고 엄마가 자식들을 두고 집을 떠났을 때 엄마의 나이는 고작 35살 이었다.
30살이 갓 된 여자가 리어카를 끌고 이곳 저곳 자리를 옮겨가며 일을 하고 싶었을까? 35살 밖에 안된 여자가 자식을 버리고 나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우리에겐 누구나 엄마가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엄마에 대해 어머니의 부재에 대해 돌이켜 볼 수 있었으며, 엄마에 대한 각기 다른 시선을 통해, 그녀 자신이 엄마이기 이전에 아내이고 올케이고 시누이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 이라는 것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또한
엄마의 젊음에 대해 엄마의 청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엄마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당신의 엄마의 젊음과 당신의 젊음을 비교해 보라고 말해보고 싶다.
아직 미혼인 나의 서른살과 이미 세 자녀를 가진 엄마가 되버린 서른살의 나의 어머니의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