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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평점 :
‘피로는 폭력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폭력을 낳는다. ’는 글에서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의 살인자가 떠올랐다. 밤새 차가운 사무실에서 홀로 일해야만 하는 인간, 고립된 고독한 피로의 일상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피로가 극에 달에 회사를 때려서 치우고 싶던 마음속 깊고 어두운 밤 이 책을 만났다.
가벼운 부피의 짧은 에세이로 참으로 간단히도 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규율사회 복종적 주체는 성과사회에 와서 성과주체로 바뀐다. 부정성 패러다임에서 긍정성 패러다임으로 전환은 착취의 대상이 타자에서 자기 자신으로 향한다. 주장은 현재 만연하고 있는 만성화된 신경증적 피로를 입증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성과 주체의 긍정성 만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정 하게하고 개인은 스스로 목표달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하며 만성화된 피로를 달고 살게 된다는 설명. 이는 전일적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생산의 문제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과연 그럴까 자본주의는 재화의 품질의 경쟁력이든 생산량 경쟁이든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 관건이다. 시간이 돈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불문율이다. 경쟁자와 차이를 벌리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좁히는 기술이 요구된다. 이는 필연적 개인들이 빠르게 소진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계급적 차이를 무시하고 마치 모든 타자의 착취는 사라지고 모두가 자기착취를 한다식의 단순함도 위험하다. 임금생활자와 자본가는 엄연히 먹이사슬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전자가 타자를 위한 자기 착취로 살아간다면 후자는 타자의 착취를 위한 자기착취로 살아간다. 잘사는(well-being) 방법이 오직 잘사는(buying) 것에 있는 세상에서 소비자로서 지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생산을 자본주의 본질로 보는 시각은 다소 시대착오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