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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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얻는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빈 자리』는 이러한 상실과 부재를 통해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의 기억들과 내 안에 남아 있는 감정들을 찬찬히 되새겨 보았다.


마치 시처럼 흐르는 보뱅의 글은 논리적 전개보다는 감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고, 한 줄 한 줄이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기록하며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지점을 조용히 응시한다.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라는 문장은 나를 오래도록 붙잡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우리의 현재를 얼마나 깊이 결정짓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랑과 관계에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빈 자리』 속에서 보뱅은 부재의 의미를 말한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사랑을 꿈꾼다. 마치 오지 않는 눈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빈자리들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또 다른 의미를 찾아 나아가게 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주변의 빈자리들을 떠올렸다. 떠나간 사람들, 지나가버린 순간들, 그리고 더 이상 나를 기다리지 않는 꿈들. 하지만 보뱅은 말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버리지 않는 한 가지는 언제나 있다." 그것은 한 조각의 빛일 수도, 오래된 이름일 수도, 혹은 마음속에 간직된 어떤 감정일 수도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나 또한 사라진 것들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의미들을 찾고 있음을 깨달았다.


보뱅의 글은 우리에게 삶을 더 천천히 바라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생이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 그는 우리가 머물러야 할 순간과 기억해야 할 감정을 일깨운다. 『빈 자리』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곱씹으며,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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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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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정말 대단한 작가다.

이웃을 위한 관용과 용서는 어디로 간 거야?

유대인들은 왜 이렇게 분열된 거지?

이런 불화가 1988년 예루살렘에서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오.

백 년 전 게토에도 있었소."

P.474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바사삭 허물어 버리는 샤일록 작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진짜는 누구일까?


소설 속 화자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가짜 필립 로스를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가짜 필립 로스는 오히려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하면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디아스포라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진짜 필립 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사칭범을 추적하며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스파이, 정치, 정체성, 유대인의 역사가 서로 얽히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마지막엔 CIA의 개입과 독자에게 보내는 말까지 이 이야기 자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호해지는 결말로 끝나버린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까? 누군가 내 이름을 훔쳐서 나인 척 살아간다면, 여전히 나는 나일까?

진짜가 가짜는 쫓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정치적 음모와 스파이의 등장은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재미를 더해준다.


디아스포라는 사전적 의미로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유대교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크게 민족적 정체성(전 세계에 퍼져 살지만 공통된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는 하나의 민족), 종교적 정체성(유대교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종교이지만 모든 유대인이 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국가적 정체성(이스라엘은 유대인의 국가이지만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산다.)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은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왔지만 1948년 갑툭튀로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많은 유대인이 이주를 했다. 가짜 필립 로스는 "유대인들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유대인이 이스라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조상이 살던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많은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가짜 필립 로스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쟁은 단순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진정한 고향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은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필립 로스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홀로코스트를 당한 그들은 지금 그 땅 위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과연 무엇이 맞는 걸까?


사족 : 데미야뉴크 재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공포의 이반>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샤일록작전 #필립로스 #비채 #비채서포터즈3기 #디아스포라 #공포의이반 #이스라엘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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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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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지난 괴로운 날들은 괴로웠다고 인정해도 돼. 힘들었다고 입 밖에 내어 말해도 돼. 그리고 그걸 지나온 자신을 그냥 위로해 줘. 이제부터 다음 목적지를 찾으면 되는 거야. p.316"


'산' 하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대사 '지자요수인자요산(智者樂水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산에 오르는 네 개의 이야기 속으로 한발짝 들어가 보자.



하나, 세상을 떠난 남편의 꿈을 대신 이어 카페를 운영하는 65세 아야코와 대학 시절 산악부였던 42세 마미코가 함께 고류다케를 오르며 각자의 과거와 화해하게 된다. 



둘, 음악을 전공하는 유이, 유, 사키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등산을 통해 서로 진심을 나누고 자연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자신들의 꿈을 되찾는다. 



셋, 육상부와 농구부에서 운동을 하던 딸 나쓰키가 대학에서 산악부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자 이를 완강하게 반대하는 간호사 엄마 지아키가 함께 산을 오르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넷, 집안 대대로 이어온 화과자점을 운영하던 에이코는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고 좌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대학 동창 이짱과 함께 다시 산을 찾으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각자의 삶이 최선을 다한 길이었음을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산'이라는 자연이 주는 위로가 무엇일까?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서로 각자 다른 이유로 산을 찾게 된다. 



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등산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아무리 험한 산이라도 숨을 고르며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결국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내딛는 발걸음 속에서 우리는 내면과 마주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위로를 받게 된다. 



초록빛으로 물드는 따뜻한 봄의 기운이 스미길 바라는 마음에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둘레길을 걸으며 지난겨울의 충격과 고통을 덜어내기로 했다. <노을 진 산정에서>를 읽고서 말이다. 책장을 덮으며 문득 생각한다.  친구들과 함께 둘레길에서 만나지 않을래요?



#노을진산정에서 #미나토가나에 #비채 #비채서포터즈3기 #일본소설 #힐링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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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 - 윤동주 전 시집과 반 고흐 그림 138점
윤동주 글,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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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자화상을 통해 영혼을 노래한 두 예술가, 윤동주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로 별처럼 반짝이는 감동의 시간이 두 배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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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로 - 곰베 침팬지들과 함께한 30년 사이언스 클래식 40
제인 모리스 구달.제인 구달 연구소 지음, 이민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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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 하면 푸바오가 떠오르듯, 침팬지를 이야기하면 우두머리수컷 고블린이 생각납니다. 이 책에서 고블린의 생애와 비참한 최후까지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제인 구달의 『창문 너머로: 곰베 침팬지와 함께한 30년』은 단순한 동물 연구서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환경과학의 고전입니다. 그녀는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에서 30년간 침팬지를 연구하며, 그들의 복잡한 사회 구조와 인간 사회와의 유사성을 조명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녀는 침팬지의 생태와 행동을 세심하게 기록하면서도, 단순한 연구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개별적인 존재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학계의 전통적인 동물 연구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었으며, 동물도 감정을 느끼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당시 학계에서는 동물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제인 구달은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감정과 관계를 면밀하게 연구하며 보다 포괄적인 이해를 시도했습니다.


그녀가 관찰한 침팬지 사회는 우정과 협력, 가족 간의 유대뿐만 아니라, 전쟁과 동족 간의 갈등 같은 폭력적인 모습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인간과 침팬지의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주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침팬지들이 평화로운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특정한 상황에서는 잔인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는 점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는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또한, 제인 구달은 침팬지 연구를 통해 환경 보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후 침팬지 서식지 보호와 동물 복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녀의 연구는 학문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환경 보호 활동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창문 너머로』는 환경 분야에서도 중요한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침팬지 서식지 파괴와 실험동물로서의 착취 문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며, 더 윤리적인 공존 방안을 모색해야 함을 일깨웁니다.


『창문 너머로』는 침팬지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창과도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자연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침팬지를 통해 인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독창적인 연구서이자, 생태 보전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환경 서적으로서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생태학, 동물 행동학, 그리고 환경 보호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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