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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나는 고발한다>라는 문장으로 기억하고 있는 에밀 졸라(1840.4.2~1902.9.29)는 <로로르>지에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면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격언을 몸소 입증한 위대한 지식인이다. 현실의 모습을 소설에 담아내는 자연주의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루공마카르총서-제2제정하 한 가족의 자연적, 사회적 역사>를 계획하고 제2제정기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23년에 걸쳐 20권의 소설을 발표한다.
<패주>는 루공마카르총서 제19권으로 1892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보불전쟁)을 시작으로 스당의 함락과 파리코뮌까지 자연주의 문학답게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패주, 뜻 그대로 전쟁에 져서 달아나는 이야기이다. 승자의 기록으로 남게 되는 역사책 속의 사실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취재하고 전쟁이 일어났던 스당 전투 현장에 가서 시민들을 만나고 병사들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일화들을 책 속에 녹여냈다.
장과 모리스의 분대는 전투다운 전투는 시작도 못 해보고 후퇴하기 시작한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가야 하니 그 군인들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지휘관들을 믿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장과 모리스 사이에 싹 트는 우정은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의 마지막 발악 같은 인간성이었을까? 전쟁을 이끌어 나아가야 할 나폴레옹 3세의 모습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명령 하나로 움직이는 군인들의 수장이 저렇게 무기력해서야 그들의 절망과 굶주림과 추위는 그들을 스당 속에 몰아 놓는다. 달아날 곳 없는 전쟁터 속에서 시체로 변하는 전우와 부상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스당은 함락되고 장과 모리스는 포로로 잡혀서 이송하던 중 다행일까? 탈출에 성공한다. 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독일군은 파리로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코뮌이 선포된다. 전쟁통에서도 함께 살아남은 장과 모리스의 우정은 이제 끝인 걸까? 장은 코뮌을 진압할 베르사유 정부군이 되고 모리스는 코뮌에 가담하게 된다. 동지였던 장과 모리스는 과연 적으로 남을까? 동지로 남을까?
하드보일드 영화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에밀 졸라는 왜 이렇게까지 전쟁 이야기를, 그것도 이기는 전쟁도 아닌지는 전쟁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워 얘기해야 했을까? 1848년 2월 혁명으로 제2공화정이 들어섰을 때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황제에 즉위했던 나폴레옹 3세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며 왕조의 몰락을, 한 시대의 붕괴를 보여주기 위해 개인이 아닌 군대의 패전과 파리 코뮌이 있던 파리의 참상을 보여주려고 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보다 46년이나 앞서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로 수립된 사회주의 자치 정부 파리코뮌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총서 번역에 진심인 문학동네에서 에밀 졸라의 다른 작품들을 더 만나보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