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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조심해라! 벽돌책이라고 기피했다간 조너선 얼 프랜즌의 섬세함과 묵직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놓치는 것이다. 전체 3부작으로 펼쳐질 <모든 신화의 열쇠>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인 <크로스로드>의 주인공들을 만나보자.
866쪽에 달하는 <크로스로드>를 처음 받았을 때는 아~~ 무시무시한 벽돌책이란 느낌이었다. 하지만 50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1970년대 미국의 살아있는 주인공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데 인내심 따위 필요 없었다. 읽는 맛을 톡톡히 알게 되었으니까.
배경은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뉴프로스펙트라는 마을에서 부목사로 일하고 있는 러스 힐데브란트와 러스의 아내 매리언 그리고 첫째 클렘, 딸 베키, 누나를 질투하는 페리, 막내 저드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부목사로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교하던 사람이 그의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딸 베키만 유독 편애하는 이유는 딸의 아름다운 외모와 똑똑함으로 자신을 빛내줄 수 있는 장식품 같았기 때문이었다. 러스는 뉴프로스펙트로 미망인이 되어 돌아온 프랜시스 코트렐 부인을 욕망하게 된다. 정말 바닥이다.
매리언은 과거의 불행했던 사건으로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았지만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 한때 할리우드 배우를 꿈꾸기도 했었던 그녀는 가족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 매리언은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피해자면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복종하는 아내의 역할을 하고 있다. 꾹꾹 눌러 참고 있는 분노가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네의 홧병처럼.
큰 아들 클렘은 아버지 러스를 16년 동안이나 존경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게 된 클렘은 일리노이주 주립대학 학생 신분이었지만 학생 복무 연기 혜택을 포기하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려고 한다. 사립대학으로 진학할 꿈을 꾸는 베키와 그런 베키에게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끼는 페리는 점점 약물에 중독되어 간다.
애정결핍에 서로 목말라하고 각자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힐데브란트 가족의 분투기였다. 낮아진 자존감과 타인을 향한 의존성으로 생기는 죄책감과 자기 연민은 이 가족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이 가족들이 겪는 문제들을 통해 1970년대 미국 사회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종차별, 베트남 전쟁, 불륜, 마약 등 수많은 사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너선 프랜즌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활절이었다.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부부에게 페리의 선택은 오히려 그들에게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바닥을 치고서야 다시 일어선 부부의 모습은 부활절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는 클렘을 통해 힐데브란트 가족에게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크로스로드>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보듬고 안아줘야 가족이지.
☆은행나무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