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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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복안인》을 덮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가라앉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폐허 위에서, 여전히 살아가려는 생명의 마지막 몸짓을 그린 지구의 초상화다.


나는 플라스틱을 씻어 말리며 쓰레기 분리수거일마다 이 책을 떠올렸다. 우리가 버린 그 작은 플라스틱들이 모여, 바다 한가운데 ‘섬’을 이룬다. 그리고 그 섬은 언젠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밍이는 이 끔찍한 순환을 신화의 언어로 번역한다. 와요와요의 소년 아트리에와 타이완의 여성 앨리스가 만나는 순간, 바다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를 기억하는 의식 있는 존재로 변한다.


“자연은 반격하지 않는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이 문장은 소설 속에서 가장 잔인하고도 진실하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할 때, 그것은 ‘공격’이지만 자연의 변화는 ‘복수’가 아니다. 그저 균형의 복원일 뿐이다.


쓰레기 섬, 복안인, 카방의 신화, 그리고 앨리스의 절망은 모두 한 점으로 수렴한다. 그것은 보는 눈의 문제, 곧 ‘복안’의 의미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본 것만이 세계의 전부라 착각한다. 그러나 곤충의 겹눈처럼 세상을 입체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개발과 소비를 ‘진보’라 부르지 못할 것이다.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아름다운 문장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그 속에 섞인 냄새는 썩은 바다의 것이다. 아트리에는 죄가 없다. 그러나 문명의 죄는 그를 집어삼킨다. 앨리스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이 만든 재앙 속에서 그녀는 고양이 ‘오하요’와 함께 미약한 생의 불씨를 지킨다.


읽고 나면 다시는 "버린다"라는 말을 쉽게 쓸 수 없다. 우리의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방향을 바꿔, 우리에게 되돌아올 뿐이다.


#복안인 #우밍이 #비채 #비채서포터즈3기 #리브르앵쉬레르상 #베를르날레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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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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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책과 함께 늙어가는 삶에 대하여”



책이라는 물성을 사랑한다는 건, 단순히 활자와 종이의 결합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에 느껴지는 묵직한 책등의 두께, 손끝으로 넘길 때의 감촉, 문장 사이사이에 스며든 시간의 냄새, 그리고 그 책을 만든 누군가의 노동과 마음까지 느끼는 일이다. 



김혜진의 『오직 그녀의 것』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손들”의 세계, 편집이라는 내밀하고 고요한 노동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 세계 속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마치 내 책장 속 낡은 책들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주인공 석주는 90년대 초, 교열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 시절의 출판사는 활판 인쇄가 남아 있고, 원고는 종이로 묶여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던 시절이었다. 석주는 교정지를 붉은 펜으로 고치며, 서서히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간다. 그녀는 늘 조용하고 성실하지만, 그 조용함 안에는 한 문장을 살리고자 하는 집요한 사랑이 있다. 편집의 일은 눈에 띄지 않지만,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닿기 전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림자 예술’이다. 김혜진은 이 세계를 요란한 감정이 아닌, 잔잔한 호흡으로 그려낸다.



책을 만드는 일이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석주는 오기서 과장의 냉정한 기준 속에서 단단해지고, 작가와의 관계 속에서 일의 의미를 새로 배워나간다. 그리고 편집자 소모임에서 만난 조원호와의 관계를 통해 “일과 사랑”의 경계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깨닫는다. 둘 다 예측할 수 없고, 완벽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매일의 반복 속에서 비로소 무언가가 쌓인다. 책을 만든다는 일은 결국 삶을 만들어가는 일이고, 사랑을 지속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걸, 나는 석주를 보며 새삼 배웠다.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p.253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때로는 지치고 다치면서도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던 어떤 일. 석주에게 그것은 편집이었고, 나에게는 책 그 자체였다. 책은 늘 나를 위로해 주지만, 동시에 나를 시험해왔다. 그건 어쩌면 ‘좋아한다’는 감정이 본래 가진 이중성일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책장 속 책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석주들이 있었다. 이름 없이 교정지를 넘기던 누군가, 밤새 문장을 고치던 편집자들, 문학의 뒷면에서 묵묵히 살아온 이들. 이 소설은 그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 덕분에 책을 사랑하게 된 우리를 위한 헌사다.



“책을 좋아하나요?” 그 말이 왠지 따뜻하게 나에게 묻는 듯, 나에게 책이, 그리고 이 소설이 ‘오직 나의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오직그녀의것 #김혜진 #문학동네 #독파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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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 이겨놓고 싸우는 인생의 지혜 현대지성 클래식 69
손무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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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회사에서의 하루는 전쟁과도 같다. 숫자로 평가받고, 감정으로 일하며, 관계 속에서 버텨내야 하는 세계. 부하 직원과의 온도 차, 윗선의 결정, 예측할 수 없는 시장 상황 속에서 우리는 매일 ‘이겨야 하는 싸움’을 반복한다. 다시 『손자병법』을 펼치며 나는 깨달았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싸우면서 이기려 하지 말고, 이겨놓고 싸워라.”

이 문장은 내 일상의 평정심과 닮아 있었다. 업무 현장에서 우리는 종종 ‘당장 이기려는 마음’에 휘둘린다. 회의에서 논리로 상대를 꺾으려 하고, 프로젝트 성과로 인정받으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다.

항우의 몰락에서는 감정 조절의 중요성을, 제갈량의 전술에서는 냉철한 판단력을 배운다. 나에게는 그 모든 이야기가 ‘조직 안의 인간관계’로 들렸다. 성과보다 사람이 먼저 무너지지 않도록 살피는 것, 부하의 잠재력을 읽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 때로는 한 발 물러서 조직의 ‘형세(勢)’를 관찰하는 인내. 손자가 말한 “형(形)과 세(勢)”의 조합은 결국 보이는 실력과 보이지 않는 분위기의 조화다. 나의 직장에도 그런 형세가 있다. 숫자만이 전부가 아닌 팀의 사기, 신뢰의 흐름, 작은 성취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방향성. 손자는 이미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익숙한 고사성어가 이번엔 다르게 다가왔다. ‘적을 알고 나를 알라’는 말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상대의 논리를 이해하고 내 감정을 객관화하는 일이다. 회의 중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상대의 의도를 읽고, 시장 환경을 탓하기보다 우리 팀의 약점을 먼저 진단하는 것. 손자의 전략은 결국 이성을 단련하는 훈련이었다.

이번 현대지성 판본은 특히 인상 깊었다. 97가지 역사적 사례와 47장의 이미지가 어우러져 고전을 ‘현장 매뉴얼’처럼 느끼게 한다. 노자 철학과의 연계, 비즈니스와 투자 사례, 삼십육계 해설까지 더해져 ‘삶의 전략서’로서 깊이가 남다르다. 읽는 내내, 고전이 이렇게 현실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손자의 말은 전쟁터를 넘어, 회의실과 가정, 그리고 인생의 무대 위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매일이 싸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성과, 평가, 인간관계…. 그러나 『손자병법』은 말한다. “이겨야 하는 싸움보다, 피해야 하는 싸움을 구분하라.” 그 말은 마치 오늘의 나에게 던지는 조언 같았다. 손자의 병법은 전쟁의 기술이 아니라 버티는 철학, 그리고 인생을 위한 생존의 지혜였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오늘의 일터에서, 이 말만큼 필요한 전략이 또 있을까.

#손자병법 #손자 #현대지성 #불태법칙 #현대지성클래식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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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리 -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보는 초예측 지정학
최준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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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지원도서



유튜브 <지구본 연구소> 구독자로서, 이번 책의 출간은 단순한 반가움을 넘어 마치 오래 기다린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다. 최준영 박사님의 날카로운 시선과 박학다식함을 늘 영상에서 느껴왔는데, 이제는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된 형태로 만날 수 있다니 더없이 소중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흩어져 있던 콘텐츠들이 ‘경제와 주택, 에너지, 인구, 기후’라는 다섯 가지 생존 키워드 아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겪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문제들을 들여다보니,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생존 지도’를 손에 쥔 듯한 기분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캐나다와 쿠바, 그리고 최근 관심이 많았던 플로리다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유튜브에서 흘려보듯 접했던 사례들이 책 속에서는 맥락과 배경이 더 촘촘히 설명되어 있어 이해가 훨씬 깊어졌다. 단순한 상식을 넘어,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지리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이 책이 결코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이다. 지리와 지정학이라고 하면 다소 딱딱하고 학문적으로만 느껴질 수 있는데, 박사님 특유의 스토리텔링 덕분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영상에서 느꼈던 그 생생함이 책 속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다.


구독자의 입장에서 보태자면, 이번 책은 단순한 출간물이 아니라 <지구본 연구소> 채널의 또 다른 확장판으로, 오랜 시간 채널을 사랑해 온 62만 구독자들의 응원과 호기심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유튜브에서, 또 책으로도 계속해서 지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세상은 넓고, 신기하고, 궁금한 일은 여전히 많으니까.



#생존을위한최소한의지리 #최준영 #교보문고 #일파만파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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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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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콜디츠》를 읽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빠져들지만, 동시에 부디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기를.

독일의 산 위에 고립된 성, 콜디츠. 돌벽에 스며든 습기와 음울한 그림자 속에서, 탈출을 꿈꾸는 포로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독일 경비병이 맞부딪히며 매일 또 다른 전쟁이 이어졌다. 굴을 파고, 변장을 하고, 심지어 글라이더를 제작하며 탈출을 시도한 포로들의 기상천외한 발상은 경탄스럽지만, 그것이 곧 절망의 또 다른 얼굴이었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이토록 기괴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책 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그러나 《콜디츠》가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는 것은 화려한 영웅담이 아니라 그 뒤에 감춰진 인간 군상의 복잡한 그림자다. 장교와 병사의 신분 차, 연합군 내부의 갈등, 인도인 의사 마줌다르가 겪어야 했던 인종차별, 특권을 누린 프로미넨테와 이름 없는 당번병들의 삶. 전쟁은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었고, 인간의 나약함과 욕망, 그리고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무대였다.

책을 덮고 나면 간절히 바라게 된다. 차라리 이것이 허구였기를, 존재하지 않은 악몽이었기를.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고, 수많은 기록과 증언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콜디츠》는 냉혹하게 우리를 붙잡고 말한다. “아니, 이것은 역사다. 너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자, 반드시 기억해야 할 현실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라면, 당신이라면, 그 새장 같은 성 안에서 어떻게 했을까. 용기를 냈을까, 비겁해졌을까, 혹은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인간답게 버티려 했을까.

《콜디츠》는 전쟁을 다시금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기록된 역사 앞에서 “부디 사실이 아니었기를” 속으로 중얼거리게 하는 바로 그 불편한 감정이야말로, 이 책이 남긴 가장 뼈아픈 울림일 것이다.

#콜디츠 #벤매킨타이어 #김승욱옮김 #열린책들 #나치 #포로수용소 #생존의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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