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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해부학 - 완전한 질서 너머 삶의 의미를 찾아서
가브리엘 웨스턴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북클럽
젊을 때 몸은 당연한 것이었다. 밤을 새워도 회복했고, 조금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졌다. 하지만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짧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니 몸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다. 어느 날부터 몸은 나를 태우고 가는 튼튼한 탈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고장 나고 멈출 유한한 집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부검실에서 시작한다. 피부를 열고 장기를 들여다보는 차가운 해부학의 세계인데도 이상하게 죽음보다 삶을 더 많이 생각하게 한다. 한 사람의 가슴과 손가락, 피부와 심장에는 의학적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안았던 기억, 아이를 먹이고 키웠던 시간, 일하고 사랑하고 상처받았던 흔적이 함께 새겨져 있다. 몸은 결국 한 사람이 살아온 생애의 기록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여성의 몸을 다루는 대목에서 나 역시 얼마나 오랫동안 내 몸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가슴은 아름다워야 했고, 몸은 날씬해야 했고, 늙어가는 피부는 감춰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주름과 흉터와 처짐은 망가짐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의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나이가 들수록 건강검진 결과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가까운 사람의 병과 죽음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몸과 함께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라는 말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완벽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조금씩 닳고, 아프고, 회복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몸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책은 죽음에서 시작해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서 나는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꼭 삶이 초라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 걷는 길과 먹는 한 끼, 사랑하는 사람의 손과 아직 움직이는 내 몸이 더 귀해진다.
언젠가 나 역시 이 몸을 내려놓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내 몸을 미워하기보다 잘 데리고 살아가고 싶다. 늙어가는 몸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여기까지 나를 데려온 몸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고 싶다. 이 책은 해부학에 관한 책이었지만 내게는 결국,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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